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보는 아주 신중한 시선

'알츠하이머를 이야기하는 영화들'_ <더 파더> <아무르> <슈퍼 노바>

아무르.jpg 영화 '아무르' 스틸 컷
사건을 기록하는 이야기는 역사가 되지만, 사람을 기억하는 이야기는 예술이 된다. 예술 작품 중 영화는 필름을 통해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기억하며 등장인물의 마음과 관객의 마음을 이어준다. 아주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과 닿아있는 만큼, 관객들은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비슷한 일을 겪는 경우가 있다. 특히 그래서 아픈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영화는 조금 더 세밀하고 조심스럽게 그들의 통증을 다뤄야 한다. 여기 신중한 목소리로 통증의 시간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영화가 있다.

알츠하이머를 다룬 영화들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어떻게 펼쳐질지 모를 미래까지 한 번에 잃어버리는 것이다. 기억을 지우는 병,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간 쌓아온 시간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볼 도리가 없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과거와 가족이 누구인지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 앞으로 무엇을 더 잃어버리게 될지 결코 나 자신은 모른다는 것은 두렵고 잔인한 일이다.

기억이 사라지면 어쩌면 나 자신도 함께 휘발되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해리 맥퀸 감독의 ‘슈퍼노바’(Supernova, 2020)는 조발성 치매 판정을 받고 기억을 잃어가는 미래의 나를 버리고, 가장 빛나는 현재의 모습으로 사라지고 싶은 터스커를 통해 존엄한 삶과 그 선택의 가치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플로리앙 젤레르의 희곡 『아버지 Le Père』를 원작으로 한 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더 파더’(The father, 2020)는 기억의 혼란 속에서 자신이 보는 것이, 자신의 기억이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주인공 안소니의 독백과 같은 영화다. 안소니는 얼핏 보면 치매에 걸린 고약한 노인처럼 보이는데, 안소니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와 안소니의 눈으로 보는 것 같은 카메라 워크를 통해 관객들이 치매라는 질병을 단순히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느끼고 체험할 수 있게 만든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Amour, 2012)는 노부부의 일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조르주와 안느는 함께 제자의 콘서트에도 가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등 행복한 노년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불청객처럼 느닷없이 안느에게 반신마비와 치매가 함께 찾아온다. 초반부 콘서트홀을 다녀오는 것 이외에, 모든 장면은 집안에서 벌어진다. 안느가 아픈 이후 조르주는 발이 묶인다. 두 사람의 평온한 삶은 지옥이 되고, 시간은 나누는 것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것이 된다. 더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느끼는 순간, 죽음은 삶보다 훨씬 더 친절한 표정을 보여준다.


마음을 닮은 영화 속 음악

세 영화 모두 음악인이 주인공이거나 주인공이 음악 애호가로 등장하는 만큼 영화 속 음악이 주인공의 섬세하면서도 애처로운 마음과 닮았다. ‘슈퍼노바’는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이지만 주로 클래식 대신 관객들의 귀에 익은 1970년대 팝 음악으로 로드 무비의 정취를 강화한다. 피아니스트 샘 역할의 콜린 퍼스가 아주 오랜 연습을 통해 직접 연주하는데 성공했다는 엘가의 ‘사랑의 인사’는 세상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을 지지해 주며 들려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그래서 총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겹치는 순간, 현이 끊어지는 것 같은 정적과 함께 애잔한 여운을 남긴다.

‘더 파더’ 속 안소니의 거실에는 뚜껑이 열린 피아노가 있다. 영화 속 안소니는 집안에서 계속 오페라 아리아를 듣는다. 평온한 삶 속에서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었음을 보여준다. ‘더 파더’는 안소니의 정서를 관객들이 얼마나 함께 공감하고 소통하는지가 중요한 영화다. 그래서 우리에게 익숙한 오페라 아리아를 통해 안소니의 감각을 관객들이 함께 느끼게 만든다.

비장하면서도 쓸쓸한 영화 속 오페라 아리아는 뒤엉킨 현재와 지워진 과거의 기억, 그 혼돈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다. 딸 앤과 아버지 안소니가 등장하는 첫 장면에는 헨리 퍼셀의 오페라 <킹 아더>의 아리아 ‘너는 무슨 힘으로’가 흘러나오는데, 딸과 아버지의 만남에 묘한 두려움과 긴장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안소니와 앤이 각각 부엌에 있을 때 두 번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벨리니 <노르마>의 ‘정결한 여신’이 흘러나온다. 비제의 <진주조개잡이>의 ‘귀에 들린 그대 음성'은 영화의 테마곡처럼 쓰인다. 안소니가 혼자 헤드폰으로 듣기도 하고, 딸이 초조해하며 요양병원에 전화를 거는 장면에도 사용된다.

더파더1.jpg '더 파더' 스틸 컷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집안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 안느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피아니스트, 딸과 사위의 연주 여행 등으로 짐작해보자면 ‘아무르’ 속 조르주와 안느는 음악인 가족이다. 집안 가득 꽂인 책과 CD, 그리고 품위 있는 노부부의 모습을 통해 이들이 우아한 중산층의 삶을 살아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르’는 의도적으로 극 속에서 음악을 지운다.

아주 잠깐 제자가 찾아왔을 때 12살 때 시켰던 ‘바가텔’을 연주하거나 조르주의 안느가 ‘슈베르트 즉흥곡 3번’을 연주하는 장면 이외에 어떤 배경음악도 사용하지 않는다. 음악인 노부부의 삶 속에서 평생을 함께 한 음악을 지우면서 지금 이들이 처한 현실이 과거와 얼마나 다른,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인지를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처연한 삶 속에서 오직 들리는 것은 조르주와 안느가 살아있기 때문에 만들어 내는 생활 소음뿐이다. 자신의 삶과 함께 세상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존엄함도 지켜야 하는 순간, 비극적 선택은 격렬한 연주가 끝난 후의 침묵처럼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정지시켜 버리는 것 같은 엔딩으로 이어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주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알츠하이머를 다룬 영화라 세 작품 모두 신중하고 사려 깊게 인물을 들여다본다. 사람의 목숨이 존엄함에 앞서도 되는 건지, 가족이라면 당연히 아픈 가족을 끝가지 책임져야 하는 건 아닌지, 같은 차가운 생각과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품어보려 하는데, 영화의 그 마음에 온기가 느껴져 더 아프게 느껴진다.


글·최재훈

영화평론가. 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다. 2019년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2018년 이봄영화제 프로그래머, 제3회 서울무용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객석, 문화플러스 서울 등 각종 매체에 영화와 공연예술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영화에세이집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사라질 기억과 살아질 기억, 그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