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행복해(학교폭력 극복-자존감 회복)

by 해피영희

사람이 정말 황망한 일을 당하면 처음에는 누구나 그 상황에 당황하여 제대로 된 반응을 못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 살아갈 방법을 찾고 적응을 하나 봅니다.

처음에는 아이도 저도 세상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심한 내상을 입었지만 점차 마음의 냉정을 되찾고 반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누구보다 제가 단단해져야 했습니다. 기존의 생활 습관과 느슨한 사고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40년 가까이 아침 7시 10분 이전에 일어나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릴 적 너무도 자상한 아버지는 늘 그랬습니다. “방학인데 네가 자고싶을 때 까지 자. 밥도 먹고 싶으면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하렴.”


직장을 다니면서도 7시를 넘겨 일어나 아이들을 챙겨 어린이집 보내고 사무실에 도착하면 늘 숨 막히는 시간이었습니다. 더 이상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생기니 미뤘던 독서를 시작하고 새벽 운동을 했습니다.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도움을 얻어 딸, 아들을 데리고 새벽 수영 만 3년, 배드민턴 동호회 1년을 다녔습니다. 주말이면 어떤 경우에도 남편과 저는 아이들과의 이벤트로 시간을 보냈고 꼭 방문해야 하는 중요한 경조사가 있으면 인사 비용을 넉넉히 넣고 함께 참석했습니다.


매주 산으로 바다로 여행가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같이 읽고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누구보다 빨리 영화관을 방문했습니다. 한해 30편 이상을 보니 CGV VIP가 되고 그 혜택으로 받은 공짜 영화 쿠폰과 팝콘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아이는 아이클레이를 정말 좋아했는데 정기적으로 재료를 주문해 주고 작은 유리 장식장도 하나 사서 만든 작품을 전시해주고 늘 칭찬해 주었습니다.

식사도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특별하지 않으면 집 밥을 먹이려 했습니다. 부득이 주문해서 먹이더라도 접시에 담아 아이가 음식을 먹는 동안 맞은편에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혼자 외로이 허기를 채우는 음식은 절대 먹이지 않았습니다. 원래 성향이 물질에는 큰 관심이 없어 스스로 뭔가를 요구하는 적이 없었지만 어쩌다 관심을 보이는 것은 두 번의 망설임 없이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열심히 행복을 만들어 갔습니다.

아이에게

‘절대 너 혼자가 아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이 모두 네 옆에 항상 존재한다. 그러니 걱정 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당장은 표시 나지 않는 정성이 한겹 한겹 쌓여 아이의 얼굴에도 웃음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더니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을 마칠 때 쯤 제게 그랬습니다.

“엄마, 나 너무 행복해. 너무 행복해서 겁이 나. 미래의 행복까지 끌어다 쓰는 거면 어떡하지?”

‘아~’행복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사람 마음을 감동스럽게 하는 줄 몰랐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이 메였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에 드디어 열매가 맺히는 순간이었습니다.

“행복아, 걱정하지마. 너는 너무나 귀한 사람이라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어. 지금 그 행복 많이 많이 누려도 돼. 앞으로는 지금보다 100배 1000배 더 행복해 질거야. 그럼~”


정말 무서웠습니다. 잔인한 정서적 상처로 아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면 어쩌나, 저렇게 평생 자기 세상에 갇혀 외부와 단절되면 어쩌나, 나는 평생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죽어 가면 어쩌나.

상황은 어려워도 마음만은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초인간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참 고맙게도 아이는 그 흔들리는 생활 속에서도 탁월한 학습 능력을 유지해 주었고, 교육청 인문 영재도 선발되어 자기만의 재능을 잘 빛내 주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대충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런 아이를 부족한 엄마의 무관심 때문에 삶의 바닥으로 떨어지도록 할 수가 없었습니다.

‘화를 가득 담아 전달 한 말들 때문이었나?, 피곤하다는 핑계로 무심히 내 버려두었던 시간 때문인가? 작은 잘못에도 불같이 화를 내며 내 속의 악마를 소환했던 부족한 모습 때문인가?’

처음에는 모든 것이 제 잘못이라는 깊은 후회를 하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과거 내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10배 100배의 노력을 한다는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웃음이 늘어가고 날카롭던 정서도 안정되고 주변에 친구들도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넘어가니 완전히 자신의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웃음 많고 따듯한 가슴을 가진 눈부신 세상의 태양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게는 ‘감사’라는 단어가 마음에 자리 잡았습니다.

상담교육 대학원에 입학하여 상담과 마음공부를 하며 지난 시간 한없이 부족했던 제 자신을 무수히 만났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제가 내린 결론은 ‘아이의 99%는 부모의 노력으로 이루어지고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사랑이 가득해야 나눠줄 수 있는데 제가 직장, 육아, 가정일로 행복하지 않으니 아이에게 제대로 사랑을 나눠줄 수 없었고 절대적 수용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는 그렇게 말라 갔던 겁니다.


딸 덕분에 내가 나를 사랑하는 진지한 시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 이름을 매일 부르며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했고, 사람들에게 저를 해피영희라고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가진 것 없는 엄마이지만 그래도 저는 딸에게 하나는 찾아주었습니다.

“엄마, 나 행복해”

평생 제 가슴에 반짝이는 보석처럼 빛나며 죄책감으로 얼룩진 제 자존감을 따듯하게 감싸준 말입니다.

“고맙다. 행복아. 엄마도 너무 행복해. 사랑한다.”

작가의 이전글정말 미친 엄마였고 간절한 순간이었습니다. (희망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