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고사가 끝나고 성훈이를 만났다. 성훈이는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재수를 할 때는 공부하기가 싫어서 1년을 맹탕 놀았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생각대로 잘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 움직인 지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성훈이는 삼수생이 된 후에는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백수이기에 돈도 없는 데에다, 엄마한테 돈을 달라는 말을 할 형편이 못 되어서 친구를 만날 수도, 어디를 다닐 수도 없다고 했다. 삼수를 하고는 있지만, 뾰족한 수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시험에서도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이 생활이 자신을 갉아먹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게다가 부산대학은 자신의 위치에서 도달하기에는 점수대가 너무 높은 대학이라는 것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참으로 딱했다. 하지만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냥 성훈이의 하소연을 들어줄 수밖에…
그러다가 궁금한 게 생겼다. ‘왜 꼭 부산대학엘 가야 하는지, 부산대학이 성훈이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가 알고 싶어 졌다.’
“성훈아! 왜 꼭 부산대학이어야 하는데? 그냥 인근의 국립대학교인 창원대학교에 진학한 후에 대학원을 부산대로 가면 되잖아?”
“창원대학을 목표로 했다면 어떻게든 들어갈 수 있었을 겁니다. 제가 부산대학에 가고 싶은 이유는 부산대가 엄마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학이라서 그렇습니다. 선생님도 저희 엄마 성격 잘 아시잖아요? 집안 형편이 좋지 않기에 반드시 국립대학엘 가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엄마로부터 독립할 수 있고, 제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국립대학은 부산대학밖에는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믿기 힘드실 수도 있지만, 제가 3학년에 재학 중일 때, 다짐을 한 게 있습니다. 꼭 부산대학에 합격할 것이라고. 부산대학교에서 입학해서 저의 미래를 펼쳐 보이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렇게 다짐했던 스스로와의 약속 또한 반드시 지키고 싶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해 보니 성훈이의 꿈을 반대하고 싶지 않았다.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어머니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생각은 지극히 건전한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를 실천하려면 목표를 향해서 꾸준히 나아가야 하는데, 내가 아는 성훈이에게는 그런 점이 부족하다. 오랫동안 성훈이를 지켜보면서 성훈이의 공부 스타일을 잘 알고 있기에, 이 목표는 성훈이에게 절대로 쉬운 목표가 아닐 것이다.
나는 다시 성훈이에게 물었다.
“올해도 수능 준비는 제대로 안 했다고 했는데, 만약 부산대에 또 떨어지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건데?”
“그래서 저도 생각해 봤는데요. 일단 수능점수가 그럭저럭 나오면 창원대에 입학하려고요. 4수를 하겠다고 엄마한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요.”
“창원대에 입학한 다음에는?”
“그다음엔 공군에 입대하려고 합니다. 공군은 타 부대에 비해 약간의 시간적인 여유가 주어진다고 하더라고요. 틈틈이 수능 준비를 해 보려고 합니다.”
“와, 너도 대단하다.”
“저희 엄마도 제 고집은 못 꺾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성훈아, 가끔 학생들이 군에서 수능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있더라. 재작년에도 명지대를 다니던 우리 학교 출신 학생이 공군에서 수능을 준비한 다음에 정시로 연세대에 입학한 학생이 있었어.”
“그래요?”
“그래. 그런데 공부를 하는 게 너도 알다시피 쉬운 일이 아니잖아. 군에서 훈련받고 공부하고, 제대하고 나면 나이가 20대 중반이 넘어가는데 공부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니?”
“저도 그게 좀 걸리긴 해요.”
성훈이가 고개를 숙였다. 성훈이 눈에 눈물이 맺혔다.
“성훈아, 선생님이 해 줄 얘기가 있어.”
“예”
“너는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이 보기에 '넌 참 멋진 아이야'”
“아니에요”
“정말이야, 솔직하게 말해보자. 넌 아버지도 안 계시고, 엄마에게 지지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랐잖아. 공부할 여건도, 지지해 주는 사람도 없는데, 너 혼자만의 힘으로 지금까지 노력해 왔어. 공부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와도 그것을 통제하면서 끝까지 도전하고 있잖아. 엄마하고의 갈등 상황에서도, 사고 한 번 안 치고, 가출 한 번 안 하고 이렇게 잘 자랐잖니? 이만하면 잘 큰 거지. 안 그렇니? 성훈아?"
성훈이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넌, 참 잘 살았어. 성훈아! 넌 참 멋진 아이야. 이렇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네가 살면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겠니? 어쩌면 네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 줄 모르겠다.”
성훈이가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니?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인데도 너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공감해 주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으니”
성훈이가 어깨를 들썩거렸다.
