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이라는 미련한 마음을 들키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리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 컷

아무리 애를 써도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짧을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면 삶을 관조할 수 있을 거라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여전히 이루지 못한 많은 일들과 미련이 남은 시간들 때문에 계속해서 미련을 부리게 된다.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많이 남았다 싶은데 맘대로 되지 않는다. 들어줄 사람이 없는데 못 다한 말이 그득하게 쌓였다. 주름진 얼굴과 달리 마음에는 주름이 지지 않았다. 속절없이 하얗게 변해 가는 것도 모르고 여전히 계속 나는 푸르다고 믿는다. 좀 애틋하고 슬프지만 그런 것이 또 흔하고 평범한 인간의 삶의 모습인 것도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생

화재로 엄마를 잃은 11살 소년 마히토는 아버지와 함께 엄마의 고향으로 간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낯선 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어하는 마히토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왜가리 한 마리가 나타난다. 마히토는 저택에서 일하는 일곱 할멈으로부터 왜가리가 살고 있는 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저택과 왜가리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모이자 새엄마인 나츠코가 실종되고, 마히토는 그녀를 찾기 위해 탑으로 들어간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바람이 분다’ 이후 10년 만에 찾아온 그의 장편 애니메이션이자 은퇴 번복작품이다. 사전 홍보 없는 개봉, 작화 프레임 수가 하야오 감독 작품 중 최다라는 기록, 여전히 수작업으로 그린 바탕 그림 등, 하야오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인 만큼 섬세한 수공 애니메이션만이 줄 수 있는 울렁거리는 마음의 감동은 여전한 작품이다.

요시부 겐자부로의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모티브와 제목을 따왔다고 하지만 소설의 내용은 거의 담겨있지 않고 하야오가 원작자로 표기된 그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알려졌다. 실제로 요시부 겐자부로의 책은 하야오의 어머니가 그에게 선물했던 책이라고 하니 그에겐 책 자체가 인생의 큰 추억인 셈이다. 하야오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가 중심에 있기 때문에 그의 오랜 팬들은 그의 사적인 정보와 그가 이제까지 보여준 작품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환기하게 되는데, 실제로 이미지와 캐릭터가 그의 이전 작품들과 겹친다.

고용인 할머니의 모습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온 종업원과 닮았다. 저택의 숨겨진 탑의 모습은 ‘추억의 마니’ 속 한 장면을 닮았다. 이외에도 바다의 폭풍 장면은 어쩔 수 없이 ‘벼랑 위의 포뇨’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불쑥 불쑥 나타나는 이전 작품의 이미지가 작품을 보는 재미를 더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을 많이 접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작품이 난해하고 정돈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는 마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일종의 회고담이라 불균질한 이야기가 불쑥 불쑥 과거와 현재의 상관관계 없이 뒤얽혀있다. 어떤 지점에 이르면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도 특정 장면을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닌가 싶은 장면도 눈에 띈다. 외부 자본을 유치했던 이전 제작 방식과 달리 하야오를 집대성하는 작품인 만큼 제작비 전액을 스튜디오 지브리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고 한다. 이것이 상업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맘대로 하고 싶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근간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군국주의 시대에 군수 사업을 운영한다는 설정인데, 실제로 하야오는 군수 물품 공장장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사실 전쟁을 통해 풍요로운 시절을 보냈지만 하야오는 지속적으로 전쟁과 군국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군국주의 시절을 추억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 그 시절에 대해 낭만적인 정서에 빠지는 경우에는 다소 불편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가장 우려했던 것은 어쩐지 가르칠 준비가 된 것 같은 교조적 제목이었는데, 다행히 하야오는 작품을 통해 젊은 세대를 훈계하거나 가르치려들지는 않는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이인칭 질문과 달리 영화는 줄곧 하야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이야기하는 일인칭 회고담이다. 그러니 미야자키 하야오의 성장 과정과 그 성장 과정에서 만들어진 상상력과 이야기의 뿌리가 이리저리 뒤섞여 있다.

하지만 하야오의 개인사와 영화가 만들어내는 판타지가 유기적으로 얽혀서 상호작용을 하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의 본인과 만나는 이야기의 뼈대 위로 미래의 아이들에게 이제는 어른들이 자리를 내어놓아야 한다는 양보의 마음을 보여주는데 그 이질적인 감각은 계속해서 충돌하고 이야기를 삐걱거리게 한다. 한마디로 놓아버리기엔 아직 너무 많은 미련이 하야오의 마음에 남아있는 것 같다.

작품이 보여주는 소년 하야오의 모습과 노인이 된 하야오가 들려주는 이야기 사이의 괴리가 꽤 크다. 어쩐 일인지 아이들의 미래를 긍정하는 이야기가 이전 작품처럼 희망적이지 않다. 작품 속에서 이야기하는 마히토의 미래가 하야오의 현재이기 때문인 걸까? 갑자기 뚝 끊긴 엔딩처럼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며 기대를 갖게 하는 이야기의 여운이 남지 않는다. 그래서 오랜 팬의 입장으로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일지도 모를 이 작품이 너무 개인사에 방점이 찍힌 회고담에 그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쉽고 빠르고 자극적인 숏폼의 시대에 7년이라는 제작기간을 거쳐, 사람의 아주 세밀한 수공 작업이 필요한, 아주 공을 들인 긴 호흡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한 사람이 가진 역사적이고 예술적인 업적 덕분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 시간의 일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상상력과 만나 반짝 반짝거렸다. 그러니 오랫동안 존경하던 어르신이 들려주는 조금 지루한 회고담 한 번 정도는 참을 만하다 싶다. 그의 다음 이야기는 그렇게 뚝 끊겨진 다리 건너에 남겨진 이야기는 아닐 거라 믿는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의 다음 이야기를 한 번 더 듣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OST 정보]

히사이시 조 / 토쿠가 레코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벼랑 위의 포뇨’ 등 미야자키 하야오와 수십 년간 함께 작업한 일본 뉴에이지의 거장 히사이시 조는 선율이 화려했던 지난 영화의 음악과 달리 악기를 최소화한 정갈한 음악을 선보이는데, 마음의 소동을 보여주는 영화의 정서와 잘 맞아떨어진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오네즈 켄시가 엔딩곡을 직접 불렀다.


01. Ask me why (소개)

02. 흰 벽

03. 왜가리

04. 추억

05. 왜가리Ⅱ

06. 황혼의 날개

07. 사춘기

08. 왜가리Ⅲ

09. 정적

10. 왜가리의 저주

11. 화살깃

12. Ask me why (어머니의 생각)

13. 올가미

14. 성역

15. 무덤의 주인

16. 방주

17. 와라와라

18. 환생

19. 불똥

20. 저주받은 바다

21. 이별

22. 회고

23. 급접근

24. 양동

25. 불꽃 소녀

26. 마히토와 히미

27. 회랑의 문

28. 소굴

29. 기도의 노래 (산야)

30. 큰아버지

31. 은밀

32. 대왕의 행진

33. 큰아버지의 생각

34. Ask me why (마히토의 결의)

35. 대붕괴

36. 최후의 미소

37. 지구본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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