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로 잘 알려진 ‘퐁네프’는 센 강의 시테 섬을 지나는 다리인데, 다리 중간에 베르갈랑 공원(Vert Galant Square)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시테 섬 끝자락에 조성된 이 공원은 파리에서 센 강의 석양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인기가 많은 곳이다.
퐁네프에서 내려단 본 베르갈랑 공원 전경
그런데 이 아름다운 공원에는 서정적인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끔찍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수많은 영화와 소설 등으로 변주되며 전 세계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13일의 금요일’, 그 저주의 역사가 파리 한복판에서 시작된 것이다.
베르갈랑 공원에 가려면 퐁네프 중간에 세워져 있는 '앙리 4세'의 동상 뒤로 난 계단을 내려가면 된다. 그런데 공원에 들어서기 직전 벽에 템플 기사단(Knights Templar)의 마지막 수장이었던 '자크 드몰레(Jacques de Molay, 1244~1314)가 화형을 당한 곳'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아름다운 공원에 들어서려다 잠시 섬뜻해진다.
자크 드몰레
파리의 심장, 시테섬에 템플 기사단 수장의 화형이라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자, 이제부터 어떻게 된 사연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영화 <다빈치 코드 >나 <인디아나 존스>에는 성배를 지키는 템플 기사단이 등장한다. 템플 기사단은 원래 프랑스의 기사 위그 드파양(Hugues de Payens)이 성지 순례자들을 이슬람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자 1118년에 결성한 종교 기사단이다. 이후 십자군의 주력 부대로 활약했지만, 1314년 베르갈랑 공원에서 수장이 화형에 처해짐으로써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이다.
드몰레의 화형 장소임을 알리는 현판
템플 기사단은 십자군 전쟁으로 엄청난 부와 군사력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교황 클레멘스 5세(Clemens Ⅴ, 1264~1314, ‘아비뇽 유수’의 주인공)는 기사단의 막강한 힘을 경계했고, 프랑스 왕 필리프 4세(Philippe Ⅳ, 1268~1314)는 기사단에 큰 빚을 지고 있었다. 기사단이 눈엣가시였던 교황과 왕은 이들을 없애기로 하고, 기사단을 붙잡아 누명을 씌웠다. 당시 친지의 장례식 참석차 파리를 방문한 드몰레와 60명의 기사단이 이 음모에 걸려들었는데, 기사단을 체포한 날이 바로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이었다.
템플 기사단의 수뇌부는 온갖 회유와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았고, 결국 1314년 3월, 베르갈랑 공원에서 화형을 당한 것이다. 드몰레는 죽어가면서 기사단을 죽음으로 내몬 세력들을 저주했다고 한다.
“교황 클레멘스와 필리프 4세, 그 자손들까지 우리와 똑같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라고.
그의 저주가 효력을 발휘한 것일까? 이후 1년이 채 못 되어 교황은 병으로, 필리프 4세는 사냥터에서 사고로 죽었다. 그리고 드몰레가 처형당한 지 14년 만에 300년 전통을 이어 오던 프랑스 카페 왕조(House of Capet)는 대가 끊겼다.
그저 우연이라 하기에는 드몰레의 저주가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필리프 4세 교황 클레멘스 5세
기사단이 처형당한 뒤 400여 년이 흘러 그 명맥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들이 오늘날 프리메이슨(Freemason)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프리메이슨의 청년 조직 명칭이 '드몰레'라고 하며 일설에 의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국의 부시 대통령 등도 프리메이슨이라고 하는데...
이런 어마어마한 역사를 품고 있는 베르갈랑 공원은 센 강의 지는 석양을 감상하러 오는 이들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흐르는 센 강 위에 고요히 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