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 좌(左)와 오른쪽 우(右)
“왼 좌(左)”와 “오른쪽 우(右)”는 왼쪽과 오른쪽을 가리키는 한자다.
어느 쪽이 왼쪽을 가리키는 글자고
어느 쪽이 오른쪽을 가리키는 글자인지 구분하는 데 애를 먹는 어린 나에게
아버지가 가르쳐준 방법이 “공좌구우(工左口右)”로 외우라는,
그러니까 “左”에는 “장인 공(工)”이 들어가고
“右”에는 “입 구(口)”가 들어간다는 식으로 외우라는 거였다.
“左”와 “右”의 자원(字源)에 대한 널리 알려진 설명은
“손(手)”을 가리키는 글자인 “또 우(又)”가 밥을 먹는 곳인 “입(口)”과 합쳐지면 “右”가 되고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오른손잡이 입장에서) 오른손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왼손이 드는 “장비(工)”와 합쳐지면 “左”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왼쪽과 오른쪽을 가리키는 한자를 배우던 시절에
“오른손이라는 명칭은 ‘옳은 손’에서 비롯된 걸까?”라는 의문도 품었었다.
오른손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바른손”이라는 명칭도 많이 쓰이던 시절이었다
(요즘에는 “바른손”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옳은 손,” “바른 손,” 거기에다가 “옳다”는 뜻도 있는 영어 단어 “right”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우리 몸에 달린 오른손과 왼손에도 옳고 그름의 잣대가 적용되는 건가?”하는 의문이 이어졌다.
우리가 서있는 위치를 중심으로 나뉘는 양 갈래 방향에도 정말로 옳고 그른 게 있는 걸까?
그런데 동양문화의 밑바닥에 자리한 관념에서는 “左”와 “右”에 대한 구분이 다른 듯하다.
이 관념에서는 오히려 왼쪽을 오른쪽보다 높이 보는 것 같다.
조선시대에 임금을 보좌하는 최고위급 신하들을 가리키는
“삼정승(三政丞)”이라는 호칭을 들어봤을 것이다.
삼정승은 영의정(領議政)·좌의정(左議政)·우의정(右議政)을 가리키는 호칭인데,
서열을 따지면 영의정이 제일 높고 그다음이 좌의정, 그리고 그다음이 우의정이다.
“左”가 “右”보다 높은 것이다.
조선왕조의 단점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문(文)”을 중시하고 “무(武)”를 하대하는 풍조 때문에 “문약(文弱)하다”는 것인데,
이런 단점을 낳은 시각은 임금과 정사(政事)를 논하는 신하들의 배치에도 반영됐다.
용상에 앉은 임금을 기준으로 볼 때 왼쪽에는 문신(文臣)이,
오른쪽에는 무신(武臣)이 도열해 있는 게 법도였다.
성리학 체제에서 높이 우러러본 문(文)을 왼쪽에 배치한 것에서도
“左”를 “右”보다 중시했던 게 확실하다.
“左”를 “右”보다 중시하는 인식은 음양오행(陰陽五行)에서 비롯된 게 분명하다.
음양오행에서는 “左”를 “양(陽)”으로, “右”를 “음(陰)”으로 본다.
“陽”을 “陰”보다 우선시한 것이 “左”를 “右”보다 우선시하는 것으로 이어진 것이다.
예전에 한의학에 조예가 깊은 분에게서
“음양오행에서 양(陽)으로 보는 남자(男子)의 몸 왼쪽 부분에 큰 문제가 생기고
음(陰)으로 보는 여자(女子)의 몸 오른쪽에 큰 문제가 생기면 심각한 문제로 여겨야 한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左”와 “右”는 “풍수지리(風水地理)”에도 등장한다.
“좌청룡 우백호(左靑龍 右白虎)”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좌청룡 우백호”는 고인(故人)이 평안하게 영면(永眠)을 취하는 곳이어야 할
음택(陰宅)이 자리하기에 좋은 입지에는
왼쪽에 청룡(靑龍)의 기운이, 오른쪽에 백호(白虎)의 기운이 있어야 함을 가리킨다.
여기서 왼쪽은 남쪽을 바라보는 음택 입장에서는 동쪽이고
그래서 용의 색깔이 동東쪽 방향의 기운인 목木의 색깔인 청색靑色이다),
오른쪽은 서쪽이다(그래서 호랑이의 색깔이 서西쪽 방향의 기운인 금金의 색깔인 백색白色이다).
“左”와 “右”에 대한 옛사람들의 인식이 어떠했건,
그 시절에도 오른손잡이가 사회의 대다수였다는 사실은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
바로 “좌우명(座右銘)”이다.
“자신이 앉는 자리(座)의 오른쪽(右)에 삶의 지침으로 삼을만한 좋은 글을
쇠붙이에 새겨 놓고(銘) 생활의 거울로 삼으라”는 권고에서 비롯된 이 단어에 “右”가 들어있는 건
사회의 모든 사람을 오른손잡이로 가정하는 편견이 반영된 것 아닐까?
“左”와 “右”의 왼쪽에 “사람 인(亻)”이 붙으면
“보좌관(補佐官)” 등의 단어에 쓰이는 “도울 좌(佐)”와
“천우신조(天佑神助)” 등의 단어에 쓰이는 “도울 우(佑)”가 된다.
어떤 사람이 우리 옆에 있으면,
그 사람이 있는 위치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우리를 돕는 사람으로 본다는 시각이 이 글자들에는 반영돼 있다.
왼쪽에 있는 사람이 주는 도움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주는 도움에 차이가 있을까?
나아가, 오른손은 항상 옳은 손이고 바른손은 늘 바른 손일까?
21세기인 지금도 사회의 대다수는 오른손잡이이지만,
왼손잡이도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이라는 걸 인식하면서
방향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올바른 지향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