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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별 Mar 11. 2021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배달음식


처음부터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첫 주문 쿠폰을 나눠줄 때 가입하고 와, 이런 것도 배달되네! 신기해서 시켜보는 수준이었다. 우울증이 심해지고 밖에 잘 나가지 않게 되면서 나는 결국 배달어플의 VVVIP가 되었다. 도대체 얼마나 시켜먹었기에 최종 레벨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정신 차리니 이 마약 같은 배달음식에 푹 빠져버렸다.

일단 내가 홍대에 사는 게 문제다. 여기는 24시간 내내 무엇이든 배달이 된다. 새벽 3시에 깐풍기나 크림새우는 장난이고 빙수에 와플까지 배달된다. 만일 당신이 배달로 하루 세끼와 매 끼니 디저트를 먹는다 해도 전부 다 해결된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 “뭐 사갈까?” 물어보면 나는 으레 “됐어 배달시키면 돼”라고 말한다. 뭔가를 포장하러 오가는 수고보다 같이 어플을 보며 고르면 늦어도 한 시간 안에는 음식이 도착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친구들이 올 때쯤 미리 시켜놓는다.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타코 샐러드, 마라샹궈, 줄 서서 먹어야 하는 맛집의 바지락 술찜에 면 추가. 이것들이 한 상에 놓여진 기쁨을 아는가. 배달음식의 짜릿함은 이런 식이다. 홍대 근방의 각종 맛집의 음식들을 집에서도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  이런 것도 배달이 되냐며 놀라는 방문객들. 자정이 지나도 배달되는 디저트들과 커피 혹은 밀크티. 술 사러 나가기 귀찮을 때는 술도 배달시킨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많이 먹을게 아니라면 들고 오는 번거로움 값으로 치고 앉은자리에서 술과 안주를 함께 받아먹는다.

그렇게 나는 살이 쪘고 통장의 잔고는 줄어만 갔다. 하루 종일 모든 끼니를 배달로 시켜 먹고 밀크티와 케이크도 배달로 해결하곤 했다. 하루를 건너뛰면 뛰어난 자제력으로 배달을 참은 양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어제 많이 참았으니까, 돈 아꼈으니까. 다음 날엔 배달음식 파티를 했다. 배달 라이더가 음식을 문 앞에 두고 벨을 누르는 순간 무채색의 일상이 컬러풀하게 변한다. 정작 음식은 반도 못 먹고 버리기 일수. 게다가 처리할 때 나오는 쓰레기도 어마어마하다. 그래도 계속 배달 음식을 먹는다. 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안주가 떨어질라 치면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물리지 않는 음식으로 세심하게 골라 배달을 시킨다. 라이더가 세 번은 다녀간다. 얼마나 중독이냐면, 더는 주문한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참을 기다리다 맞다, 주문한 게 없지! 하고 깨닫는다.

인터넷을 하다가 2년 동안 배달 어플에 2000만 원을 쓴 사람의 일기를 보았다. 나랑 다를 게 없었다. 살찌고 돈 많이 쓰고. 그 사람도 우울증이었다. 우울증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건강한 음식을 제때 먹고 나니 배달 음식을 끊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나도 병원에 가서 물어봤다. 제가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정신 차리면 라이더가 오네요. 말했더니 의사는 주문했을 때 누군가 와서 내가 원하는 음식을 갖다 주는 행위 자체가 큰 자극이라고 했다. 돈을 쓰는 것과 음식을 먹는 것. 내가 시킨 대로 누군가 움직이는 것. 이 모두가 포함된 행위라서 의외로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배달시키는 것에 중독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결국 나는 어플을 지웠다. 줄어가는 잔고와 반비율로 늘어나는 몸무게. 어느 하나 내게 도움될 게 없다고 판단했다. 사실 가끔 다시 깔아서 참을 수 없을 때 한 번씩 시켜먹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그래도 핸드폰에 배달 어플 없는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려고 한다. 끊기 힘든 담배는 애초에 안 피는 게 좋은 것처럼 배달 음식도 처음부터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 어쨌든 이왕 이렇게 된 거 살도 빼고 돈도 아낄 겸 배달음식을 끊으려고 한다. 남들에겐 아주 쉬운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겐 일상의 커다란 행복 하나가 빠져나간 기분이다. 금단 현상이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겠다. 그래도 뭐가 됐던간에 나의 의지가 아닌 것에 휘둘리고 싶지는 않다. 그게 배달음식이라니. 진작에 끊었어야 했다. 이미 나를 휘두르고 있는 건 아주 많기 때문이다. 하나씩 줄여가며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 반듯하게 서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와중에 다행인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확고한 마음이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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