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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들이 일으킨 쿠데타, "성공하면 중2병..."

<인사이드 아웃 2>

by 윤철희

켈시 맨 감독의 <인사이드 아웃 2>는

우리는 우리 머릿속에 존재하는

여러 감정의 조종에 따라 행동하고 살아간다는

전편의 설정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전편에서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로 이사하며 받은 스트레스와

그에 따른 위기를 무사히 넘긴 라일리는

2편에서는 단짝친구들을 사귀고

아이스하키 선수로도 좋은 활약을 펼치는 등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청소년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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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영화가 시작될 때 일일 뿐,

본격적으로 사춘기에 접어든 라일리의 앞에는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대”가 기다리고 있다.

머릿속에 있던 기존의 감정 제어판이

더 복잡한 제어판으로 업그레이드되고

“불안”을 비롯한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하면서

라일리의 인생은 생전 겪어본 적이 없는 과도기에 접어들고,

“기쁨”을 비롯한 기존의 감정들은, 아울러 라일리는

이후 인생의 향방에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큰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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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라일리를 위기로 몰아넣는 주요 원인은

“불안”과 “부럽,” “당황,” “따분” 등

새로 등장한 감정들이 일으킨 “쿠데타” 비슷한 상황이다.

“불안”이 주도하는 이 쿠데타는

“성공하면 중2병, 실패하면...” 으음,

“사춘기 청소년 특유의 ‘이유 없는 반항’” 비슷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후로 영화는

“불안”에게 제어판을 빼앗기고 본부에서 쫓겨난

“기쁨”을 비롯한 1편의 주요 감정들이

라일리가 기존에 지켜오던 올바른 신념을 버리고

그릇된 신념을 받아들여

비뚤어진 자아를 갖지 않게끔 만들려고 벌이는 고군분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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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는 영화가 끝날 무렵이면 이 쿠데타는 진압되리라는 걸,

“기쁨” 일행이 복귀해서는 다시 제어판을 장악하고

라일리는 건전한 신념을 가진

올바른 자아를 갖게 될 거란 걸 잘 알고 있다.

이 영화는 픽사가 만든 영화이고, 픽사는 디즈니의 계열사니까.

설령 디즈니가 아닌 다른 회사에서 만든 영화일지라도

흥행을 노리고 제작한 영화이니만큼

새로 등장한 “불안”에게 조종당하는

“불량소녀 라일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결말로

어린이도 다수 포함됐을 관객을 경악시키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걸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영화의 성패는

“기쁨 일행이 천신만고 끝에 본부로 복귀해 쿠데타를 진압하고

라일리를 위기에 구해내는 과정을

얼마나 재미있고 설득력 있게 그려낼 것인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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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는,

특히 많은 감정이 등장하는 2편은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려 들면 오히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라고,

그냥 스토리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즐기는 편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신념 저장소,” “철통 보안 금고,” “의식의 흐름 강” 등

새로 등장한 설정들은 하나같이 기발하고

심리학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것들이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저 설정이 이 장면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파악하려 들다 보면 영화의 전개에 계속 뒤처져서는

결국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는 몇 번을 보면서

설정 하나하나의 의미를 찬찬히 분석하고 이해해야 하는 작품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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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아웃 2>를 이해하려 애먹는 와중에도

귀에 꽂히는 수준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대사가 있었다.

픽사(Pixar)의 내공은 과연 대단하다고 감탄하게 만든 그 대사는

“불안”에게 제어판 조종간을 빼앗긴 기쁨이

힘없이 내뱉는 다음과 같은 대사다.

“불안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모르겠어.

우리한테는 그럴 능력이 없나 봐.

이게 우리가 성장할 때 일어나는 일인 것 같아.

우리는 기쁨을 덜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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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

미래에 일어날 모든 부정적인 가능성을 일일이 따져보는

“불안”에 밀려난다는 설정에

“나도 이제는 어른이 됐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까마득한 옛날의 시점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내 머릿속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돌아보며,

그때는 반드시 나한테 필요한 것들이라고 느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를 힘들게 만들기만 했던 감정들을 떠올려보게 됐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이런저런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마다

내가 이 결정을 내린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내가 가는 길에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내가 내린 결정이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가능성 때문에 느끼는 초조함과

그런 결과 때문에 내가 받게 될 악영향에 대한 걱정이 빚어낸 두려움 같은 감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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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감정들이

내 머릿속에서 “기쁨”이 기를 펴고 운신할 여지를 조금도 내주지 않으면서

나를 옥좨왔다는 것을 몇 줄 되지 않는 이 대사를 통해 깨달았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내가 불안감에 너무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자꾸만 기울어지는 나 자신을 다잡기 위해,

조금이라도 “기쁨”을 불러내 불안감에 짓눌린 나 자신에게

약간이라도 밝은 빛을 비춰서는

어둠에서 헤어 나올 길을 찾아주기 위해

두고두고 곱씹어볼 대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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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 애니메이션답게

<인사이드 아웃 2>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많은데,

그중에서 제일 좋았던 장면은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나쁜 기억들의 산사태를 일으키는 장면이었다.

알록달록한 기억들이 마구 뒤섞여 굴러 내리는 모습을

속도감 있게 표현해 시각적 쾌감을 안겨주는 이 장면은

CG 애니메이션이기에 구현이 가능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수작업으로 일일이 그림을 그려야 하는 셀 애니메이션에서

갖가지 색깔의 구슬들이 굴러 떨어지는 궤적과 운동감을

또렷하게 그려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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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기억을 강물에 넣으면

한 가닥의 신념이 피어올라 자아의 일부분이 되는 장면도 신선했다.

자신들이 이야기하려는 바를

인상적이고 설득력 있는 비주얼로 제시하는 이런 능력도

픽사를 오늘날 같은 애니메이션 명가로 만든 강점일 것이다.

그렇다고 <인사이드 아웃 2>에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당황”이 숨어있는 “슬픔”을 발견하고서도

“불안” 일행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는 대신

지켜주려고 드는 행동 동기가 무엇인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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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설령 그런 약점들이 있다고 해도,

<인사이드 아웃 2>가

“살면서 불안 대신 더 많은 기쁨을 누려야 한다는 것을,

기쁨이 우리 감정의 주도권을 잡고

다른 여러 감정의 의견을 적절히 반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영화”라는 사실에는 결코 이견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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