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31일, 나는 점심 식사 후에 학교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을 알리는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곧 수시 원서를 작성할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이번 3학년도 지나가려나?’라는 생각을 하며 학교 후문에 다 달았을 무렵, 담배를 피우던 덩치 큰 청년이 나를 향해 몸을 돌려 인사를 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갑작스러운 인사에 가볍게 고개를 숙이긴 했지만,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이 친구가 궁금했다. ‘교복도 입지 않고, 학교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장한 체구의 이 청년은 누굴까?’ 고개를 들면서 살펴보니, 다름 아닌 졸업생, 손성훈이었다.
“너, 성훈이 아니니?”
“네, 선생님”
“아니, 애가 담배를 다 피우고…”라는 말을 하는 동시에 성훈이가 이미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아! 담배를 피워도 될 나이구나.”
“학교는 웬일이니?”
“9월 평가원 모의고사 치러 왔습니다”
“그렇구나! 그래, 잘 지내니?”
“아니요. 선생님, 저 힘들어요.”
가볍게 물어본 질문에 성훈이가 힘들다고 했다. 인사치레로 물어본 ‘잘 지내니?’라는 질문에 ‘힘들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이렇게 가벼운 질문에 이토록 진지하게 대답하다니. 도대체 성훈이는 얼마나 힘든 걸까?
“성훈아, 무슨 일 있니?”
“그냥요. 이것저것 다 힘드네요.”
“가만 보자. 네가 졸업한 지 2년이 지났으니 지금 삼수를 하는구나. 아무래도 진로 문제로 힘든가 보구나”
“네, 선생님”
“그러니까 그때, 선생님이 동아대에 진학하라고 했잖아.”
안타까운 마음에 위로는 해주지 못할망정 나도 모르게 과거를 들먹이며 성훈이를 타박하고 있었다.
“그러게요. 선생님 말씀을 들을 걸 그랬어요.”
“지금에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니? 그때는 재수하면 네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줄 알았겠지.”
“맞아요. 선생님! 저는 재수하면 부산대는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재수를 막상 해 보니까 생각보다 공부가 안되고, 또 성적도 오르지 않더라고요. 성적이 안 오르니 공부도 하기 싫어지고, 그러다가 재수가 삼수가 되고…”
“애들이 재수하면 막연히 성적이 오른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것 같더라. 큰 꿈을 안고 재수를 하지만, 대게는 재학생 때와 점수 차이가 크게 나지 않더라고.”
“저도 그렇더라고요. 사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기에 수능점수가 잘 나오지 않은 것은 당연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는 저에게 화가 나서 견디기가 힘듭니다.”
“어쨌든 지금은 또 시험을 쳐야 하니까 교실에 들어가고, 모의고사 끝난 후에 교무실에 한 번 들러라. 선생님하고 얘기 좀 하자.”
“네”
나는 성훈이를 2018년 3월, 담임과 제자로 만났다. 성훈이는 외향적인 데다가 성격이 좋아 친구가 많았다. 가끔 욱하는 게 있고, 공부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흠잡을 데가 없는 아이다.
성훈이의 아버지는 성훈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에 성훈이 어머니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어머니는 직장에 출근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기에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으로 인해 받은 충격은 성훈이가 훨씬 더 컸을 것이다. 한참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섬세한 돌봄도 받지 못했기에, 성훈이는 부모님에게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결핍이 있을 것이다.
성훈이는 점점 더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고 허기진 마음을 채우지 못한 채 방황했다. 공부보다는 게임에, 학습보다는 놀이에 관심을 가지며 중요한 시기를 흘려보냈다. 심리적인 안정감을 충족시킬 수가 없었으니 어쩌면 성훈이의 방황은 예고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2020년, 성훈이가 3학년이 되었을 때, 성훈이는 또다시 우리 반에 편성되었다. 3학년 초에 성훈이는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다고는 했지만, 부족한 기초 탓인지, 그리고 지속적이지 못한 노력 탓인지 성적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내신성적이 좋지 않았기에 수시전형에서 만족할 만한 대학에 원서를 쓰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성훈이는 수시전형부터 한사코 본인이 원하는 부산대학에 원서를 쓰겠다고 고집했다. 성적은 부족한데 끝까지 부산대학을 고집하는 바람에 합격권에 있는 대학에 원서를 쓰지 못했다. 결국 수시전형 6개 모두 탈락했다. 수능에서 대박을 노려봤지만, 결과적으로 참담한 실패를 경험했다.
정시 진학 상담을 하면서 인근의 국립대학교인 창원대학이나 부산에 있는 전통의 명문 대학인 동아대학에 진학할 것을 권했지만, 성훈이 생각은 달랐다. 성훈이는 이번에도 부산대학을 고집했다. 사실 창원대나 동아대에 원서를 넣더라도 합격을 장담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부산대학에 진학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니 나로서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성훈이는 대학 입학에 실패했고, 재수를 걸쳐 벌써 삼수를 하고 있다.
우연히 만난 성훈이는 힘들어 보였다. 삼수하면서 성적이라도 올랐다면, 부푼 꿈을 안고 열심히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을 텐데, 성적에는 자석이라도 붙었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학업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엄마와의 관계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직장에 출근하면, 성훈이는 컴퓨터 게임을 했다. 퇴근 후에 집에 돌아오면, 게임을 하는 성훈이가 못마땅한지 어머니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일상이 되어 버렸고 그렇게 성훈이는 어머니와 벽이 생겼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반항심 때문인지 성훈이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만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걸핏하면 말다툼을 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지금은 성훈이가 재수도 아니고 삼수까지 하고 있으니 두 사람의 관계는 얼마나 힘들까. 어머니는 아들과의 대화 대신 잔소리를, 성훈이는 또 성훈이 대로 사랑받지 못해 엄마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어쨌든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던 성훈이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아마 수능에서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은 데에다, 또 희망하는 대학 진학에 실패하며 겪은 어려움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약해진 성훈이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누군가의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할 때인지 모른다. 성훈이의 “선생님, 저 힘들어요”라는 말이 나에게는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라는 말로 들렸다. 졸업한 지 2년 만에 만나는 선생님께 도와 달라고 말하는 성훈이는 과연 어떤 심정일까?
어쩌면 성훈이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몰렸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