“선생님이 보기에는 네가 공부를 잘하고 싶어도 잘할 수가 없었던 환경이었던 것 같아.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지금도 공부에 진심이잖아.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잖아. 그것 하나만으로도 넌 대단한 거야. 선생님은 네 꿈을 응원한다.”
성훈이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선생님도 서른이 넘어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기에 너의 어려움을 잘 안다. 친구를 만나려고 해도 돈이 없어서 못 만나겠더라. 공짜 술도 한두 번이지,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매번 얻어먹을 수는 없지 않니. 친구들은 회사 이야기하고 여자 친구 이야기하는데, 나는 할 말이 없어서 끼어들 수도 없더라. 선생님이 너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한다.”
성훈이를 만난 시기가 때마침, 나의 첫 번째 책이 나오기 바로 직전이었다. 표지 작업이 끝났다며 며칠 전에 편집자님께서 메일을 보내오셨다. 나는 지금까지 내 책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이 없었다. 출판되더라도 자랑삼아 떠들고 다닐 생각도 없었다. 시중에 유통되면 친한 지인들 몇 명과 출간의 기쁨을 함께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성훈이에게는 내 책에 대해서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성훈아! 선생님이 책을 냈어.”
“예? 책을 내셨다고요? 우와! 대단하십니다.”
“대단한 정도는 아니고.”
성훈이에게 책 표지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가족들을 제외하고 아직은 아무도 몰라.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거든. 너한테 이렇게 보여주는 이유는 네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싶어서 그래”
성훈이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이라고 해서 어디 책을 써 봤겠니? 유튜브나 네이버 블로그에서 책 쓰는 법을 검색해보기는 했지만, 책 쓰는 과정이 쉽지 않더라고. 머릿속에는 쓸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글로써 표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더라. 남들은 쉽게 쓰는 것 같은데, 나는 글 쓰는 작업이 너무 어렵더라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글을 조금씩 써나갔어. ‘글을 쓰면서도 이게 책이 될까?’, ‘과연 내가 책을 끝마칠 수 있을까?’, ‘쓴다고 출판이 될까?’라는 생각이 수시로 떠오르더라.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가득하더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책은 쓸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성훈아! 너도 한 번 생각해 봐. 출판이 되고 안 되고는 글 쓰는 작업을 끝마쳐야 가능한 거잖아. 아직 오지도 않은 결과를 미리 고민할 필요는 없더라고. 다만 내가 해야 할 일은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무엇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더라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글을 썼어. 그것도 무려 6년 동안이나.
A4로 300쪽 정도의 분량을 썼는데, 이것저것 막 쓰다 보니까 주제하고 안 맞는 부분도 많고, 책에 정도의 원고가 아닌 것도 많아서 버리기도 많이 했어. 나중에 편집하다 보니, 책에 실린 내용보다는 버린 내용이 더 많더라. 훨씬 더.
책을 쓴 이후에도 출판 과정이 만만치 않더라. 출판사를 찾아야 하는데, 첫 작품에 인지도도 없는 작가의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사가 없더라고. 매일같이 출판사를 찾아서 투고를 했어. 출판사마다 투고 양식이 조금씩 다른데, 양식을 작성하는 것도 쉽지 않더라. 마치 대학교 입학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듯이 책 내용, 기획 의도, 타깃 독자, 다른 책과의 차별점, 독자들이 책을 사야 하는 이유, 홍보에 적합한 아이디어, 심지어 판매계획까지 작성해야 하더라고. 투고할 때마다 1~2시간은 족히 걸리더라고. 그렇게 투고하고 거절당하고, 투고하고 거절당하고 계속 그랬어. 몇십 번을 반복한 끝에 출판사에서 OK 사인이 떨어졌어.”
“와!”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너만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야. 실패는 성훈이, 네가 그만둘 때, 바로 그때가 실패인 거야. 너는 실패자가 아니야. 너는 지금 도전하고 있는 거야. 도전자는 씩씩하고 저돌적으로 나가는 거야. 그러니 힘을 내. 용기를 내라고!"
"선생님..."
"불안이 밀려오더라도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너는 할 일이 없어서 공부하는 게 아니잖아. 꿈을 성취하기 위해 공부하는 거잖아. 그러니, 이제 성공을 위한 씨앗을 뿌리자. 대신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면 제대로 해야 해. 그냥 하는 둥 마는 둥 해서는 언제 끝날지 몰라. 넌 벌써 수능을 세 번째치고 있잖아. 이왕 할 거라고 결심했으면 제대로 공부했으면 좋겠어. 짧은 시간 바짝 고생하고 끝내란 말이야. 너도 이제 네 인생을 살아야지. 네가 힘들고 어렵게 산 것은 맞지만 언제까지 부모 탓하고, 네 형편과 환경만 탓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선생님은 네가 처해있는 어려운 환경과 상황에도 불구하고 네가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봐. 용기를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