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6학년을 맞이하기 전 학교폭력자치위원회라는 큰 파도를 잘 넘겼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시작이었습니다.
새 학기를 시작하기 전 교감선생님을 면담했습니다.
“교감선생님, 이번 학교폭력 사항 3월 달 학부모 총회 할 때 감추지 말고 꼭 알려 주세요.
그래서 저라는 사람이 미쳤다고 알려 주세요.
저 엄마가 미쳐서 저 집 아이 잘 못 건드리면 큰일 난다고 꼭 교육시켜 주세요.
이제 다시는 당하지 않을 겁니다.”
6학년 담임선생님은 다행히 천운으로 아이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 상황을 도우려고 고민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어머니 제가 며칠 지켜봤는데 행복이에게 큰 문제는 못 찾았어요. 이해를 못하겠어요. 지금은 어려서 그런데 조금 더 크면 얼마든지 자기 세상을 잘 만들어 갈 수 있는 아이에요.
그래도 제가 잘 지켜볼게요. 언제라도 연락주시고 의논해 주세요.”
여자 아이들의 특징이란 잘 지내다가도 누군가 개입하여 둘 사이를 이간질 하면 느닷없이 문제가 발생합니다.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여자아이 한명이 행복이와 친한 친구사이를 이간질 하고 절대 씻지 않는 더러운 아이라고 소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과 달리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상황에 담임선생님이 먼저 개입을 하면 행복이가 고자질 한 것이 되어 상황이 더 복잡해 질 수 있으니 행복이가 그 아이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식으로 시끄러워지면 담임선생님이 개입하기로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복이가 그 아이와 약간의 논란을 일으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행복이는 또래보다 키도 체격도 크기 때문에 힘으로 싸워도 충분히 이길 수 있지만 마음의 힘이 너무 약해서 거친 말에 대꾸를 못하는 성격이었습니다.
학교를 가기 전날 아이를 붙들고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하는 장면을 설정하고 역할극을 했습니다.
자꾸만 작아드는 아이와 10번 20번 상황을 반복 연습했습니다.
“엄마, 나 안할래. 너무 힘들어. 나 말 못해”
“행복아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야. 네가 앞으로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겨내야 해.
그 아이와 말싸움을 하려고 하지마라. 너는 마음이 약해서 그 아이를 이길 수 없어.
헛소문 내고 다닌 것에 대해 사과하라는 말만 정확하게 전달해.”
다음날 학교에 간 행복이는 그 아이에게 사과하라는 말을 했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그 아이와 다툼이 발생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자연스럽게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행복이에게 그런 행동과 소문을 낸 것에 대하여 공개사과를 하도록 했습니다.
반 친구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행복이는 사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아이들도 함부로 행동하지 않게 되었고 행복이도 급속도로 자신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과거보다 점점 목소리를 내는 능력이 늘어가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을 만나며 희망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기적인 것이 사람입니다. 어느 날 전화가 한통 왔습니다.
공개사과를 한 아이의 어머니였습니다.
전화를 해서 제게 욕을 하기 시작합니다. 평생 태어나서 욕이라고는 뱉어보지 못한 저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어머니 왜 전화 하신 거에요? 말씀을 좀 가려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대한 예의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행복이 엄마 진짜 별나고 이상해. 애 대신 학교를 다니지 그래. 진짜 또라이 같애”
한 5분 가량 들어주고 예의를 지키다 순간 머릿속으로 며칠 전 택배 아저씨와 싸웠던 장면이 생각나는 겁니다. 택배아저씨의 실수로 우리 집에 와야 할 배를 이름이 비슷한 다른 아파트로 배달을 시켰는데 그 사이 택배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당연히 아저씨에게 확인해 달라고 전화를 했더니 짜증을 내며 욕을 하는 겁니다.
이에 화가 난 저도 언성을 좀 높였습니다.
그런데 경어체를 사용하며 화만 내던 저와 달리 고된 삶의 지친 언어로 욕을 하는 그 아저씨에게 저는 그날 엄청난 정신적 테러를 당했습니다. 한마디로 게임이 되지 않았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평생 들을 욕을 그날 다 들은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택배 아저씨가 사과를 하고 물건도 찾아서 다시 가져다주었지만
‘아, 저분에게는 내 언어가 통하지 않는구나 하고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 어머니도 지금 그 택배아저씨와 비슷한 상황이다. 내 언어는 통하지 않는다.
비 정상인을 정상인의 언어로 접근해서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
그때부터 갑자기 저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그래서 어쩌라구요? 저도 제가 대신 학교 다닐 수 있으면 다니고 싶어요. 말씀 잘 하셨어요. 저 똘아이구요 미친년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미쳐서 뛰어가기 전에 그만하세요.
눈이 뒤집어지면 저도 어떻게 될지 몰라요. 한번 겪어 보시겠어요?”
“지금 행복이 엄마 입으로 미친년 이라고 말 한 거에요.”
“네. 저 미친년 맞다구요. 어쩌라구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평소 내 모습이 아닌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또 다른 내가 다녀갔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고 몸이 후들거렸습니다.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래도 또 한 고개를 넘었다는 묘한 위로가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하나의 봉우리를 넘으며 아이도 나도 변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진정 바닥을 만나면 알 수 없는 초인적 힘이 나오는 것이 맞습니다.
그날 그 어머니와의 사건은 평생 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교훈이 되었습니다.
‘비정상인은 절대 정상인의 언어와 행동으로 상대할 수 없다. 더 심한 비 정상인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