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근교의 알베르 칸 박물관(Musée Albert-Khan)에 갔다가 흥미로운 옛날 사진을 하나 보게 되었다.
알베르칸 박물관 입구
이 박물관은 은행가이면서 박애주의자였던 알베르 칸이 추진한 ‘지구 자료 저장소(The Archives of the Planet) ’ 프로젝트와 세계 여러 나라의 정원 양식을 모아 놓은 ‘세계의 정원들(Les Jardin du Mond) ’을 가지고 있는 좀 특수한 박물관이었다.
칸은 지구의 모든 모습을 기록하는 ‘지구 자료 저장소’ 프로젝트를 이행하고자 1914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각 대륙에 사진작가들을 보냈다. 그렇게 해서 무려 50개 나라의 진기한 모습을 담은 사진 7만 2,000장을 모았는데, 그 귀한 풍경을 담은 필름의 길이가 무려 18만 3,000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한편, 전 세계의 화합을 기원하며 조성한 ‘세계의 정원들’은 프랑스 , 영국, 일본식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단순히 모양만 갖춘 것이 아니라 특이한 것은 그지역 나무들을 직접 옮겨다 심을 정도로 지역 특색을 중시했다는 설명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는 알베르 칸 박물관에서 파리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감상하다가 한 사진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낯선 개선문 같은 사진이 내 눈길을 잡았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던 파리의 옛 사진
그 사진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파리에 개선문은 우리가 익히 아는 그 개선문 들만 있는 줄 알았다.
튈르리 정원에 있는 카루젤 개선문, 샤를 드골 광장에 있는 에투알 개선문 그리고 라데팡스에 있는 그랑 아치가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1900년대 초에 찍은 그 사진 속에 그때까지 본 적 없는 또 다른 개선문이 있었으니 조금은 놀랍기도 하고 상당히 궁금하기까지 했다.
이 문은 어떤 문일까? 아직도 파리에 존재하는 문인가? 있다면 어디에?
이런 호기심과 함께 나의 파리 개선문 수색 작업은 시작되었다.
'생 드니' 문( Porte Saint-Denis)
생 드니 문
알베르 칸 박물관에서 본 것은 지금도 파리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생 드니' 문이었다.
파리의 개선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루이 14세가 자신의 전승을 기념하고자 1672년에 세웠다고 한다.
'생 드니' 문이 있는 자리에는 원래 샤를 5세가 파리를 방어하려고 세운 중세 성벽의 문이 있었는데, 루이 14세는 그 성벽의 문을 대신해 이 개선문을 세웠다고 한다. 개선문이란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고자 세운 모든 종류의 문을 지칭하는 말이니, 이것도 개선문이라 불러야겠다.
이 개선문은 유명한 ‘에투알 개선문’과 같이 로마에 있는 ‘티투스 문’을 참고해서 지은 것이다.
로마의 티투스 문
'생 드니' 문 맨 위에는 ‘루도비코 마그노(LUDOVICO MAGNO)’라는 글자가 청동으로 조각되어 있다. 다름 아닌 ‘루이 대제(To Louis the Great) ’라는 뜻이다. 파리 시내 3구와 10구의 경계에 있는 이 문은 파리 시내에 있음에도 다른 개선문들의 인기에 가려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듯했다. 일반 여행객들이 주로 다니는 황금 노선에선 좀 빗겨 나 있는 위치적 약점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파리를 소개한 일반 관광안내 책자에는 이 문이 거의 언급되지 않으니 말이다. 간혹 파리를 깊이 있게 소개한 책에는 역시 '생 드니' 문이 빠지지 않고 언급되어 있었다.
파리의 거리 풍경을 주로 그렸던 화가 Edourard-Leon-Cortes(1882-1969)의 그림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에게는 파리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개선문을 찾았다는 기쁨보다 이 문을 찾아가는 길의 분위기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대낮임에도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짧은 가죽 미니스커트에 빨간 립스틱을 짙게 칠한 직업여성들의 눈총을 받으며 단신으로 그 길을 지나가야 했으니 말이다. 파리 시내에는 우범지역으로 파리지앵들도 조심하는 지역들이 몇 군데 있는데 이 곳도 그중 하나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친지들은 오래된 그러나 낯선 개선문 이야기보다는 그곳을 혼자 찾아갔다는 내 걱정들을 더 했으니 말이다. 겁도 없이 찾아낸 '생 드니' 문.
아마 그 길의 분위기를 미리 알았더라면 혼자서는 찾아가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게 약이다.
'생 마르탱' 문 (Porte Saint-Martin)
생 마르탱 문(좌),로마의 콘스탄틴 문(우)
'생 드니'문의 사촌 정도 되는 문이다.
이것 역시 '생 드니' 문처럼 샤를 5세의 중세 성벽에 있던 문을 대신해 세운 것이다. 마찬가지로 루이 1 4세의 개선문이며, 위치도 파리 시내 3구와 10구 경계 지역으로 '생 드니' 문과 이웃사촌이다. ‘카루젤 개선문’과 같이 로마의 ‘콘스탄틴 문’을 참조해 1674년에 세워졌다.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갑자기 나타나는 고대 유적이나 중세 유적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치게 된다. 그러나 그 도시가 세계 최대 유행의 중심지인 파리라고 하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살면 살 수록, 알면 알 수록 파리는 아직도 구석구석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임이 확실했다.
