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울 신(辛)
이번에 소재로 삼은 글자는
어느덧 한국을 대표하는 라면이 된
라면의 포장지에 큼지막하게 적혀있는 글자다.
이 정도 얘기로도 어떤 글자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맞다, “매울 신(辛)”이다.
(라면을 광고하려는 게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마시라.)
“辛”의 자원(字源, 글자의 구성 원리)을 알게 되면
왜 이 글자가 “맵다”는 뜻을 갖게 됐는지를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辛”은 상형문자다.
“辛”이 모양새를 따온 물체는 “손잡이가 달린 큰 바늘”로,
이 바늘은 입묵(入墨)할 때,
그러니까 사람의 몸에 글자나 그림을 문신으로 새길 때 쓰는 것이다.
조금 섬뜩한 얘기일지 모르겠는데,
사람 몸에 한 땀 한 땀 먹물을 입힐 때
어떤 감각을 느끼게 될지 상상해 보라.
심하게 고통스럽지 않겠나?
“辛”이 가진 여러 뜻 중 하나인
“괴롭다, 고생하다”라는 뜻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온갖 어려운 고비를 겪으며 심한 고생을 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인 “천신만고(千辛萬苦)”와
“몹시 힘들고 고생스럽다”는 뜻을 가진 단어 “간난신고(艱難辛苦)”에
“辛”이 들어간 이유도 바로 그것이고.
음양오행에서는 “木火土金水”의 오행(五行) 각각에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의 다섯 가지 맛을 배정하는데,
오행의 순서와 맛의 순서에서 보듯 매운맛은 금기(金氣)에 해당한다.
“辛”이 10개의 천간(天干) 중 여덟 번째 천간으로,
금기(金氣), 그중에서도 음(陰)의 금기에 해당하는 글자라는 걸 알게 되면
“辛”에 “맵다”는 뜻이 있는 이유가 이해될 것이다.
그런데 현대 과학은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라는 것을,
즉 통증을 느끼는 감각수용체가
자극을 받아서 느끼는 감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초소형 바늘(辛)들이 우리의 혀를 콕콕 찔러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종의 고문인 것이다.
“辛”에 “맵다”는 뜻을 부여한 옛사람들은
이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걸까?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을 펑펑 쏟아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는 음식이 있다.
바로 마라탕이다.
한자로는 “麻辣燙”이라고 쓰는데,
우리나라 한자 발음으로 읽으면 “마랄탕”이다.
여기에 들어있는 “매울 랄(辣)”을 자세히 보라.
글자 왼쪽에 “辛”이 들어 있는 게 보일 것이다.
“맵다”는 뜻을 가진 글자들인 “辛”과 “辣”을 합쳐
“맵다”는 뜻을 대거 증폭시킨 단어가 있다.
바로 “신랄(辛辣)”이다.
글자들의 뜻 그대로 “맛이 아주 쓰고 맵다”는 뜻도 있지만,
이 단어는 “신랄하게 비판하다”는 등의 용례로 많이 쓰이는
“사물의 분석이나 비평 따위가 아주 날카롭고 예리하다”는 뜻으로 더 흔히 쓰인다.
앞에서 “辛”이 “음(陰)의 金氣”라고 말했는데,
“음의 금기”에 속하는 물건에는
양(陽)의 금기에 해당하는 원석(原石)에
인간의 손길을 가해 탄생한 보석이나 칼(刀) 같은 것들이 있다.
이렇게 날카로운 날붙이로도 볼 수 있는 “辛”을
한 글자에 두 개나 써서 “매섭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글자들이 있다.
“분별할 변(辨)”이 그런 글자다.
“분별하다, 구분하다,” “따지다” 등의 뜻을 가진 글자로,
“시험문제가 실력이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능력”을
가리키는 “변별력(辨別力)”과
“변론을 통해 증명한다”는 뜻을 가진 “변증(辨證)” 등의 단어에 쓰인다.
이 글자는 양쪽에 입묵을 하는 데 쓰는 바늘이 두 개 놓여있고
가운데에는 “칼 도(刂)”가 놓여있는, 조금 무시무시한 글자다.
시즈카는 “재판에서 원고와 피고가 서약을 어길 때는
입묵의 형을 받겠다는 서약을 하고 싸우는 것을 말하는 글자”라고 봤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때는 목숨을 걸어야 하고,
그런 작업을 할 때는 칼 같이 냉철하고 날카롭게 해야 한다는 뜻이 담긴 글자인 것이다.
“辛”이 두 개 들어있는 또 다른 글자로는
“말 잘할 변(辯)”이 있다.
“辨”처럼 두 개의 바늘 가운데에 “칼(刀)”이 아니라 “말 언(言)”을 넣으면
“말을 잘하다,” “말다툼하다, 논쟁하다,” “변론하다” 등의 뜻을 가진 글자가 된다.
법정에서 고소인이나 피고인을 대신해 잘잘못을 따지는 직업을 가진 “변호사(辯護士),”
“항변(抗辯)” 등의 단어에 쓰인다.
언젠가 “다행 행(幸)”과 “매울 신(辛)”은
획 하나 차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이 말마따나 “辛”의 윗부분에 “一”을 그으면 “幸”이 된다.
맵고 고되고 고통스러운(辛) 것을 참고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행복(幸)이 올 것이라는 얘기인 것 같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 말을
“辛”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幸”이 될 수 있다는 말로,
힘든 일을 겪을 때도 그 일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다 보면
행복을 찾을 수도 있을 거라는 말로 받아들이고는 한다.
이 글을 읽는 분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저 말이 어려울 때 힘을 주는 유익한 말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