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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와 오컬트의 성공적인 결합

<핸섬가이즈>

by 윤철희

<핸섬가이즈>에 대한 글은

남동협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에게

사과부터 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주인공 캐릭터인 재필과 상구를 맡은

이성민 배우와 이희준 배우를 내세운 포스터만 보고

영화를 오해한 것에 대한 사과,

보는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인상은 결코 아니게 분장한

두 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포스터를 본 순간

“<덤 앤 더머> 같은 영화인가 보다”라고 오해라며

은근히 <핸섬 가이즈>를 낮춰본 것에 대한 사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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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쩍은 인상의 배우들이

멍청하고 유치하며 지저분한 짓들을 연발하면서

사람들을 웃기려고 드는 <덤 앤 더머>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관객이 있으니

그런 영화들이 꾸준히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나?

물론, 나는 적어도 남들 앞에서는 고상한 척

점잔을 빼는 가식적인 사람이라

그런 영화들을 질색하는 편이고,

어쩌다 그런 영화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기라도 하면

해서는 안 될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사람 마냥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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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핸섬가이즈>는 <덤 앤 더머> 유형의 지저분한 영화가 아니다.

피가 좀 많이 튀고 약간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걸 제외하면,

오히려 웬만한 영화보다 더 깔끔한 영화다.

두 주인공의 외모와 행동거지가

그런 영화 계보의 특징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영화는 결코 주인공의 외모나 덜 떨어진 짓거리로

관객을 웃기려 시도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웃음의 출처로 삼는 것은

외모만 보고 주인공을 오해하는

영화 속 대부분의 캐릭터와 우리가 가진 편견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핸섬가이즈>는 굉장히 그럴듯한 전개로 관객을 웃기는

잘 만들어진 코미디영화이자,

영화를 본 관객이 웃고 나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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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에게 사과를 한 나도 억울한 점은 있다.

“잘 생겼다”는 죄 말고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엉뚱한 소동에 휘말린 끝에

인류의 존망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까지 몰린

재필과 상구가 느끼는 억울함에는 못 미치는 정도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의 포스터뿐 아니라

재필과 상구를 처음 관객에게 소개하는 장면부터

그런 영화로 흘러갈 것 같은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데

어찌 그들을 오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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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두 사람을 처음 만난 미나(공승연)와 성빈(장동주) 일행도,

도로에서 수상쩍게 행동하는 두 사람을 검문하는

최 소장(박지환)과 남 순경(이규형)도

나처럼 (그리고 모든 관객처럼) 잠깐 봤을 뿐인 두 사람에게

“수상한 구석이 많은, 어울려서는 안 될 사람들”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두 사람에게 일단 그런 딱지가 붙게 만든 영화는

두 사람이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살려고 매입한

호젓한 곳에 있는 낡은 주택,

음흉한 짓거리를 하려고 별장으로 가던 성빈 일행의 차에 치어 죽는 염소,

성빈의 꿍꿍이를 알게 된 미나가

한밤중에 별장을 떠나 길을 헤매다 재필과 상구를 만나게 되는 횡액(?) 등을

연달아 보여주며 오해가 또 다른 오해를 낳는 식으로 이어지는

살짝 잔인하면서도 코믹한 해프닝을 위한 토대를 탄탄하게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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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 오컬트장르를 결합시켰다는 것이다.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섬뜩한 종교적 요소를 다루는 오컬트장르는

우리 문화에서는 이질적인 장르에 속한다.

그래서 <검은 사제들> 같은 수작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영화에서는 제대로 다루기도 힘들고

성공적으로 다룬 적도 드문 장르다.

<엑소시스트>나 샘 레이미 감독의 <이블 데드> 시리즈 같은

이 장르의 영화들이 우리나라에서

본토에서만큼 큰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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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미국/캐나다 합작영화 <터커 & 데일 Vs 이블>을 리메이크한

<핸섬가이즈>는 원작에 없는 오컬트 설정을 도입해

영화의 매끄러운 전개를 도와주는 효과적인 무기로 영리하게 써먹는다.

성빈이 미나에게 옛날에 이 마을에서 자기의 작은할아버지가 당한 일을

들려주면서 오컬트 요소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 이야기는 여자에게 작업을 걸려고 지어낸 허풍처럼 들렸다.

그러나 영화는 전개되는 동안 오컬트 아이디어를 위한 맥락을

튼튼하게 구축해 나가고,

그래서 성빈 일행이 차례차례 당하는 황당한, 억지스럽게 보이는 사건들에는

그럴듯한 설득력이 부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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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 설정은 재필과 상구가 매입한 집의 스타일과 구조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인 이유도 설명해 준다.

미국영화에 “오두막”으로 나오는 스타일의 서양식 주택은

우리나라에서도 간간이 찾아볼 수 있겠지만,

거실 복판의 바닥에 있는 출입문을 통해 들락거리는 널따란 지하실이 있는 건물은

우리나라에는 정말로 드물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주택이 지어진 연유를 설명하면서

그 주택을 코미디와 오컬트의 소재로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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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밥들을 깔고 그것들을 회수하는 과정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떡밥을 까는 시점과 그걸 회수하는 시점 사이의

시간 간격이 길면 길수록 더욱더 그 영화에 감탄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도 대단히 뛰어나다.

재필과 상구의 이삿짐을 실은 트럭에서 쇠스랑이 떨어지는 시점과

그 쇠스랑의 쓰임새가 확인되는 시점 사이의 시간적 거리는 상당하다.

네일 건을 잡은 미나가 신나게 쏘아댄

못들이 빚어내는 결과가 확인되는 장면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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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핸섬사이즈>에서 좋아하는 장면은

모두들 좋아하는 장면일 것이다.

세상에 공개돼서는 안 되는 정보가 담긴 휴대폰을

무슨 일이 있어도 회수해야 하는 성빈 일행이

재필과 상구의 집을 습격했다가 한 명씩 어이없는 최후를 맞는 장면이다.

각각이 당하는 불행은 클리셰라 할 정도로 기존 영화에 많이 나온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솜씨 좋게 연출한 덕에 연신 키득거리게 된다.

재필과 상구를 체포하려는 최 소장이 거듭해서 변고를 당하고,

남 순경의 다리에 붙은 불을 끄려고

상구가 황급히 생수병을 들고 뛰어나오는 장면도 마음에 든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채플린의 명언이 떠오르는 장면도 있다.

말벌의 습격을 피해 전기톱을 들고 숲으로 뛰어가는 재필과

그런 재필이 자신을 쫓아오는 것이라고 착각해서 도망치는 보라(박정화)를

멀리서 보여주는 정말로 웃긴 장면을 보라.

사정을 알고 보는 사람이 보고 웃는 그 장면을

사정을 모르고 멀리서 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핸섬가이즈>는 오로지 관객을 즐겁게 해 주겠다는 목표에만 전념하는 영화다.

리메이크영화이면서도

원작을 그대로 복제하려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데다

원작에 짓눌리지도 않는 영화다.

원작을 창의적으로 해석하려고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개작하는 데 주력해

결국에는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영화다.

세상에는 이런 영화가 필요하다.

호시탐탐 인류를 지옥으로 데려갈 기회만을 노리는 염소들이

잔뜩 숨어있는 것 같은 세상에는

핸섬가이즈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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