카루젤 개선문 (Arc de Triomphe du Carrousel)
튈르리 정원과 루브르 사이에 있는 카루젤 개선문
루브르 앞 카루젤 광장에 우뚝 서 있지만 좀 생뚱맞은 장소에 서 있는 개선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이 문은 튈르리 궁으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했으나, 1871년 파리 코뮌 때 튈르리 궁은 불에 타 소실되고 이 문만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카루젤(Carrousel) ’이란 루이 14세 때 이 광장에서 하던 마상 훈련을 뜻한다고 한다.
유원지나 관광지에서 만나는 회전목마(carousel)의 원조인 셈이다.
불타기 전의 튈르리 궁과 카루젤 개선문 그리고 루브르
1808년에 완공한 카루젤 개선문은 나폴레옹의 전승 중 가장 큰 업적으로 기록되는 1805년 오스테를리츠 전투(La bataille d’Austerlitz)를 기념하는 개선문이다. 외관을 보면 생 마르탱 문과 같이 로마의 콘스탄틴 문을 참고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카루젤 개선문 위의 말 동상(좌)과 베니스 산 마르코 성당의 말 동상(우)
카루젤 개선문 상부에는 말 네 마리가 끄는 마차에 ‘평화의 여신’이‘승리의 여신’으로부터 보호받으며 서 있는 모습을 묘사한 조각상이 있다.
개선문 위에 이 조각상을 세우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원래 이 말 동상은 베니스의 ‘생 마르코 대성당(Saint Mark’s Cathedral) ’ 앞 면을 장식하고 있었는데 베니스를 너무나 사랑한 나폴레옹이 집권하자 유명한 말 동상을 빼앗아 와 개선문 위에 장식해 놓았었다고 한다. 그러나 권력 무상이라고 할까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에서 지고 실각하자 말 동상은 다시 베니스로 반환되었다고. 현재 '생 마르코 성당'의 말 동상은 보존을 위해 성당 내부에 전시되어 있고 외부에 장식되어 있는 것은 카피본이다.
카루젤 개선문 위의 말 조각상은 1828년에 조각가 프랑수아 조제프 보지오(François Joseph Bosio) 남작이 만든 것이다.
에투알 개선문( Arc de Triomphe de l’Étoile)
에투알 개선문
나폴레옹의 명으로 카루젤 개선문과 같은 해에 세우기 시작했지만, 공사를 시작한 지 30년이나 지난 1836년에 완공된 파리를 대표하는 개선문이다.
개선문 주위의 12개 도로들
‘에투알(Étoile) ’은 별이라는 뜻으로 개선문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 열두 갈래의 도로가 마치 별 모양 같다 하여 '에투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살아생전에는 이 문을 지나지 못하고, 1840년 파리로 시신을 이장할 때 영구차에 실려 에투알 개선문을 통과할 수밖에 없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음에 허무한 마음이 든다. 그런가 하면 2차 대전 당시 파리를 점령한 히틀러가 개선문을 통과하는 행진을 하여 파리지앵들에겐 잊지 못할 치욕으로 남겨진 상징적 의미를 가진 개선문이기도 하다.
개선문을 정면에서 촬영하기 가장 좋은 장소는 개선문에 근접한 건널목 중앙인데 늘 사람들로 붐비긴 한다. 보행자를 위한 약간의 여백이 있긴 하나 파리지앵들의 급한 운전 습관으로 봐서는 안전에 신경을 쓰고 촬영하도록.
개선문을 통과하는 나폴레옹의 영구행렬
그랑 아치 (La Grande Arche)
라데팡스의 그랑 아치
라데팡스(La Defense)에 있는 개선문으로, 1989년에 완공했다.
사실 이 건축물은 승전을 기념하는 목적으로 세운 것이 아니므로 개선문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른 개선문과 마찬가지로 이 건축물을 ‘라데팡스 개선문’이라고 부르곤 했다.
미테랑 대통령 때 세운 이 건축물에는 ‘인간을 생각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이름에도 개선문을 뜻하는 단어는 들어 있지 않고 그냥 ‘그랑 아치’라고 부른다.
그랑 아치는 3차원 세계를 의미하는 하이퍼큐브(Hypercube), 초입방체 구조로, 콘크리트 골격에 유리와 대리석을 덮어씌웠는데, 대리석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카레라(Carrara) 대리석을 사용했다. 미켈란젤로의 역작 다비드상도 카레라 대리석으로 만든 것이다. 현재 그랑 아치의 각 층은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나름 알아본 결과, 파리에는 ‘개선문’이라 부를 만한 건축물이 모두 5개 있는 셈이었다.
그래도 오늘날 파리를 대표하는 개선문은 역시 '에투알 개선문'일 것이다.
그런데, 카루젤 개선문, 에투알 개선문, 그랑 아치, 이 세 개선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환상적인 장소가 있다. 멋진 명화들을 발이 아프게 감상하다 잠시 쉬어 가려 다가간 창가에서 환상적인 광경을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