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휴먼카인드’라고 하는 감추어진 인간의 본성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을 조금씩 읽고 있다. 책의 한 모퉁이에는 사람의 본성은 규칙과 억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현대문명은 자유와 놀이 대신 통제와 감시로 인간을 억압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한편 매일 교실에서 만나고 있는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선생님, 오늘 우리 뭐해요? 오늘 놀면 안되요?”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가장 먼저 하는 말이다. 아이들이 이러는 것이 단순히 교사인 나를 만만하게 보거나 너무 편하게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놀이에 결핍된 아이들의 상황이 불쌍하다고 느끼면서, 오죽하면 이럴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오늘 신나게 놀자고 이야기를 호쾌하게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안타까워지기도 한다.
그러면 학교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놀 수 있을까? 코로나 이전 시대에 중간 놀이시간만 되면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뛰어나가서 공을 차면서 놀거나, 좋아하는 아이돌의 춤을 따라하며 음악을 즐기며, 삼삼오오 모여서 좋아하는 활동을 한다. 그런데 올해는 많은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틱톡을 찍으며 놀이시간을 보낸다. 물론 시끌벅적 소란스러운 것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다만 조금 다른 것은 아이들의 놀이 중심에는 ‘스마트폰’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하는 놀이는 동네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모여 특정한 미션을 수행하거나, 팀 대항 활동을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 만의 규칙과 방식이 존재한다. 때로는 놀이가 변형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요즘 아이들의 놀이 방식이 변한건지, 아니면 내가 꼰대가 되어가는 건지 지나치게 예민한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요즘 아이들의 놀이문화에서 느껴지는 감성은 인간미가 떨어진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결핍된 것 같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학교가 아이들의 놀고 싶은 욕구를 제안하지 않고, 무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놀이터가 될 수는 없을까? 나는 그런 학교를 꿈꾸고 싶었다. 유럽의 쓰레기더미를 활용한 위험한 놀이터까지는 아니어도 학생들이 마음껏 이리저리 망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도 나는 아이들 손에 있는 스마트폰이 불편해서, 교실에서의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