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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Oct 23. 2023

58. 괴팍한 천재화가의  조력자

카라바조와 마리오 민니티(Mario Minniti)


얼마 전 그를 다시 보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내쇼날 갤러리 전시회의 대표작으로 걸린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1571~1610)의 작품 속 인물이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된 카라바조의 'Boy Bitten by a Lizard'

괴팍한 천재 화가 카라바조의 조력자이자 단골 모델이었던 마리오 민니티(Mario Minniti:1577~1640).

카라바조의 동료(연인이란 설도 있다)인 마리오는 우리도 많이 보았던 인물이다.

그는 여러 편의 카라바조의 그림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보르게제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1593년작 'Boy with a Basket of Fruit'를 시작으로 로마의  'Capitoline Museums'에 있는 1594년작 'The Fortune Teller'

의 모델도 마리오 민니티다.

Boy with a Basket of Fruit(좌) / The Fortune Teller(우)

그를 모델로 한 카라바조의 작품은 계속되어 뉴욕의 Metropolitan Museum of Art에 소장되어 있는 1595년작 'The Musicians', 런던의 내쇼날 갤러리에 있는 1596년작 'Boy Bitten by a Lizard',

The Musicians (좌) / Boy Bitten by a Lizard(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Hermitage Museum'에 있는 1596년작 'The Lute Player'와 피렌체 우피치에 소장되어 있는 1596년 작 'Bacchus'

The Lute Player (좌) / Bacchus (우)

1599년부터 1600년 사이에 그려진 로마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San Luigi dei Francesi) 성당의 대작 'The Calling of St Matthew'와 'The Martyrdom of Saint Matthew'등 카라바조의 초기 걸작들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마리오 민니티가 등장한다.

The Calling of St Matthew (좌)/  The Martyrdom of Saint Matthew (우)

그는 카라바조와 로마에서부터 절친이었던 시실리 출신 화가로 카라바조가 일으킨 각종 사건에도 연루된 그의 든든한(?) 조력자다.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시실리 섬의 아름다운 도시 시라쿠사(Syracusa: '유레카'를 외쳤던 아르키메데스의 고향이기도 하다)에 카라바조의 역작이 남아 있는 이유다.


1606년, 로마의 유명한 화가였던 카라바조는 다툼 끝에 살인을 하게 되고 이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게 되자 로마를 탈출하게 되고 탈주범이 된 그에게 현상금까지 걸리게 된다.

로마를 탈출한 그가 나폴리를 거쳐 몰타, 시실리, 그리고 마지막 숨을 거둔 포르토 에르콜레(porto ercole)까지 도피 생활을 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가는 곳마다 천재성에 맞먹는 불 같은 성격으로 사건을 만든 카라바조.

그런 그가 곤경에 처했을 때 마리오 민니티는 그의 도피를 돕고 그의 재능을 발휘할 작품까지 의뢰받는 등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왔다.



시실리의 시라쿠사 대 성당 앞의 두오모 광장.

이탈리아 영화 '말레나'에서 여 주인공이 굽 높은 검정 하이힐을 신고 하얀 대리석 성당과 대조되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요염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이 클로즈 업 되어 인상적이었던 장면이었다.

흑백의 조화는 극과 극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이 아닐까 싶다.

마치 카라바조의 극적인 명암법처럼.

시라쿠사의 두오모 광장(오른편 건물이 대성당이다)

대리석으로 하얗게 빛나는 대성당의 모습은 이 광장의 하이라이트지만 이곳에는 꼭 들러야 하는 명소가 하나 더 있다. 멋진 광장의 끝자락에 있는 조그마한 성당 산타 루치아 알라 바디아(Santa Lucìa alla Badìa) 성당이 바로 그곳이다.


대성당에 비하면 자그마한 성당이지만 이곳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 화가 카라바조의 작품이 남아 있어 광장의 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그림의 제목은 '산타 루치아의 매장'이다.

그녀는 시라쿠사의 수호성인(https://brunch.co.kr/@cielbleu/136 참조)이다.

산타 루치아 알라 바디아 성당(가로등 뒤 흰색 건물이다) (좌)/ 성당 입구 카라바조의 그림전시 안내판(우)
Seppellimento di Santa Lucia, 1608, 카라바조, 시라쿠사

도망길에 오른 카라바조가 시실리의 항구 도시 시라쿠사 까지 도망 와서 이런 대작을 남겨 놓게 된 데는 마리오 민니티의 활약이 컸다.

카라바조가 1608~1609년에 시칠리아에 머무는 동안 카라바조를 보호해 주고 그가 '산타 루치아의 매장' 작품을 그릴 수 있도록 주선한 사람이 마리오 민니티다.


그의 모델 역할은 1600년을 기점으로  모델에서 카라바조의 동반자로 바뀐 듯하다. 1600년 이후에는 카라바조의 작품 속에 모델로 등장하는 마리오를 찾아볼 수 없지만 1606년  카라바조가 라누치오 토마소니(Ranuccio Tomassoni)라는 사람을 살해했을 때에 마리오도 연루되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니 말이다.


그는 살인 사건이 후 시실리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살인죄에 대한 사면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결혼한 마리오는 카라바조의 명암법과 장면 묘사등을 전수하여 시실리에 그의 이름을 딴 '미니티 학파'를 남기긴 했으나 화가로서의 성공보다는 시라쿠사의  존경받는 사업가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Miracolo della vedova di Naim, 마리오 민니티, 메시나 시립 박물

천재성이 무색할 정도로 불같은 성격으로 가는 곳마다 사건을 만들고 다닌 카라바조.

그런 그를 포용해 준 친구이자 조력자인 마리오 민니티.

결국 그들의 우정은 키케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한 시라쿠사에 명작을 남기게 되었다.

카라바조의 여러 작품에 남은 마리오 민니티는 카라바조 본인보다 오히려 더 많은 이들에게 낯익은 모습으로 남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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