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비스' 리뷰
어떤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 마치 진짜 내가 직접 겪은 것처럼 생생한 이미지로 남는다. 또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더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다. 썩 좋아해본 적도 없고, 애써 찾아 들었던 적도 없지만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이름은, 그리고 그의 노래는, 그의 공연 영상과 사진은 늘 공기처럼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들었고, 시대의 아이콘이라 들었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쳤다 들었다. 그래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파편적인 이미지일 뿐 진짜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본 적은 없다. 그래서 엘비스 프레슬리는 사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남자다.
아는 남자, 엘비스
미국 남부 멤피스에서 트럭을 몰며 가수를 꿈꾸는 19살의 무명가수 엘비스(오스틴 버틀러)는 어느 날 지역 라디오의 작은 무대에 설 기회를 얻는다. 그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퍼포먼스로 무대를 압도한다. 자라난 동네에서 보고 들은 흑인음악을 접목시킨 독특한 음악에 골반을 흔드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반짝이는 의상까지, 엘비스는 단숨에 대중들을 사로잡는다. 쇼비지니스 업계에서 일하는 톰 파커(톰 행크스)는 그를 발견하고 그를 스타로 만든다.
영화 엘비스는 1997년 임종을 앞둔 톰 파커 대령의 회고로 시작한다. 그는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온 사람으로 카니발에서 일하다 1955년 지역에서 활동하던 엘비스 프레슬리를 발굴한다. 파커는 TV 출연, 뮤지컬 영화, 라스베가스에서의 공연 등은 물론 광고, 캐릭터 파생 상품 제작 등 오늘 날 케이 팝 아이돌 시스템에서 상상할 법한 모든 것을 접목한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엘비스’가 159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엘비스 프레슬리의 인생’이 아니라 ‘톰 파커와 함께 한 엘비스’를 이야기의 중심에 둔 이유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성공과 불행, 그리고 죽음에 그가 가장 가깝게 닿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빼어난 전략을 가진 매니저였지만, 오직 엘비스를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티스트 엘비스의 자립을 막은 사람이다.
최근 전기 영화가 실존 인물의 한때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바즈 루어만은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전기 영화의 방식으로 엘비스 프레슬리를 이야기한다. ‘엘비스’는 엘비스의 데뷔부터 사망에 이르는 전 생애를 다큐멘터리처럼 화면에 모두 담는다.
바즈 루어만은 뮤지컬 영화의 거장답게 엘비스의 수많은 무대를 완벽히 재현함은 물론, 낡은 필름이 놓쳤던 화려한 광각을 실제 무대를 보는 것처럼 구현해 내면서 21세기의 젊은 관객까지도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빠져들게 만든다. 젊은 시절의 엘비스를 보여줄 때는 빠르고 현란한 편집으로, 그가 죽음을 앞둔 중년의 삶을 그릴 때는 느리고 진중하게 그리면서 엘비스의 삶을 화면 위에 새긴다.
모르는 남자, 엘비스
엘비스 프레슬리를 이야기할 때, 흑인음악, 인종차별, 평등을 위한 사회 운동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영화 속에서는 가스펠을 노래하는 천막 안에서 엘비스가 접신하는 것 같은 장면을 통해,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혼이 흑인음악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의 배경이 된 1950년대~1970년대까지 흑인들은 재즈, 블루스, 리듬 앤 블루스를, 백인들은 컨추리 음악을 양분하고 있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흑인을 무시하고, 흑인 음악을 천시하였다.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는 흑인음악을 대중음악의 중심으로 끌어온 백인 가수이다. 당시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과 골반을 흔드는 퍼포먼스는 파격 그 자체였다. 당연히 인종차별주의자의 공격을 받는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실제로 흑인 뮤지션들 역시 엘비스가 흑인 음악을 훔쳤다고 비난하며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로큰롤 뿐 아니라 미국 음악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블루스의 거장 비비 킹은 다른 흑인 뮤지션과 달랐다. 비비 킹은 평소에도 ‘음악은 전 우주의 소유다. 그것은 흑인이나 백인, 또는 어떤 유색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해 왔기 때문에 선입견 없이 엘비스의 음악을 듣고, 그를 친구로 받아들였다. 바즈 루어만은 영화 속에 비비 킹과 엘비스의 우정을 가감 없이 담았다.
