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유별난 엄마였다.

by 해피영희

사람은 타고난 기질과 후천적 환경에 의해 형성된 성격으로 점점 성인의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학창시절 저를 뒤돌아보면 악착같이 목표를 세우고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 40이 눈앞에 도달한 어느 날 제 유전 세포에 반짝 불이 들어오고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갑자기 새벽에도 일어나고 뭔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악착같이 몰아붙이는 열정을 보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라면 못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어린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버텨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니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하고 가족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아이들을 잘 기르기 위해서는 남편과의 사이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우주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부모들의 사이가 좋지 않으면 자연스레 불안과 우울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행복하지 않은 아이가 잘 자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결혼 전 남편과는 그리도 애절한 사랑으로 맺어진 사이이지만 누구나 그렇듯 결혼하고 부모가 되고 반복되는 일상과 무거운 삶의 짐에 점점 무감각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흐르는 시간 중간 중간 만나지 말아야 할 사연과 아픔을 던지며 마음 깊은 곳에 큰 상처를 내기도 했습니다.


일단 남편을 애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쉬울 리 있나요. 전 매일 스스로 콩깍지를 만들고 본드 칠을 해 가며 세뇌를 했습니다.

‘세상에 우리 남편처럼 자상하고 착한 사람은 없다. 이 남자를 만난 것은 내 인생 최대 행운이다.’


저는 남편과 점심 데이트를 자주 했습니다. 사람들은 아침에 집에서 봤고 저녁에 또 볼 텐데 왜 점심을 먹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정말 모르는 말씀입니다.

집에서 만나는 우리는 너무도 편한 모습이지만 출근 후 모습은 옷도 화장도 단정하고 긴장된 모습을 유지 하고 있습니다. 분명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게 되거든요.


부부 관계가 좋아지니 자연스레 아이들에게도 다정한 부모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 물론 매번 천사였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악덕부모는 아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ㅎ

남편의 도움을 받아 매주 도서관을 가고 캠핑을 가서 밤낚시도 하고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에서 세상없이 행복한 물놀이도 했습니다.


휴가철이면 울산 시내 맛 집 투어도 하고 촌놈들 서울여행도 가보고 4년 동안 새벽운동도 다니고 개봉하는 영화는 거의 다 관람하며 침 튀기는 토론도 하고 정말 이게 가족이구나 하는 경험을 끝도 없이 나누었습니다. 그 시간 속에 가끔 다툼도 겪고 삐치기도 했지만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4명이 함께였고 서로에게 절대 끊어지지 않는 든든한 동아줄이 되어 주었습니다.


“아버지를 넘어서는 아들은 없다. 아들은 아버지가 보여주는 세상에 자라나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보았을 때 숨이 막히는 듯 했습니다. 내가 경험하고 가진 것 이상을 넘어서는 보여줄 것이 없다는 말에 제 자신을 뒤 돌아보았을 때 너무도 협소한 세상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삶의 멘토를 많이 만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고 순전히 제 부족한 생각에 의존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제 주변의 어른들에게 부탁해 보았습니다.

존경하는 과장님, 교육국장님, 교육장님, 경찰청장님, 부교육감님, 그리고 또 훌륭한 다수의 선배들...


감사하게도 그분들 모두 기꺼이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 주시며 맛있는 다과도 주시고 정말 보석 같은 말씀들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아이러니 하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분들의 멘토는 아이들 보다 제게 훨씬 많은 성장을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변에 카이스트, 서울대 의대, 포항공대 등 일명 명문대를 간 선배들의 이야기가 들리면 그분들의 부모님께 전화를 하거나 식사 등을 통해 공부비법도 전수 받았습니다. 아, 여기서 하나, 제가 그분들 모두와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분들과 아는 분들을 수소문해서 전화번호를 받고 양해를 구하는 식이었습니다.

쉬웠냐구요? 당연히 어려웠죠. 그래도 제가 그랬잖아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못 할게 없었다고.

그분들을 만나며 공통적으로 알아낸 비법이 있는데 그것은 독서와 여행이었습니다. 아이들의 행복한 경험과 사고확장의 시간이 결국 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책을 파고드는 지식공부에 올인 하지 않았습니다. 마인드 셋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에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 기회를 많이 주었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사실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인간의 사고는 결코 단편적인 하나의 지식이 아닌 다수의 지식융합으로 고차원적 창조의 세계가 형성되어 진다고 믿기에 과거 어느 때 발현되지 않았다 해도 미래 언젠가는 번뜩이는 삶의 한 기초가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뒤돌아보면 저는 참 별난 엄마였습니다.

“애들에게 공부로 스트레스 주면 당연히 안 되지. 그런데 통제보다 더 나쁜 것은 방임이야. 자기 진로가 확실하다면 문제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학생 때는 공부 열심히 해야지.”


아이들이 가져오는 명확한 답에는 동의했지만 막연한 허상은 결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그런 엄마의 진심을 잘 이해해 주었고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한 시간을 보내주었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모두 성인이 되었고 자기들의 세계관이 너무도 확고하기에 제 역할은 든든한 마음지기 입니다.

결국 부모 자식의 관계는 유한한 시간입니다. 아이가 발달과업에 따라 성장하는 것처럼 부모도 시기에 맞는 적절한 조력과 안내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 시기는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분명 의도와 달리 나는 아이들에게 너무 과하거나 너무 부족한 엄마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자아를 잘 인정하고 자라 준 나의 천륜들에게 진심 감사드립니다. 그들이 있어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이렇게 나의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하는 사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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