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에는 돼지가 산다?

집 가(家)

by 윤철희

내가 한자를 놓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 계기는 이 글자 때문이었다.

“가족(家族),” “가정(家庭)” 등

듣기만 해도 푸근해지는 단어들에 쓰이는

“집 가(家)”라는 글자에

뜬금없이 “돼지 시(豕)”가 들어있는 연유는 대체 무엇인가?


옥편을 보면,

“家”는 “사방이 지붕으로 덮어씌워져 있는 집”을 가리키는 글자인 “집 면(宀)”
“돼지 시(豕)”가 합쳐진 글자로

본뜻은 “돼지를 기르는 집”이라고 설명돼 있다.

“家”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설명은

“소나 돼지가 귀한 재산이던 고대 중국에서

도둑이 훔쳐가지 못하도록

돼지우리를 반(半) 지하에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이 사는 구조의 집을 지었던 데서 이 글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생활공간 바로 옆에 가축을 기르는 공간을 두는 이런 집 구조는

여러 문화권에 공통적으로 존재했던 것 같다.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 보라.

예수가 태어나던 시절의 이스라엘 주택 구조도

이 글자에서 말한 것처럼

마구간이 거주공간의 한쪽 구석에 있어서

잠잘 곳을 구하던 손님들인 요셉과 마리아가 그곳에 짐을 풀고 예수를 낳았다.


그런데 시라카와 시즈카는 이 주장을 반박한다.

그는 갑골문자가 적힌 금문을 보면

“宀” 아래에 있는 동물은 “돼지”가 아니라

“개(犬)”라고 주장한다.

그 글자가 후대로 전해지는 동안 변형되면서

지금의 형태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家”의 옛 문자가 가리키는 건축물은

하늘이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개”를 제물로 바치고 묻은 자리에 세운 사당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사당”을 가리키던 글자의 뜻이

자연스레 “집”이라는 뜻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家”의 자원(字原)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은 “家”가 가진 여러 뜻에 대한 얘기부터 하겠다.

“家”에는 “전문가,” “어떤 일에 정통한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예술가(藝術家),” “작가(作家),” “음악가(音樂家)”, “화가(畫家)” 등의

단어에 쓰이는 “家”는 다 그런 뜻이다.


옛날에는 같은 스승 밑에서 학문을 닦는 제자들이

그 스승의 집에 모여 함께 가르침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家”에는 “한 집에 모여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학파(學派)”라는 뜻도 있다.

“학문이나 기술, 예술 등의 분야에서

독자적인 경지나 체계를 이룬 상태”라는 뜻의

“일가(一家)를 이루다”는 표현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어느 분야건 제자들의 존경을 받는 스승이 되면

“하나의 학파”를 이루는 거나 마찬가지다.

공자가 대표하는 “유가(儒家),” 노자가 대표하는 “도가(道家),”

한비자가 대표하는 “법가(法家)” 등

“춘추전국 시대의 여러 학파”를 가리키는 “제자백가(諸子百家)”라는 표현도,

“많은 학자 등이 자기의 학설이나 주장을

자유롭게 발표하고 논쟁하고 토론하는 것”을 가리키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는 표현도 다 이 뜻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 “家”의 자원 얘기로 돌아가 보자.

시즈카의 주장대로 “家”가 “사당”을 가리키는 글자가 맞는다고,

“豕”는 “犬”이 변형된 글자라고 치자.

내 짐작에는,

옛날 사람들도 그렇게 바뀐 글자를 한동안은 그렇게 썼을 것도 같다.

그런데 그 시절 사람들에게 글자는

한 자 한 자가 주술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렇게 중요한 글자인데,

더군다나 다른 글자도 아닌 화목한 “가정”과

앞서 언급한 여러 중요한 뜻을 가진 글자인데,

“돼지(豕)”라는 글자가 거기에 박혀 있는 게 뻔히 보이는 데도

그 글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몇 천 년 간 써온 건 무슨 연유에서였을까?

사람이 사는 곳을 돼지가 사는 곳이라고 지칭하는 거나 다름없는 글자인데도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던 걸까?


우리는 흔히들 돼지를 더러운 동물로 생각한다.

그러나 돼지는 넉넉한 공간에 방목해 기르면

생활하는 공간을 청결하게 관리하며 깔끔하게 살아간다고 한다.

돼지는 인간에 의해 좁은 공간에 갇혀 사육될 때에만

어쩔 도리 없이 불결한 모습을 보여줄 따름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家”라는 글자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워낙 많은 생각이 들어서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우리 집에 사는 존재는 무엇일까?

여러분의 집에는 어떤 존재가 살고 있나?

사람인가, 돼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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