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딛고 사는 예술가의 신성한 삶

말릭 벤젤룰의 '서칭 포 슈가맨' 리뷰

by 영화평론가 최재훈
20231030_165947.png '서칭 포 슈가맨' 오리지널 포스터

어떤 삶은 각인처럼 또렷하게 흔적을 남기지만, 또 어떤 삶은 마른 모래처럼 흩어져 지나온 시간의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평범한 삶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실패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공의 반대말이 실패인 것은 아니고, 또 어떤 삶을 성공적인 삶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지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노동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는 사람도 있고, 비록 가진 건 많이 없지만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을 나누며 더 넓은 세상과 손잡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고 보면 성공한 삶이란 자기 삶과 시간의 진짜 주인이 되었는지 아닌지로 구분해야 하는 것도 같다.


진짜 시간의 주인

1970년대 가수인 로드리게즈는 디트로이트 뒷골목에서 노래하다가 프로듀서에게 발탁되어 앨범을 냈지만,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하고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첫 번째 앨범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건너가면서 엄청난 인기를 끈다. 사회문제를 담은 노래 가사 덕분에 남아공에서 그의 노래는 마치 저항운동의 상징이 되었고, 로드리게즈는 영웅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정작 그에 대한 정보는 아무 곳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자살을 했다거나,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는 무성한 소문만 가득했다.

스팅, 엘튼 존, 마돈나 등 유명 아티스트에 관한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말릭 벤젤룰 감독은 로드리게즈의 기묘하면서 매혹적인 이야기를 접하고 영화화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의 앨범 ‘콜드 팩트’에 실려 있는 노래의 제목을 따서 지은 ‘슈가맨’이라는 애칭의 가수 로드리게즈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5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2012년 선댄스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그간 숨겨져 있던 로드리게즈의 이야기가 세상에 드러났다. ‘서칭 포 슈가맨’은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온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았다 생각했던 한 예술가의 음악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먼 이국땅에서 히트를 치며 영웅에 가까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어긋난 삶의 시간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진짜 시간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함께 보여준다.

어떤 가수의 삶에 관한 다큐멘터리에 그칠 수도 있었던 이 작품을 모두가 사랑하는 한편의 음악영화로 만든 것은 로드리게즈의 빛나는 음악 덕분이다. 로드리게즈의 음악은 이 다큐멘터리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말을 하듯 잔잔하게 귀에 박히는 그의 노래와 시에 가까운 그의 가사를 듣고 있으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그의 음악을 처음 듣는 순간 매혹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말릭 벤젤룰 감독은 그의 음악이 나오는 모든 장면을 뮤직 비디오처럼 만들어 그의 음악을 빛나게 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화면 연출로 그의 음악이 우리의 삶과 생활 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처럼 만든다.


어느 예술가의 신성한 삶

로드리게즈는 남아공에서의 명성과 상관없이 미국의 한 시골 마을에서 너무나 평범한 노동자로 평생을 살아왔다. 진짜 평범한 지금의 내 삶과 달리, 다른 하늘 아래의 나는 추앙받는 예술가라는 아이러니.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찾아온 행운이 아니라, 그저 다른 시간이 만들어낸 완전히 새로운 인생처럼 보인다. 소멸하지 않고 살아있어 누릴 수 있는 행운과 같은 새로운 삶은 로드리게즈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지나온 삶에 대한 위안일까? 생각해 보면 그저 헛헛하고 쓸쓸한 마음이 드는 일일까?

평범한 삶을 살던 로드리게즈와 그의 가족들은 남아공에서 전설적인 콘서트와 국민 영웅 같은 대접을 받으면서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십 수 년간 저항의 상징으로 그들의 영웅이었던 로드리게즈를 직접 만난 관객들은 모두 꿈을 꾸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관객들은 로드리게즈의 다음 삶을 상상한다. 그동안 벌지 못했던 돈을 잔뜩 벌고, 세계적인 추앙을 받으며 슈퍼스타로서의 삶을 누릴 거라 생각한다. 그것이 오랜 시간 무명 예술가로 살아온 그에게 인생이 주는 선물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서칭 포 슈가맨’은 로드리게즈가 만나는 새로운 삶의 순간에서 멈추지 않는다. 영화에서 가장 신성한 순간은 예술가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예술적인 삶을 살아가는 로드리게즈의 삶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그는 어린 딸들에게 예술을 경험하게 하고, 노동자로 일하지만 여전히 노동의 가치와 공정을 이야기하던 그의 노래처럼 노동의 신성함과 평등을 직접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판타지 같은 남아공에서의 공연을 끝나고 돌아온 후에도 그는 노동자로서의 삶을 멈추지 않았고, 잠깐의 헛바람에 부풀어 스스로를 망치지 않는다. 그는 건설 노동자로 일하면서 콘서트를 하면서 번 돈으로 가족들과 여행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삶에 만족했다. 부자는 아니지만 딸들이 기억하는 아빠 로드리게즈, 이웃들이 기억하는 로드리게즈는 무척 좋은 사람이다. 그 마음은 단단하고 굳건하게 땅에 발을 딛고 있는 것 같아 예술가가 아닌 그저 사람으로도 무척 신성해 보인다.


식스토 로드리게즈 (1942.07.10. ~ 2023.08.08.)

다큐멘터리 덕분에 세상에 알려진 그는 2013년 영국의 세계적인 뮤직 페스티벌인 글라스톤베리까지 진출하는 등 활동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그가 남아공에서만 인기를 얻은 것으로 그려졌지만 실제로 그의 노래는 호주에서 큰 인기를 얻어 1만 5천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공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에 이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2018년 공연을 마지막으로 건강상의 이유로 활동을 하지 않다가 그는 올해 뇌졸중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팬들이 그렇게 바라던 신곡 앨범은 끝내 나오지 않았지만 다큐멘터리에는 발매되지 않은 3집 앨범 수록곡이 담겨 있다.


[OST 정보]

‘Searching for sugar man OST 정보 / Rodriguez, Sony Music

다큐멘터리에 사용된 음악은 로드리게즈의 1집 ‘Cold Fact’와 2집 ‘Coming From Reality’에서 발췌한 곡이다.

1. Sugar Man

2. Crucify Your Mind

3. Cause

4. I Wonder

5. Like Janis

6. This In Not A Song, It's An Outburst : Or, The Establishment Blues

7. Can't Get Away

8. I Think Of You

9. Inner City Blues

10. Sandrevan Lullaby - Lifestyles

11. Street Boy

12. A Most Disgusting Song

13. I'll Slip Away

14. Jane S. Piddy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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