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의 싸움만으로도 힘든 시간인데 딸의 5학년 담임선생님은 정말 제대로 대못을 박았습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딸이 다른 날보다 더 슬픈 표정으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1학년 때부터 친한 같은 반 아이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행복이 오늘 속상하겠다. 학교에서 너무 억울한 일이 있었더라. 위로 잘해 줘요”
저는 딸에게 무슨 일인지 자조지종을 물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반 규칙 중에 책상 밖으로 발을 내밀면 체벌을 하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딸이 지우개가 떨어져 몸을 구부리며 자연스레 발이 아주 조금 벌어졌나 봅니다. 그럼에도 다행히 책상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발이 밖으로 나갔다며 선생님에게 체벌을 하라고 한 겁니다. 딸은 야무지게 상황을 설명했고 주변아이들도 딸의 말에 증인을 해 주었습니다.
정말 개떡 같은 규칙도 이상하지만 진실이 확인되었다면 상황이 마무리 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주장이 강한 아이들 몇몇이 지속적으로 선생님에게 체벌을 요구하자 어이없게도 책상위로 올라가게 한 뒤 발바닥을 회초리로 때렸답니다. 원래는 2대 이지만 억울하니 1대만 체벌을 했답니다. 피가 확 솟구쳐 올랐습니다.
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 겁니다. 언젠가 딸이 자기는 엄마가 슬퍼하는 것이 제일 슬프다는 말에 울음을 억지로 삼키고 가만히 딸을 안아 주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했을까? 얼마나 답답했을까? 진짜 지랄 맞다.
아무리 노력해도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조용히 밖으로 나갔습니다. 소주 한 병과 새우깡 한 봉지를 사고 아파트 주차장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차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만 해도 나름 알뜰했던 나는 중고 마티즈를 타고 있었습니다. 핸들이 바로 가슴팍으로 들어오는 그 작은 공간에 앉아 목 놓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엉, 엉, 엉’ 가슴을 치고 또 치고 머리를 찧어 뜯고 또 뜯고
속에서 천불이 난다는 표현이 딱 맞았습니다. 소주병을 컵도 상관없이 입으로 가져가 꿀떡꿀떡 마셨습니다. 눈에서 피 눈물이 났습니다. 참 외로웠습니다. 그 답답하고 숨 막히는 순간 누구 한명 붙들고 위로 받을 곳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마음이 아플테니, 동생들은 그래도 내가 언니인데, 친구들은 좋은 얘기가 아니라 함부로 말할 수 없고, 남편은 같이 슬픔에 잠길 필요가 없다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순간 인간이란 정말 아프고 슬플 때면 처절하게 혼자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신적 긴장과 술기운으로 몸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과 호흡이 올라 왔습니다.
까닥하다간 또 119를 부를 수도 있겠다 싶어 긴 호흡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날이 밝으면 선생님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학교를 방문해서 담임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러셨어요?”
어이없게도 자신도 딸이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지만 아이들이 너무 강력하게 이야기를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너무 어이가 없고 문득 그 선생님도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분을 붙들고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싫어 조용히 자리를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바싹 타들어가는 내 영혼을 부모님들이 전혀 모를 리는 없었습니다. 친정엄마는 매일 전화해서 그랬습니다.
“그기 니 액땜이다. 그일 아니모 다른일로 힘들긴데 니 명줄 잇는기다. 그라니까 마음 편히 먹어라”
그럼 전 울면서 또 그랬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내 새끼냐고. 그 액땜이 다른 것도 아니고 왜 내 생명 같은 새끼를 아프게 하냐고”
시어머니가 전화를 했습니다.
“내가 어디 가서 물어보니 굿을 하모 좋다는데 니가 굿은 안 할 끼고.
그래서 내가 내일 부적하나 하고 까맣게 태운 곡식 한 자루를 택배로 보낼꾸마.
그 곡식을 소금을 탄 소주랑 우리 행복이 다니는 길에 뿌리라.
그거 뿌리면서 마음으로 빌어라. 우리 행복이 편하게 해 주이소~ 하고“
평소라면 무시했을 그 비합리적인 행위도 너무도 절박한 심정이던 제게는 희망 같았습니다.
며칠 후 정말 10킬로 정도의 새까맣게 태운 곡식 한 자루와 부적이 도착했습니다.
부적은 아이의 방에 넣어두고 아주 큰 소주 한 병과 소금 한 봉지를 샀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밤 10시쯤이 되자 혼자 집을 나섰습니다.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딸이 다니는 도로, 캄캄한 학교 운동장, 학교건물 앞과 뒤 모든 곳에 태운 곡식 한줌과 소금 탄 소주를 뿌리며 빌었습니다.
“우리 행복이 행복하게 해 주세요. 그 어린것의 마음에 평화를 주세요. 그 아이가 받아야 할 어려움이 있다면 제가 다 받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만 힘들게 해 주세요”
그날 가는 길목 정말 간절하게 뿌려진 것은 한 줌 곡식과 술이 아니라 뚝뚝 떨어지는 제 눈물과 상처로 너덜거리는 가슴의 간절한 염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미친 엄마였고 간절한 순간이었습니다.
다수의 아이들과 외로이 혼자 싸우고 있는 아이의 슬픔이, 제게도 큰 세상의 무리와 혼자 싸우는 외로움으로 똑같이 쏟아져 왔습니다. 세상 누구도 대신 싸워주고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그 시간, 인생은 스스로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임을 지독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날 밤 뿌려진 간절한 염원의 씨앗은 외로움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 연약한 싹을 틔우고 큰 아름드리 나무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난 어느 날 정말 단단하고 가치로운 시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씨 뿌리기의 시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