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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별 Sep 13. 2022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던 사람들에게


어쩔수 없이 철이 들어야 했던 사람이 있다. 또래보다 일찍 철들었네 라던지 니가 너무 빨리 철든거 같아서 미안하다 같은 영혼 없는 사과를 잊을만 하면 듣고 자란 사람들. 유난히 눈치가 빠르고 주변 공기를 잘 읽으며 책임감이 강하고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세상의 이치를 혼자서도 잘 터득하는. 걱정없이 해맑고 건강하게만 자랄수 있었다면 들 필요가 없었던 철.


‘철들다’를 네이버 어학사전에 검색해보면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 생기다’ 라는 설명이 나온다. 때가 되면 여러 경험과 학습을 통해 사리도 잘 분별하고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기 마련이지만, 아 물론 요즘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그래도 일단은 적정 나이가 되면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란 것, 하고 싶은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것, 포기하고 양보해야 하는게 아주 많다는 사실 같은걸 알게 될 것이다. 철드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서도 타의에 의해 혹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적인 이유때문에 지나치게 일찍 철드는 어린이들이 있다.


어린이는 복잡한 집안 사정이라던가 자연스럽게 깨닫는 가정 형편, 이유야 어쨌든 부모의 부재 등등으로 인해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를 내던지지 않고 묵묵히 끌어안는다. 겉으로 보기엔 친구들보다 똘똘해 보이고 아는것도 많은것 같고 왠지 모르게 그 주변에만 특별한 공기가 흐르는 듯 하지만 뭐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다. 집에 가면 크던 작던 어떤 형태의 불행이 늘 어린이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렇게 매일 접하는 불행한 일상은 작은 인간의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서서히 가라앉는다. 원망을 하려 해도 딱히 대상이 없다. 세상은 커다랗고 어린이는 무력하다. 점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를 탓한다.
 

어떤 어른은 일찍 철든게 대견하다며 칭찬을 한다. 불행을 가져다 준 피붙이들은 일찍 철든게 속상하다고 한다. 뭐가 됐든 뭣도 모르면서 하는 말이 분명하다. 어른은 알 수가 없다. 당장 들이닥칠 내일의 불행도, 불안한 오늘도 알고 싶지 않은데. 그냥 친구들이랑 놀다가 하기 싫은 숙제나 억지로 하고 싶은데. 빼놓고 온 준비물 같은거에 불안하고 싶지 준비물 살 돈이 없어서 뭐라고 핑계를 대야할까 고민하는게 뭐가 대견하다는건지. 어른이면서 애한테 철은 들대로 들게 해놓고 왜 이제와서 미안해 하는건지.


모든 집안이 화목하고 행복할 수는 없다는건 어린이도 잘 알고 있다. 교양 넘치는 멋진 어른들과 좋은 집에서 갖고 싶은걸 다 갖고 먹고 싶은걸 다 먹으면서 사는 친구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모두가 나처럼 사는건 아닌거 같다고 어린이는 생각한다. 해사하게 웃는 같은 반 아이를 보며 걔가 누리는 행복을 질투하지 않고 쟤는 참 이쁘게 웃네. 생각은 여기에서 그친다. 질투도 사치다. 그의 내일과 나의 내일을 비교하는데에 쓸 힘도 없고 여유도 없다. 당장 오늘을 살아내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친구의 미래와 내 미래가 비슷한 형태로 흐르지 않을거라는거 정도는 분명하게 느낀다.


이렇게 자란 어린이는 자연스럽게 비슷한 공기를 가진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다. 그 어린이들도 각자 사정이야 다르겠지만 다들 일찍 철든덕에 이따금 모두가 호들갑 떨 때 그게 시시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공유할 수 있다. 마음 놓고 좋아하고 신나하는 경험을 해본적이 없어서 알기를 포기한 감정들이다. 또래 애들은 그냥 애들이고 우리는 걔네랑 다른 무언가가 된 것 같지만 언뜻 스치고 지나가는 비참함은 모른척한다. 그렇게 작은 인간들은 다 아는듯 행동 한다. 여전히 보호 받아야 마땅하고 어른들에게 배울 것도 한참 남아있지만 스스로 어른이 된 마냥 굴 수 밖에 없다.



유복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랐어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각박한 세상을 쳐나아가 온전한 자기 자신이  사람도 있다. 환경이  사람을 의미하는건 아니다. 대자로 쓰러져도 일어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최소한 몸을 일으켜   앉아있을수는 있게 된다. 앉아있다보면 언젠간 일어설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불행에 매몰 되어서는 안된다.  자신을 불쌍히 여겨서도 안된다. 나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안쓰러운 존재가 아니다. 왜냐면 스스로 연민을 느끼는 순간 일어나겠다는 마음은 영원히 가질  없을것 같았다. 살았다기보다 버텼다고 하는게 맞을거다.


