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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프랑스 왕비가 된 이탈리아
여인

카트린느 드 메디치

by Ciel Bleu

프랑스를 주름잡은 이탈리아 여인,

카트린느 드 메디치(Catherine de Medicis:1519~1589)


Catherine-de-medici[1].jpg <카트린느 드 메디치>, Francois Clouet, Victoriabert Museum


이탈리아 메디치(Medicis) 가문은 피렌체에서 위세를 떨친 강력한 금융 가문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문을 연 유명한 가문이다.

이 집안 자손 중에 프랑스 왕비가 되어 한 시대를 풍미한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앙리 2세'의 왕비였던 '카트린느 드 메디치'다.

'카트린느'가 프랑스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대단한 여걸이었던 만큼 그녀와 연관된 사건은 루브르에 걸린 여러 작품뿐 아니라 다양한 역사의 현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카트린느'를 중심으로 프랑스 왕가의 가계를 잠깐 살펴보자면, 그녀는 '프랑수아 1세'의 둘째 며느리, 즉 '앙리 2세'의 왕비이자 '앙리 4세'의 장모가 된다. 위아래로 역사 속에 막강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인물 들이다. 그들 사이에서 그녀가 어떻게 자신을 역사에 깊이 남을 왕비로 처신했는지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아들 '앙리 2세'와 '카트린느'를 결혼시킬 때 프랑스 귀족들은 한낱 은행가의 딸을 왕자비로 맞을 수 없다며 그녀를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자 '프랑수아 1세'는 '카트린느'가 둘째 며느리라서 왕후가 되지는 못할 테니, 이 결혼을 인정해 달라고 귀족들을 직접 설득했다고 한다.

문학뿐 아니라 수학, 과학, 건축학까지 박학다식했던 '카트린느'는 결혼 후 시아버지 '프랑수아 1세'를 끔찍이 따랐다. 그리고 문학에 소질이 있던 시고모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Marguerite de Navarre)' 와도 인문학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참고로 '프랑수아 1세'의 누나 '마르그리트'는 '엡타메롱(Heptaméron)이라는 책을 낸 작가로 이 책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과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녀가 이 책에 묘사한 ‘사랑의 불길은 그것을 알아차리기 전에 이미 마음을 태우고 있다.’라는 사랑에 관한 구절은 명구절로 지금도 널리 인용되고 있다.

'카트린느'는 이탈리아의 고급문화를 프랑스에 전파한 왕비로도 유명하다.

특히 포크를 사용하는 식사 예법, 여자가 승마할 때 옆으로 타는 예법, 궁중 발레 등 그녀가 프랑스에 전파한 이탈리아 문화는 프랑스 문화가 발전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검은 베일 속의 백합


그런데 이토록 똑똑하고 재주 많은 왕비에게도 고민거리가 있었다. 남편인 '앙리 2세'와의 관계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왕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나 '앙리 2세'에게는 이미 20여

년 연상의 오래된 정부 '디안 드 푸아티에(Diane de Poitiers:1499~1566)'가 있었다.

'디안'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베개 밑 송사’와는 거리가 먼 여자였다.

그녀는 '앙리 2세'에게 정신적 지주, 말하자면 엄마 같은 존재였다.

'앙리 2세'의 아버지 '프랑수아 1세'가 그 당시 맞수이던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와 벌인 전투(Pavia 전투)에서 패하여 어린 두 아들 '프랑수아 2세', '앙리 2세'를 스페인에 인질로 보내야 했는데, 이때 이들을 끝까지 배웅해 준 사람이 바로 '디안'이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마음 붙일 곳 없던 어린 왕자들은 어머니의 시녀였던 '디안'에게서 모성애를 느낀 것이 아니었을까?

두 왕자의 나이 8세와 7세였다.

<디안 드 푸아티에>, 작자 미상

그녀에 대한 '앙리 2세'의 신임은 무척 두터웠는데, 왕이 그녀에게 공식 서류에 대신 서명을 하도록 했다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게다가 '디안'이 한 서명도 가관이다. '앙리'와 '디안'의 이름을 합쳐 ‘앙리디안(HenriDiane) ’이라고 서명했다니 말이다.

이 정도면 정부가 아니라 동지의 개념으로 두 사람 관계를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카트린느'는 결혼 후 10년이 넘도록 후사를 잇지 못해 항상 왕비로서의 자기 위치에 불안을 느끼며 살았다.

