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윅>
<존 윅>은 온갖 종류의 액션을 다 보여준다.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하는 존 윅은 맨 몸으로, 때로는 흉기를 들고 적들과 싸운다.
치열한 총격전을 벌이고 짜릿한 자동차 추격전을 펼친다.
<존 윅>은 키아누 리브스라는 슈퍼스타가 몸을 날리는 호쾌한 액션을 내세워
관객을 끌어들이려는 의도로 제작된 전형적인 흥행용 액션영화다.
<존 윅>의 기본 설정은
“은퇴한 전설적인 킬러가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악당들의 도발에 피해를 입고는 분노하면서
현역 시절의 본능과 솜씨를 되살려서는 복수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존 윅>은 영화계가 우려낼 만큼 우려내서
신선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길이 없을 듯한 뻔한 설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면서도
지나치게 감상적인 분위기에 젖어들지 않는다.
<존 윅>의 장점은 쿨하고 강렬한 스타일을 영화 내내 유지하면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전개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존 윅>의 영화적 배경은
관객들이 리브스가 자행하는 통쾌한 복수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판타지 공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시내에 있는 성당에 불이 났는데도 소방관 한 명 출동하지 않는 것도,
성당 앞에서 신부복을 입은 사제가 총살을 당하는 데도 신경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도,
존 윅의 거처를 찾아온 경찰이 암살자의 시신을 보고서도 못 본 척 돌아가는 것도
존 윅을 위한 판타지세계를 제공하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반영된 설정일 것이다
<존 윅>이 그나마 어느 정도는 현실세계를 바탕으로 구축된 듯한 느낌을 풍겼다면,
<존 윅>의 속편들은 온전히 판타지의 세계에서만 펼쳐진다는 느낌을 진하게 풍긴다).
그런데 <존 윅>에는
이 영화를 이전까지 만들어졌고 이후로도 만들어질 많은 영화들하고는
다른 차원의 영화로 만들어주는 요소가 있다.
그가 복수에 나서게 된 계기가 “강아지”라는 점이다.
복수의 서막은 러시아 마피아 두목의 아들 요제프가
존 윅의 빈티지 자동차에 눈독을 들이면서 열리지만,
존 윅의 분노를 결정적으로 폭발시킨 건 요제프 일당이 존 윅의 강아지를 살해한 것이다.
“고작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싶지만
데릭 콜스태드가 시나리오를 쓰고 채드 스타헬스키와 데이비드 리치가 연출한 <존 윅>을
비슷한 설정의 다른 영화들보다 한 차원 높은 영화로 올려놓는 것이 바로 그 “강아지 한 마리”다.
악당들의 손에 목숨을 잃은 데이지는
존 윅이 사별한 아내 헬렌 윅이 홀로 남게 될 존 윅을 염려해 남겨놓은
“사랑과 배려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 점을 잘 아는 관객들은 존 윅의 분노에 쉽게 공감하면서 그를 한껏 응원하게 된다.
<존 윅>의 특이한 점은, 그리고 뛰어난 점은
헬렌과 데이지가 스크린에 등장하는 시간이 상당히 짧다는 것이다.
헬렌은 몇 번의 회상장면에 잠깐 얼굴을 드러낼 뿐이고
데이지는 영화 초반에 요제프 일당이 존 윅을 습격할 때까지만 등장한다.
그런데도 헬렌과 데이지의 존재감은 영화 내내 지속되면서 존 윅의 복수에 타당성을 제공한다.
이건 그야말로 시나리오와 연출이 거둔 승리라 봐야 한다.
헬렌과 데이지라는 “정서적 핵심”을 제외하면
<존 윅>의 나머지 부분들은 철저히 상업영화의 공식에 따라 전개된다.
요제프 일당의 습격에 존 윅이 너무나도 무력하게 당하는 모습은
“천하무적 킬러”라는 존 윅의 캐릭터 하고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리 현역에서 은퇴한 지 꽤 긴 시간이 흘러다 하더라도
“두목의 아들”이라는 후광만 있을 뿐 싸움실력은 보잘것없을 게 분명한 요제프 일당이
거처에 침입했는데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리도 쉽게 제압된다는 건
이후의 전개를 위한 설정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존 윅>은 복수의 발단을 위한 이런 작위적 설정을 한 이후로
또 다른 빼어나고 인상적인 설정을 내놓는다.
“콘티넨탈호텔”이라는 공간이 그것이다.
범죄자들을 투숙객으로 받아 의료서비스 등 각종 서비스를 24시간 제공하는 한편,
호텔 내에서는 폭력 등을 쓰는 걸 금지하고 어길 경우에는 가차 없이 응징에 나서는 이 별난 공간은
<존 윅>을 다른 액션영화들과 차별화시켜 주는 독보적인 설정이다.
아울러 호텔의 지배인 윈스턴(이언 맥셰인)과 컨시어지 카론(랜스 레딕)은
강렬한 개성을 보여주면서 <존 윅>의 속편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콘시어지 카론은 내가 <존 윅>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요제프가 은신한 클럽을 습격했다 부상을 입고 돌아온 존 윅과 카론은
평범한 호텔 투숙객과 컨시어지가 나눌 법한 대화를 나눈다.
그러던 중에 카론은 존 윅의 구멍 뚫리고 피 묻은 셔츠를 가리키며
“세상 누구도 그 셔츠는 구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피와 총알과 고함과 신음이 난무하는 액션영화의 한가운데에서
손님과 종업원이 나누는 다정한 이 대화에서는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애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애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이후 시리즈에서 확인된다.
<존 윅>은 딱 1편만 만들어지고 말았으면 좋았을 영화다.
그런데 세상일이라는 게 어디 그런가?
범죄와 폭력의 세계와는 담을 쌓고 평온하게 살아가고픈 존 윅이
분노에 휩싸여서는 다시 총을 잡게 되는 것처럼,
흥행에 성공했고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가능성이 있는 영화는
속편을 계속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 영화흥행업계의 작동 방식이다.
그 결과, 뒤에 붙는 숫자들이 커질수록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그 영화들에 등장하는 액션은 물론 굉장하다.
액션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갖가지 액션을 최고 수준으로 연출해서 보여준다.
그런데 그 영화들에서는 <존 윅>의 중심부에서 영화를 굳건히 지탱했던
“인간적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존 윅>의 속편들에 “인간적인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 건 아니다.
<존 윅>에는 이후 시리즈에서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을 예언하듯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존 윅을 은밀히 돕던 동료 마커스(윌렘 대포)가 비고(미카엘 니크비스트)에게 목숨을 잃기 전에
비고의 부하들을 공격하는 장면을 보라.
그 장면에서 마커스의 몸놀림은 훈련받은 킬러의 민첩하고 위협적인 몸놀림이 아니라
중년 배우가 액션 연기를 펼치려 안간힘을 쓴다는 게 역력해 보이는 몸놀림이다.
<존 윅>의 속편들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이 장면의 느리고 둔탁한 윌렘 대포의 몸놀림을 자주 보여준다.
어느 장면에서는 상대 배우들이 그가 주먹을 날릴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존 윅>은 속편이 만들어질수록 미미해지는 시리즈의 문을 연 창대한 액션영화다.
<존 윅 4>에서였던가?
존 윅이 파리의 기나긴 계단을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긴 시간 동안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한 건?
그 장면을 보면서 <존 윅> 시리즈가 딱 저런 식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