그렇게 남보다 일찍 철 든 덕에 온갖 기대와 부담을 짊어지고 어른이 된 사람은 참 잘 산다. 잘 사는것처럼 보인다. 뭐든 혼자서도 척척 잘 하고 어딜 가든 칭찬을 받는다. 누구씨 일 참 잘하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아네. 혹은 연애상대로도 매력적이다. 아는것도 많고 할 줄 아는것도 많은것 같은데 왠지 자꾸 신경쓰인다. 그늘 같은건 없어보이는데 저 사람 혼자 있으면 왠지 다른 모습이 될 것 같다. 그 모습이 궁금하다. 뭐 이런 이야기도 자주 들을거다. 이유는 본인이 제일 잘 안다. 혼자 철들고 혼자 짊어진 삶에 익숙해져서 뭐든 빠릿빠릿하게 잘 해야 하고 눈치도 빠른 센스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감출수 없는 피로감이 누군가에게는 흥미를 일으키는 요소인가보다.



이제와서 생각하는건데 아니 사실은 전부터 말하고 싶었던건데,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던 사람들아. 지금부터라도 뭔가를 원망하면서 살아보면 어떨까. 부모나 가족이 되었든 친구든 사건이든 뭐든간에. 우리는 원망보다 스스로를 다그치는걸 택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래야 뭐든 빨리 해결됐으니까. 내 선에서 해결하자/ 나만 잘 하면 돼/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았어 해볼게. 익숙하면서도 지겨운 말들. 정말로 내가 다 할 수 있어서 진짜로 하고 싶어서 한 말이 아니다. 다른 말을,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저렇게 말하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사는 방식을 바꾸자니 너무나도 오랫동안 혼자 알아서 척척 잘해온 삶 아닌가. 그러니 하던대로 알아서 잘하고 대신 적당한 원망도 곁들여보자. 화살의 끝을 자꾸 나 자신에게 향하도록 두면 결과는 뻔하다. 내가 서 있는 땅만 밑으로 푹푹 꺼지다 누군가 도와주려 해도 깊어질대로 깊어진 구멍은 날 놓아주지 않을것이다.


탈출 버튼은 빨리 누를수록 좋다. 추락하기 전에, 폭발하기 전에, 내가 나를 놓아버리기 전에. 이미 너무 일찍부터 많은걸 겪었으니 다들 피곤하겠지. 지겹겠지. 자려고 누우면 이 지긋지긋한 삶이 언제쯤 끝나려나 싶은 마음이 매일 떠오르겠지. 왜냐면 나도 그러니까. 그래도 뭐든 미워하고 원망하며 이 모든게 오로지 나 때문만은 아니라는것 정도는 머릿속으로 되뇌이고 살아도 되지 않겠나. 내 앞에 놓인 무거운 생을 돌보느라 미처 배우지 못한 아주 사소한 것들. 부모가 자식에게. 보호자가 어린이에게 전해줄 수 있는 그런것들은 앞으로 천천히 알아가면 된다. 그러니까 싫어하고 미워해도 된다. 어차피 우리한테 누군가를 있는 힘껏 증오할 에너지는 없으니까. 화살촉을 내가 아닌 다른 적당한 곳에 둬도 된다. 화살을 날릴 사람이 아니니까. 활 시위도 필요없다. 언제나 스스로를 향하던 활 끝만 살짝 돌려보자는 얘기다.


놓쳐버린 많은것들이 아쉽다. 이만큼이나 나이를 먹었는데도 작은 인간의 마음 속에 가라앉은 불행은 줄어들지도 않고 그대로다. 하지만 그 때의 무력했던 어린이를 이제는 어른이 된 내가 보살펴 줄 수 있다. 남들한테 아주 사소하고 하찮지만 정말로 해보고 싶었던것, 듣고 싶었던 말들을 해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불행했던 과거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진짜 어른이 된 나는 억지로 철들어야 했던 그때의 나를 위로해 줄 힘이 있다.


이제는 적당히 나만 생각하는걸 연습하고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정도는 그냥 하게 두자. 자처해서 떠맡는건 그만둘것이다. 무엇보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건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건 내가 초래한게 아니니까. 백번을 생각해도 내 존재는 잘못되지 않았다. 누군가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나까지 나를 포기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쯤 누워서 일어날 수 있게 되는 날을 기다려봐도 괜찮을것 같다. 끝까지 나를 너무 너무 사랑하는 내가 되지는 못한다 해도 내가 되는걸 그만두지는 않았으니까 나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생존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용케도 지금까지 살아낸 당신들의 고단했던 삶이 앞으로는 조금 덜 피로하길 바란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날들에 기대가 생기길 바라며 오늘 밤은 억지 어른이 되어야했던 지난날의 꿈 같은건 꾸지 말고 푹 자길 바란다. 우리는 그래도 된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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