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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이라는 우주에서 살아남기

<플레이그라운드> 리뷰

bodo_still_01.jpg '플레이그라운드' 스틸 컷

나이가 들수록 미래에 더 가까워질 것 같지만 사실은 과거와 더 친해진다. 마음이 자꾸 쿵, 과거라는 중력에 이끌려 떨어지는데, 그게 구름 속 인듯 제법 폭신폭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을 이야기할 때 발그레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주저 없이 자신의 어린 시절은 꽤 행복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괴괴한 소동의 시간 속, 우리의 어린 시절은 사실 예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았다. 나는 늘 힘들었지만, 어른들은 모두 겪는 일이라며 별 일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학교는 생존의 공간이었다. 친구는 우주였고, 그 친구를 지키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내게 등을 돌린 친구의 뒤통수는 칼날처럼 차갑고 아파 끝내 흉터가 되고 만다. 우리는 그 시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저 과거라는 구름 속에 가려져 그 통증을 잊고 있을 뿐이다.

로라 완델 감독의 <플레이그라운드>의 주인공 노라(마야 반데베크>는 오빠 아벨(군터 뒤레)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신입생이다. 노라는 낯선 학교가 무섭다. 그러다 우연히 오빠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걸 목격한다. 노라는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어른들은 도움을 주지 않고 아벨을 향한 친구들의 폭력의 강도는 점점 더 강해진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학교’라는 사회 속에서, 처음 겪는 친구라는 타인들과의 관계를 차갑고 냉정하게, 그리고 끝까지 눈 돌리지 않고 바라보는 영화다. 동시에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그저 이제 너무 많이 자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잔인한 폭력을 묵과하는 어른들의 시선을 좀 더 땅에 가깝게 낮춰야 한다고 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세상을 직접 겪어보라고 촬영감독 프레데릭 누아르옴므는 주인공 노라의 키높이 맞춰 카메라를 몸에 촬영하고 낮은 시점의 촬영을 진행했다. 그래서 관객들은 줄곧 노라가 바라보는 세상의 높이에서 학교에서 겪는 폭력을 경험한다. 노라의 눈높이에서 보면 나지막한 평균대조차도 너무 높고 무섭다. 어른들의 시선은 너무 아득해 한참을 올려다봐야 한다.

친구는 나의 첫 번째 타인이고, 아이들이 겪는 첫 번째 세상이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삶의 원칙들을 익힌다. 그리고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자신들의 삶에 어른들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노라는 믿었던 선생님도 아빠도 오빠를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친 후 입을 닫는다.

아이들의 세상에서 폭력의 원칙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단순하다. 맞서 이기지 못하면 참아야 더 큰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달아날 수 있는 방법은 나보다 더 약한 놈을 찾는 것이다. 학교폭력이라는 지독한 현실을 과장되지 않게 보여주는 <플레이그라운드>는 당연히 우리가 바라는 손쉽고 희망적인 결론에 가닿지 않는다.

어떠한 달짝지근한 대안도 없이 아이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세상을 보여주면서 어른들이 방치하는 아이들의 세상 속, 폭력의 전이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아이들에게 운동장은 놀이의 장소가 아니라 생존의 공간이다. 로라 완델 감독은 학교라는 집단, 어른들의 세상을 그대로 따른 작은 우주 속, 집단의 폭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너를 괴롭혀서라도 내가 살아야겠다는 아이들의 피비린내 나는 마음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노라가 멘 큰 가방에는 우주가 그려져 있다. 노라에게 학교는 우주처럼 넓고 어두운 미지의 세상이다. 그리고 여전히 어른들의 눈높이에서 벗어난 허리 아래의 세상은 정복할 수도 없고 달아날 수도 없는 우주의 넓이와 깊이로 아이들을 집어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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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그라운드>(2021)

감독 : 로라 완델

출연 : 마야 반데베크, 군터 뒤레, 카림 레클루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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