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어머니, 죄송해요. 4시까지 어린이집 오셔서 행복이 데려가시면 될 것 같아요.”
“아, 네~”
그날은 정말 특별한 어린이집 사정으로 아이를 빨리 귀가 시켜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부모님들은 자동차로 3시간 이상 타고가야 하는 시골에 계시고, 울산에는 남편과 저 밖에 없다 보니 갑작스러운 아이의 육아는 정말 어려운 돌발 상황이었습니다.
남편도 중요한 회사일로 시간이 안 되고 어쩔 수 없이 제가 아이를 데려 오기로 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조퇴를 하면 되는데 2003.10월 그 당시만 해도 워킹맘에게 있어 근무환경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약 200명이 넘는 교육청 직원 중 여직원은 채 15명 전후 이고 그중 일부도 과장님의 일상 업무 지원을 위한 인력이었습니다. 즉 육아나 개인적 형편으로 업무에 어려움이 있다면 처음부터 교육청 근무지원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날따라 같이 근무하는 팀장님과 차장님은 중요한 출장을 가셨고 혼자 사무실을 지키며 꼭 처리해야 할 업무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감히 조퇴를 한다는 것은 정말 아줌마의 민폐인 것입니다.
그 당시 제가 소속된 팀은 교육청 조직혁신을 위해 신설된 TF팀으로 기존의 좁은 사무실에 합류할 수 없어 과 입구 옆에 있는 작은 별실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빈 사무실에 아이를 앉혀두고 일을 하면 되겠다는 계산이었습니다. 10분 거리에 있는 어린이 집에서 아이를 데려와 팀장님의 빈 책상의자에 앉히고 아이가 좋아하는 컴퓨터 만화를 켜 주었습니다.
4살이 된 딸은 정말 야무지고 똘똘하여 엄마 말을 잘 알아듣고 얌전히 만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원체 작다 보니 소리만 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완벽한 설정이었습니다.
휴~ 긴장된 한숨을 내쉬고 내려놓았던 업무를 처리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벌컥 사무실 문이 열리는 겁니다.
“최영희, 니 혼자 있나? 열심히 근무하고 있나 싶어서 와 봤다”
“아, 네.... 과장님....”
정말 심장이 멎는다는 표현 밖에는 없었습니다. 한 순간 시간이 멈추었습니다.
당시 근무환경 중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과장님의 난폭한 성격이었습니다. 아마 지금 같으면 갑질 신고 되어도 벌써 되었을 겁니다.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결재판도 던져버리고 인격적인 모욕도 아무렇지 않게 하던 분입니다.
게다가 매일 직원들의 업무능력을 비난하는지라 어느 누구도 유쾌하지 않고 늘 두려운 존재로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부서로 전입한지 3개월이 채 안된 시기여서 누구보다 긴장감이 높았고 정말 과장님의 목소리만 들어도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과장님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것도 딸을 데려다 놓고 일을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심장이 터질 듯 하고 숨이 막혀서 서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제발, 행복아~ 제발~ 조용히 해야 한다.’
다행히 과장님은 문 입구에서 쓱~ 사무실을 둘러보더니 문을 닫고 나갔습니다.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아이는 귀에 씌워준 헤드셋 덕분인지 아무 일도 모른 채 여전히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온몸에 기운이 없고 잠도 못자고 숨쉬기도 힘들었습니다.
회사 주변에 유명한 한의원이 있었습니다. 너무 힘이 없으니 보약이라도 한 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맥을 짚어 보더니 그럽니다. “최근에 크게 놀라는 일이 있으셨어요?”
그 한마디에 눈물이 납니다. 너무도 놀랐던 그 순간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는 한 달 월급과 비슷한 돈을 주고 정말 몸에 좋다는 약을 지어 왔습니다.
왠지 너무 불쌍한 저를 위해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평생에 잊지 못할 일입니다. 왜 그리 무식했냐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때의 어린 나와 그때의 시대적 압박은 그리 무식한 시간을 만나도록 했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육아로 힘들어 합니다.
그나마 힘들다고 말이라도 할 수 있는 시절입니다. 힘들다는 말조차 입으로 틀어막으며 죄인처럼 지낸 시간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세상에 귀하게 낳아 귀하게 기르고 싶은 자식이었지만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개념이 없던 그 시절 그렇게 저는 자연스레 나와 아이의 영혼을 죽여 가며 점점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무섭고 어려운 시간을 가져올 것인지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인생에 밀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누군가 ‘너희는 둘이 벌잖아.’라는 말이 정말 싫었습니다.
‘당신이 내 아픔을 알아요?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알아요?
나랑 내 새끼 영혼을 맞바꿔 벌어온 돈이에요.
아파 힘없는 아이를 어린이집 바닥에 내려놓고 가는 엄마의 피 토하는 심정을 당신이 아세요?’
세월이 흘러 많은 제도적 보완도 생기고 사회적 가치관도 변했지만 여전히 엄마들은 힘이 듭니다.
엄마가 된 이상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힘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먹지도 자지도 활동하지도 못하는 생명체를 건강한 한 성인으로 길러내는 엄청난 시간입니다.
그런 시간이 어찌 편하겠습니까. 그러니 모든 부모들의 힘든 시간을 원론적으로 없앤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그 힘든 상황에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 가끔 이유도 없이 두렵고 서러운 감정을 인정하고 토닥거려 주는 공감, 그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행히 조금씩 세상은 변해가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나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트북으로 뭔가를 그리고 있는 딸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감사하게도 건강하고 예쁘게 잘 자란 아이 덕분에 이제는 그 모든 시간이 지나간 추억이 됩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고 그렇게 아파했기에 지금 이 순간이 존재 하는가 싶습니다.
사무실에 육아휴직을 끝내고 7월 1일로 복직한 직원이 있습니다.
“ㅇㅇ씨, 다른 것 없다. 늘 아이가 먼저다. 잊지 마라. 무조건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