가뜩이나 이탈리아 상인 집안의 여인을 왕비로 맞은 것에 거부 반응을 보이던 귀족들로 '카트린느'는 자신의 위상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앙리 2세'를 진심으로 사랑한 '카트린느'는 남편의 사랑을 얻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를 한 토막 소개한다.

어느 날 시종 중 한 사람이 '카트린느'에게 정부와 함께 있는 왕의 침실을 엿보게 했다. 침실을 엿본 카트린느는 “저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하며 학을 떼었다고.


그녀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식이 없던 '카트린느'가 그날 이후 자식을 10명이나 낳았다고 하니, 학습 효과는 있었나 보다.

그러나 불행히도 '카트린느'가 낳은 자식들은 대부분 어릴 때 죽거나 왕위에 올라도 단기간에 사망하는 불운을 겪게 된다.


한편, 그녀의 남편 '앙리 2세'는 '몽고메리 백작'과 마상 시합을 하던 중 사고로 백작의 창에 눈을 찔려 목숨을 잃었다. 그의 나이 겨우 40세였다.

이 사건으로 '카트린느'는 유명한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Michel de Nostredame)'가 '앙리 2세'의 죽음을 예언했다고 믿게 되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왕이 젊은 사자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는데, 시합 도중에 실수로 왕의 눈을 찌른 '몽고메리 백작'의 별명이 ‘젊은 사자’였기 때문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확신한 '카트린느'는 점성술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점성술은 별자리를 이용해 발전했기 때문에 '카트린느'는 루브르 옆에 천문 관측용 탑을 세우기도 했다.

이 탑은 현재도 남아 있는데, 나는 30미터 높이의 이 탑을 ‘파리의 첨성대’라고 부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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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느가 세운 천문 관측용 기둥, 비아름(Rue de Viarmes) 가에 있다


'카트린느'는 남편 '앙리 2세'가 사고로 세상을 뜨자, 죽는 날까지 상복을 입고 지냈다.

그래서 우리가 작품 속에서 보는 그녀의 초상화는 거의 다 상복을 입은 모습이고, 사람들은 그녀를 ‘검은 베일 속의 백합’이라고 불렀다.

검은 베일은 상복을 입었기 때문이고, 백합은 메디치 가문의 문장에 알약 5 개와 백합 세 송이가 그려져 있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초상화(1580년)>,Francois Clouet,Walters Art Museum(좌)/ 메디치 가문 문장(우)

마흔밖에 안 된 정정한 남편을 먼저 보낸 '카트린느'는 칠순까지 살았다. 그녀는 1589년 1월에 루아르 밸리에 있는 블루아 성(Château de Blois)에서 숨을 거두었다.


1200px-Loire_Cher_Blois1_tango7174.jpg 블루아 성


생 드니 성당(Basilica de Saint Denis)에 가면 '앙리 2세'와 '카트린느'의 석관이 있는데, 그곳에 새겨진 그녀의 모습이 보기에 좀 그렇다.

늘 근엄한 모습으로 표현된 그녀의 초상화를 보다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여자의 모습으로 조각된 그녀의 석관을 보니 낯설었다.

한편으로는 남편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마음고생만 한 그녀가 죽어서라도 한 여자로 남고자 했던 바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생드니 성당 안에 전시된 그녀의 석관 포스터










프랑스의 종묘, 생 드니 성당


생 드니 성당 내부

'앙리 2세'와 '카트린느'의 석관이 있는 생 드니 성당은 프랑스 역대 왕들의 묘지, 우리나라로 치면 ‘종묘’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성당 이름을 잘 보면 생 드니 성당(Basilica de Saint Denis)처럼 ‘바실리카(Basilica)'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가 하면 노트르담 성당처럼 ‘캐시 드랄(Cathedral)’이라 부르는 곳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캐시드랄'과 '바실리카'의 차이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건물 내부에 묘지가 있으면 바실리카, 없으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성당,캐시드랄이라고 한다.

생 드니 바실리카는 프랑스 역대 왕들의 묘지가 있긴 하나, 프랑스 대혁명 때 혁명군들이 모든 무덤을 파헤쳐 유골을 훼손했기 때문에 지금은 모든 석관이 비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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