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 살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거나, 친구가 되거나,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던 적은 없다. 일부 꼰대 아저씨들을 제외하고는... 사실 꼰대라 불리는 그들에게도 나는 나름 소통이 되는(것 같은) 부하직원의 포지션을 차지하긴 했었던것 같다.
그런데 이 조직에서의 나는 소통(communication)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도대체 나만 못알아 듣는 건가 싶은 미팅과 지시 사항, 내가 이해한것과는 너무나 다르게 진행되는 일들. 특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엮여 있어서 한 가지 이야기를 각자 듣고 싶은 대로 해석하다가 꼬여서 발생하는 대 재앙적인 일들을 비일비재 하게 경험하고 있다. 나는 A를 말하고 있는데, 왜 저들은 B,C,D로 알아듣고 E,F를 답변할까...
분명 이 조직은 전에 있었던 곳 보다는 훨씬 소통을 많이한다. 왜 하는지도 모르는 상명하복식 의사전달 대신, 도대체 이걸 왜 하는지에 대한 '논리'를 만들기 위해 아주 치열하게(?) 무수한 회의들을 한다. 프로젝트 초기는 거의 매일 회의만 하다 끝나는 느낌이다.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의견을 모으는 방식은 배울 점이 많겠다' 라고 생각했엇던 때도 있었다. 분명 그러한 행위 자체는 긍정적인 움직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진행되는 실질적인 과정과 결과를 경험하며 사실 뭐가 맞다고 이야기는 못하겠다.
나는 아는 것이 없다.
사실 뭔가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전 직장에서 근 8년을 일하며 나도 나름 내 분야에서 어느정도 머리가 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내가 거기 말고 다른 곳에서 좀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직을 했다. 이게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진짜 제대로 한 선택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여기서 아는 것이 없고, 경험도 없고, 커뮤니케이션도 잘 이해가 안되서 아주 초심으로 돌아갔다. 적어도 이거 하나는 제대로 얻었다.
매일 나를 의심한다.
이게 과연 맞는 것일까? 분명히 맞다고 생각하고 선택하고 진행하는 것들도 갑자기 A를 B로 이야기 하는 분위기에서는 틀린것이 된다. 그래서 지난 2년간은 '내가 옳다고 생각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에 대한 자기의심의 시간이었다. 내가 무색무취한 사람이었다면 그게 옳은가보다 하고 나의 색깔을 바꿨을 테지만, 나는 내 색깔이 강한 타입의 사람이라 어찌 버티다 보니 결국 내 스타일대로 일하게 됐다. 그러면서 몇 부분에서는 결국 내가 틀리지 않았었다는 소소한 결론도 얻긴 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결국은 잘못 배운 것이었는지, 그저 어딘가에서 고일대로 고인 물이 새 물에 적응하지 못해서 몸부림치는 것인지...
어떤 후배가 말하기를 내가 'A를 말하면 A로 알아듣는 몇 안되는 사람'이라 좋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소통이 어려운 이 조직에서 그래도 나와 말이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A를 말하면 A로 알아듣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 그리고, 능력껏 일하고 일한 만큼 인정받고 싶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더라..
일한 만큼 인정받으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누군가는 내가 너무 일에 많은 의미를 둔다고 했다. 사실 어떤 사람들에게 일은 생활의 모든 것 일수도, 자신을 대변하는 가면일수도, 아니면 그저 돈벌이 수단에 불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어차피 깨어있는 시간 중 반 이상을 일하면서 쓸 것이라면, 적어도 그게 내 인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길 바란다. 적어도 나의 일이,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을 위한, 매달 갚아야 하는 대출을 위한, 그런 부수적인 수단이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늘도 고민한다. 과연 나는 여기서 무엇을 더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결국 연말정산 환급금액에 좌절하며, 월급날과 휴일만 기다리게 되는 나는 별수없는 그냥 대한민국 직장인이다.
인생은 평온한 나날과 그렇지 못한 나날들로 구성된다.
행복한 순간과 불행한 순간은 사실 찰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을 곱씹고 확대해서 기억하는 내 마음가짐이 행복과 불행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 찰나의 행복과 불행은 지나갈 것이니 일희일비에 매몰되지 않겠다.
인생은 방심을 기다리는 회심의 한방 항상 준비되어 있을 때는 오지 않고 한순간 방심한 틈을 타 어퍼컷을 날린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