시대를 너무 앞선 예술가를 껄끄러워하는 사회 속에서 엘비스는 갈등을 일으켰다. 골반과 다리를 마구 흔드는 춤과 흑인 음악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엘비스의 음악은 인종 문제로 비화되기까지 한다. 그래서 실제로 가장 활발히 활동해야 하던 시절에 엘비스는 정치적인 맥락 속에서 탄압받았고 얌전한 이미지를 가장해야 했다. ‘엘비스’에서 관객들이 가장 많이 보는 모습은 화려한 가수 엘비스가 아니라, 정체성 앞에서 흔들리고 고민하는 아티스트 엘비스의 갈등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맡은 오스틴 버틀러는 엘비스와 전혀 닮지 않은 얼굴로 관객을 당황하게 하지만 곧 엘비스 프레슬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몸짓과 노래 솜씨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를 완벽하게 재현해 내도록 만든 안무가이자 무브먼트 코치 폴리 베넷이 참여해 엘비스 프레슬리의 걸음걸이부터 사소한 손동작까지 모든 것을 코치했고 다수의 보컬 트레이너에게 코칭을 받은 오스틴 버틀러는 30년 동안 창법이 달라진 엘비스의 목소리를 시대별로 만들어냈다.
영화의 엔딩에서 1977년 엘비스가 사망하기 직전 공연 영상이 오스틴 버틀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로 옮겨가는 순간, 진짜 엘비스 프레슬리의 얼굴 위 뒤로 오스틴 버틀러가 들려준 엘비스의 진짜 이야기들이 겹쳐 보인다. 평생 발이 없어 땅에 착륙하지 못하고 하늘을 날다, 죽기 위해 땅에 내려오는 발 없는 새에 비유한 엘비스의 삶이 참 씁쓸하고 쓸쓸하다.
[영화 사운드트랙 정보]
Elvis/ RCA record
극장 개봉과 같은 날인 2022년 6월 24일 발매하였고, 엘비스 프레슬리가 직접 부른 노래들을 대부분 사용하였다. 영화에서는 오스틴 버틀러가 직접 부른 노래를 들을 수 있으니, 비교해 듣는 재미가 있다.
1. Suspicious Minds (Vocal Intro) (Elvis Presley)
2. Also Sprach Zarathustra/An American Trilogy (Elvis Presley)
3. Vegas (Doja Cat)
4. The King and I (Eminem & CeeLo Green)
5. Tupelo Shuffle (Swae Lee & Diplo)
6. I Got A Feelin' In My Body (Elvis Presley & Stuart Price)
7. Craw-Fever (Elvis Presley)
8. Don't Fly Away (PNAU Remix) (Elvis Presley & PNAU)
9. Can't Help Falling in Love (Kacey Musgraves)
10. Product of the Ghetto (Nardo Wick)
11. If I Can Dream (Måneskin)
12. Cotton Candy Land (Stevie Nicks & Chris Isaak)
13. Baby, Let's Play House (Austin Butler)
14. I'm Coming Home (Film Mix) (Elvis Presley)
15. Hound Dog (Shonka Dukureh)
16. Tutti Frutti (Les Greene)
17. Strange Things Are Happening Every Day (Yola)
18. Hound Dog (Austin Butler)
19. Let It All Hang Out (Denzel Curry)
20. Trouble (Austin Butler)
21. I Got A Feelin' In My Body (Lenesha Randolph)
22. Edge of Reality (Tame Impala Remix) (Elvis Presley & Tame Impala)
23. Summer Kisses/In My Body (Elvis Presley)
24. '68 Comeback Special (Medley) (Elvis Presley)
25.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 (Jazmine Sullivan)
26. If I Can Dream (Stereo Mix) (Elvis Presley)
27. Any Day Now (Elvis Presley)
28. Power of My Love (Elvis Presley & Jack White)
29. Vegas Rehearsal/That's All Right (Austin Butler & Elvis Presley)
30. Suspicious Minds (Elvis Presley)
31. Polk Salad Annie (Film Mix) (Elvis Presley)
32. Burning Love (Film Mix) (Elvis Presley)
33. It's Only Love (Elvis Presley)
34. Suspicious Minds (Paravi)
35. In the Ghetto (World Turns Remix) (Elvis Presley & Nardo Wick)
36. Unchained Melody (Live at Ann Arbor, MI) (Elvis Presley)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영화에세이집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