나는 내가 늘 그립다!

by 해피영희


“내가 대학교 들어와서 처음 친해진 여자친구다.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같이 했는데 우리가 서로 약속했어. 여자친구가 생기면 태희한테 보여주고 허락을 받겠다고. 내가 군대 있을 때 면회도 몇 번 왔었던 친구야.”


대학교 2학년 촌스러움과 순수함이 가득이던 그 시절 남편이 햇살이 참 좋은 토요일 오후 양말 빨래를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제게 건넨 말입니다.

일단 저 장면에서 소개를 해 주고 싶은 여자친구는 제가 됩니다.

뭔가 불편한 감정이지만 너무도 어리고 부족했던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인지도, 그것을 듣고 있어야 하는 말인지도 모른 채 그런 대화를 했었습니다.


저 때의 고백으로 남편은 세월의 흐름으로 나름 영악해진 제게 지금까지도 고전중입니다.

“그때 당신이 그랬잖아. 태희 언니가 보고 괜찮다 해야 사귄다고. 뭐 군대 면회도 다녀갔다며. 나 몰래 만나서 생일 선물로 발가락 양말도 받아왔었어. 기억하지? 가끔 생각나겠다. 치~”


이제야 남편은 아차차차~ 하면서 “내가 언제? 그런적 없어. 무슨소리야.” 하지만 이미 나의 머릿속 세포 어딘가에 야무지게 각인된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추억이 되어있습니다. ㅎ

사람이 살며 만나는 많은 인연 중 대부분 어린 시절 이성 친구 한 명씩은 품고 살아가게 됩니다.


원래 이루지 못한 인연은 아련함과 추억이 더해져 소중하고 고와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납니다.

제게도 대학을 입학 했을 때 신입생 환영회에서 만난 4학년 선배가 한 명 있었습니다.

나이가 7살이나 많은데 유머감각도 있고 활발한 성격이 주변인들을 사로잡는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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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분이 제게 호감을 보여주니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분은 결혼을 생각하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러니 우리는 인연이 될 수 없었습니다.

20살 풋풋한 서러움이 스며들어 쓰라림으로 변하고 있을 때쯤 남편을 만났습니다.


나만 좋아해 주고 나만 좋아할 수 있는 사람.

온전히 세상에 우리 두 사람만의 감정만 중요한 그런 상황이 너무 좋았습니다.

돋보기가 햇살을 모아 종이를 태우듯 그 당시 우리의 감정은 서로에게만 오롯이 모여 종이에 구멍도 아주 커다란 모양으로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사람도 살면서 일상의 지루함과 현실의 이기심 앞에 서로를 비난하고 원망하고 탓하는 시간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이 사람하고 결혼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은 겪지 않을텐데.’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이렇게 살던데 나는 왜 이런 집에 시집와서 이렇게 살고 있을까?’


그럼 가끔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펴며 진짜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했으면 어쨌을까? 하는 공상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신기한 건 그렇다고 그 상상속에서 결론이 행복하게 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도 분명 또 다른 문제가 있었을거야. 어쩌겠어. 내 선택인데.’


늘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어릴때는 사실 내 삶을 바라보고 가기도 바쁜지라 타인의 삶은 둘러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나만의 욕심과 부족함에 사로잡혀 판단하고 비난하고 그러기를 반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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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릴 때 우리 부부의 가장 큰 다툼은 늘 육아문제였고 사소한 집안일 처리였고 단돈 얼마의 돈을 낭비하는 것이 큰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들여다보면 그 중 중요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빼고 보면 무엇이 있다구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과거 흘러가는 인연으로 만난 그들이 참 감사합니다.

만약 그 중 한 명이 흘러가지 않고 나의 인연이 되었다면 지금 우리 남편과 아이들을 못 만났을테니까요.


그들과의 삶이 더 중요했을지 어찌 아냐구요? 물론 그럴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럴수 있는 확률과 현재 내가 가진 것을 비교할 수 있는 가치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현재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이 가득하니 이것으로 그들은 분명 어떤 누구보다 대단한 존재들인것입니다.


하나 하나 뜯어보면 대학교 1학년, 7살 많던 선배는 지금 생각하니 성격이 남편보다 좋지 못합니다.

분명 싸움을 했다면 만만치 않았을 성격입니다. 또 누군가는 남편보다 똑똑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영리한 사람을 좋아하니 분명 또 불만이었을겁니다.


어쩌면 과거의 누군가는 사람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가버린 그 시절의 풋풋함과 신선함이 그리운 것입니다.

내 인생의 그 아름다운 시간이 그립다 보니 그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함께 그리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 따지면 제가 가장 그리운 사람은 제 나이 21살 때 만난 23살 까만 얼굴의 복학생 선배입니다.

늘 자신감에 당당하고 유머스럽고 자상하던 그 선배.

어린 나이에도 세상을 다 막아 줄수 있을 것처럼 허풍을 치며 밤하늘의 달도 별도 따주겠다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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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제게는 가장 그리운 사람입니다.

저는 그 사람의 안부를 늘 듣고 있습니다.

그 어린 시절의 패기는 모두 세월에 묻혀 중성화되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애쓰는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성실하고 따듯한 마음으로 주변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가끔은 그분도 설레던 20대의 감정을 그리워하며 그때의 나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주 찰나일 뿐 그와 함께 하는 현재의 부인과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그러니 그와 나는 시간의 그림움을 그리워 할 뿐 서로의 존재는 늘 현실에 있는 모습를 품고 살아갑니다.

그는 현재 52살 내 남편이고, 나는 50살 그의 아내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늘 그리움이 자리잡고 있지만 그 중 가장 아련함은 그저 순수함으로 똘똘 뭉쳐 마음의 한 점 찌거기도 없이 다 드러내던 그 시절입니다.


“여보야, 당신이 좀 모르나 본데 여자친구한테 함부로 옛날 여자친구 얘기하면 안 되는거야. 그래도 살아보니 내가 좀 괜찮지? 당신은 참 복도 많아. 그치? ㅋㅋㅋ”

어쩜 과거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은 현재를 또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현재가 너무 어려운 사람은 과거의 그리움이 아닌 후회를 담고 살아가고 있을테니까요.


처음 글쓰기 주제로 ‘그리운 사람’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는 자연스레 이루지 못했던 인연들을 찾아 보았지만 이상하리만큼 안타까운 이가 한 명도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루지지 않은 그들이 감사합니다.


어제 밤 산책길에 아들이 그럽니다.

“나는 우리 아빠를 참 좋아해.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엄마가 우리 어릴 때 그렇게 교육시켜 줘서 그런 것 같아. 기러기 아빠는 고생도 엄청하고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도 많더라구. 나는 함께하는 우리 집이 참 좋아.”

이러니 어찌 딴 사람을 생각합니까? 콩깍지 가득한 아들이 떡하니 옆에 있는데. ㅎㅎㅎ


그럼에도 살아갈수록 신기하리만큼 나 자신이 점점 더 중요해집니다.

오롯이 나의 시간, 나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내가 그립습니다.

어느 시구절처럼 나는 매번 속으로 되뇌입니다. ‘나는 내가 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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