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ㅇㅇ이는 아버지 환갑 전에 장가를 보내야 한다.
너그 연애도 오래했고 미룰 이유가 없다 아이가. 결혼해라.
지금 결혼하면 숟가락 하나도 안 가져와도 된다.
니가 우리 ㅇㅇ이랑 결혼 안 하모 내는 선봐서 장가 보낼끼다.”
25살 어린 나이에 5년차 연애를 하던 오빠의 어머니로부터 반 협박을 받았습니다.
제가 결혼 안한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다른 여자랑 장가를 보내겠다는 그 말에 순진한 저는 그만 넘어가고 말았지요. 그렇게 1997.12.21. 제 나이 25살에 어린 신부가 되어 버렸습니다.
주변에서는 급작스레 진행된 결혼에 무성한 추측이 나 돌았습니다.
아무래도 재들 사고 쳐서 급하게 결혼하나보다 하는 시선이 다수였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설명해도 믿어주지 않는 현실에 절대 아이는 빨리 낳지 않으리라 하는 야무진 결심을 했습니다.
결혼 2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않자 시어머니는 무슨 문제가 있나 해서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자식이란 것이 하늘의 뜻이 있어야 가능한 인연이라 그러했는지 개인적인 의도보다 1년 이른 시점에 생명의 잉태가 이루어졌습니다. 기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딸의 임신사실을 알기 한 달전 부산광역시교육청에서 중등영어 교원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초등 영어전담교사를 대거 선발하는 시험공고가 있었습니다. 대학 친구들은 모두 그 시험을 보기 위해 원서를 넣으러 간다고 했습니다. 친한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고 저도 울산에서 부산을 가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원서 접수를 위해 출발하려는 그날 너무도 몸이 아팠습니다. 온 몸에 열이 나고 뼈마디가 쑤시는 통증에 꼼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 선발되었던 친구들은 그 이후 특별연수를 받고 모두 정규교사로 전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 당시 선발조건은 정규교사가 아니었기에 큰 미련 없이 원서접수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가정주부로 매일 청소를 하고 남편 밥을 하고 무료하고도 우울한 시간을 보내던 내게 큰 변화가 온 것입니다. 원래 예민하던 성격은 임신으로 인해 변화된 몸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고 입덧이 너무 심해서 하루 10번 이상을 토하다 보면 어느 순간 헐어버린 위벽으로 피까지 토했습니다. 그럼 무서워서 엉엉 울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친정엄마의 “걱정마라. 그 병은 안 죽는기다.”한마디는 너무도 서러웠지만
혹여나 딸이 어찌될까 집으로 데려다 감성돔 회도 사 먹이고 ‘오디’가 먹고 싶다는 저를 뽕나무 밭까지 데려다 준 친정아버지 덕에 행복한 추억도 있습니다.
입덧이 잦아드니 이번에는 하혈을 합니다. 병원진단에서는 자궁입구를 태반이 막고 있어 아이가 커 갈수록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출산전까지 그런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한답니다.
그렇게 엄마인 저를 여러모로 애를 먹이는 상황에 친정엄마가 또 한마디 합니다.
“니는 참 별나다. 그런데 뱃속에서 애 먹이는 아들이 영리하더라. 똑똑한 아가 태어날 낀가 보다”
‘임신 중에 힘들면 영리한 아이가 태어난다고? 그럼 얼마든지 참아줄 수 있어’
딸의 출산예정일은 2000.1.6. 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몸을 많이 움직이면 출산일이 앞 당겨진다고 하는 겁니다. 까닥 잘못하다간 12월생이 될 판입니다. 교육학을 공부한 저는 발달과업이라는 단어에 꽂혀 아이에게 불리한 학교생활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2월 달에는 정말 꼼짝도 안하고 자극을 줄 수 있는 행동은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5,4,3,2,1 와 ~ 드디어 2000.1.1. 새천년이 열렸습니다. 한 세기를 뛰어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지요.
그날부터 저는 엎드려서 걸레로 방도 닦고 밀린 대청소도 하고 계단을 오르는 등 열심히 운동을 했습니다. 그렇게 2000.1.7. 나의 딸 행복이가 태어났습니다.
너무도 신기하고 귀여운 아기가 믿기지 않아 한밤중에 깨어나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했습니다.
뱃속에서 애 먹인 것을 보상하기라도 하듯 너무도 잘 먹고 잘 자고 방긋 방긋 예쁜 아기였습니다.
엄마가 되자 알 수 없는 감동과 삶의 책임감이 내려왔습니다.
밥도 꼭꼭 잘 씹어 먹고 신호등도 2-3번 좌우 둘러보고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와 남편의 보호아래 연약한 최영희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처음으로 내가 보호하고 책임져야 할 한 생명이 탄생 한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품안에 안고 그 맑은 눈동자에 비친 나를 보고 맹세 했습니다.
“아가야, 엄마가 돈으로는 이 세상 최고를 줄 수는 없을 거야.
그렇지만 마음으로 주는 사랑은 세상 누구보다 뒤지지 않게 할게
어떤 경우에도 네가 사는 세상 행복하도록 엄마가 최선을 다 할게.
엄마에게 와 줘서 고맙다. 사랑한다. 우리 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