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길 잘했다.

뇌졸증으로 아픈 엄마는 대한민국 최고 팔자 좋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by 해피영희

“아쿠~ 니가 들어서 내를 안 살렸나~ 고맙고 미안하데이~”


5주가 또 쏜살같이 되돌아 와 뇌졸중으로 고생하는 엄마를 보러 친정을 갔습니다. 지난번 방문까지만 해도 치매와 셤망 현상이 점점 심하게 진행되어 가족모두가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매일 엄마와 생활하는 아버지의 고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참 놀라운 것이 하나의 기능이 마비되면 분명 다른쪽의 기능이 부족한 영역을 보완하기 위해 초월적으로 발달하나 봅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왼쪽 편마비가 오고나서 엄마는 엄청난 청각과 기억력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보지 못한 음식물도 냉장고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말해주고 대문밖에서 가족끼리 나눈 대화도 인지를 합니다. 혹여나 당신을 두고 가족들이 포기할 까 하는 두려움이 있나 봅니다. 그러니 초월적인 기억력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물리적으로 진행되는 병의 공격은 어쩔수 없어 밤이 되면 아버지를 공격하고 욕하기 시작합니다. 자식들에게 서운한 것만 지적하고 서러움에 눈물을 흘립니다. 늘 말하지만 엄마는 아프고부터 아이러니하게 대한민국 최고 팔자 좋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매일 8시간 요양보호사의 생활 지원을 받고 매 주말 5남매 자녀가 1명씩 방문하여 몸에 좋고 맛나다는 것은 다 먹고 누리고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구입한 다리지압기, 온열기, 마사지기 등으로 임시 물리치료실이 부럽지 않습니다. 우리도 쉽지 않은 체리와 최고급 과일을 매일 끼니마다 드시고 피시콜라겐, 아쿠아 콜라겐, 석류콜라겐, 락토핏, 영양제, 한약도 시간마다 빼먹지 않고 드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매일이 서럽습니다. 그런 엄마를 지켜보는 우리는 점점 지쳐 갑니다.


우리 형제는 1남 5녀입니다. 제 위로 언니 둘, 오빠 한명, 아래로 여동생이 둘입니다. 외동아들인 오빠는 사실 정신적인 존재이지만 실제 영역에서 행동가는 바로 접니다. 아빠, 엄마의 신상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모든 일은 제게 연락이 오고 저를 통해 결정되고 해결됩니다. 엄마를 울산 재활병원에 모시고 올 때도 제가 병원 원무과에 근무하는 동서의 인맥을 동원했고 엄마를 다시 재가복지 서비스로 모실때도 초등학교 내 친구를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늙어가는 부모님의 아린 모습이 차마 눈물로 얼룩져 형제들에게 매주 1명씩 당번을 정하고 부모님을 보러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아마 제가 장녀였다면 추진하기 힘들었을겁니다. 저는 서열로는 4째 이다 보니 오빠나 언니들이 받아들이기 쉬웠을 겁니다. 그렇게 의도하지 않게 저는 해결사가 되었습니다. 3년째 이어지는 엄마의 병간호에 다들 점점 지쳐 갑니다. 서로를 토닥이며 할 수 있다고 파이팅도 합니다. 사실 혼자였으면 못할 일입니다. 그래도 6명의 형제가 똘똘 뭉치니 위로도 되고 두려움도 적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얼마전 찾아보니 수면영양제가 숙면에 도움이 된답니다. 그래서 또 효과가 제일 좋다는 수면영양제를 냉큼 사서 보냈습니다. 아버지 말로는 효과가 있는 듯 하답니다. 내침김에 병원 의사선생님께 셤망 증상을 완화하는 약 처방도 부탁드렸습니다. 아버지께 말을 했지만 어느새 늙어가는 기억력에 뚜렷한 전달을 어려워 하시길래 직접 전화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주에 방문하니 엄마의 언어가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난번은 “저거는 내 말만 하면 지랄이다. 너그 아버지가 젊어서 내를 얼마나 고생시켰는줄 아나?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야 병이 나을낀데 아무도 내 맘을 몰라준다. 내가 너무 억울하다. ”


그런데 이번주는“너그들 덕분에 내 얼굴도 좋아지고 원도 뜻도 없다. 너그 아버지도 고맙다. 내 땜에 고생 안하나~ 다들 미안하고 고맙데이~”


엄마 말에 알 수 없는 감정이 뭉클 합니다. 엄마가 건강할때는 천년만년 그리운 엄마였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감동적인 단어가 ‘엄마’이고 언제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존재가 엄마였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아프고 채 3년 만에 아버지도 우리도 모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버틸 수 있을지 고민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던 중 만난 엄마의 ‘고맙다’는 말이 새롭게 희망을 줍니다.


처음 엄마가 쓰러졌을 때 형제들에게 그랬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버틸수 있을지 모른다.
다만 엄마는 혼자서 우리 6남매 키웠고 명절이면 차가 터져나갈만큼 챙겨주던 엄마였고 심지어 줄게 없으면 떡볶이 떡이라도 내려서 우리에게 보내던 인정스러운 엄마였다고.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거 당연한 듯 맛있게 얻어먹고 살았다고.
살면서 사기도 몇 천만원 당하고 즐거움을 위해 몇백만원 쓰기도 하는데 우리 부모니까 돈도 좀 쓰자고.
우리 자식들이 우리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는건 확실하니 부끄러운 부모는 되지 말자고..

참 오지랖처럼 한 말인데 우리 형제들이 모두 울먹이며 동의했습니다. 그 덕분에 3년이나 온 겁니다.

토요일 오전이 되면 아버지의 핸드폰이 어김없이 울립니다.

“오늘은 누구랑 같이 오노? 뭘 좀 사 놓을까? 니 뭐 먹고 싶노?”

그럴 때 마다 저는 이런 소리가 동시에 들립니다.

‘오늘 네가 오는 것 맞지? 못 오는건 아니지? 아버지 혼자는 두렵고 힘들다.’


아버지에게 자식들의 방문은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혼자서 그 긴 싸움을 하라고 하면 벌써 아버지도 병이 걸렸을 겁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 내가 손을 놓아도 뒤에서 받쳐줄 사람이 있다는 든든함, 필요하면 언제라도 달려와 줄 보호자가 있다는 안도감이 아버지를 버티게 할 겁니다.


어렵지만 포기하지 않길 잘 했습니다. 뽀얗게 부드러워진 얼굴을 보며 우리 엄마가 저렇게 미인이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까맣게 까칠해져 가는 아버지가 너무 마음 아프지만 밥맛이 참 좋다며 밥공기를 비워가는 숟가락에 또 안도감이 보태어 집니다. 부모는 어린 자식의 우주이지만 성인의 자녀는 늙은 부모에게 사리나무 울타리 보다 못합니다. 그래도 가 보렵니다. 그저 먼후일 부모님이 안 계신 그 어느 시간 가슴을 도려내는 눈물 한방울만 피해보고 싶을 뿐입니다.


“엄마가 너무 좋아~” 22살 딸이 보드랍게 품안으로 파고 듭니다.

어쿠~ 내새끼~ 감동으로 온몸이 짜릿합니다.

분명 나도 언젠가 나이든 엄마가 될겁니다. 우리딸이 그때도 이렇게 나를 안아주면 좋겠습니다.

정말 그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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