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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Mar 16. 2019

8. 아니? 여기서 이 분들을 만날 줄이야!

   <시실리 세 번째 이야기: 성녀 아가사,루치아, 로잘리아>

 만큼 보이는 성인들의 상징(Attribute)


학창 시절 많이 부르던 '산타 루치아'란 나폴리 가곡이 있다. 가곡은 아름다운 나폴리를 노래하고 있지만 이 가곡에 나오는 '산타 루치아'는 나폴리의 아름다운 해안의 명칭이자 나폴리 수호신 인 시실리의 성녀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를 대표하는 네 명의 동정녀(평생 혼인하지 않고 하느님을 모시고 삶) 중 한 명인 성녀 아가사 역시 시실리 출신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세 유럽이 창궐하는 흑사병으로 공포에 떨고 있을 때 기적을 일으켜 흑사병으로부터 시실리를 구한 로잘리아 성녀도 있다.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라고는 하나 유독 많은 성녀가 이 곳 출신이라는 것을 알자 자연스레 혼잣말이 나왔다.

"아니? 여기서 이 분들을 만날 줄이야!"


그런데 서양 회화를 보면 박해를 받거나 순교한 성인(Saint)들이 그려진 작품들이 많다. 심한 박해를 받은 성인일수록 그림이 주는 충격이나 감동은 더 진하게 전해진다. 그림 속의 성인들은 각각 자신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상징(attribute)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상징이 어느 성인을 나타내는지를 알고 보면 그림 감상이 한결 흥미 있고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수월해진다.

성인들은 대부분 순교하거나 박해받은 탓에 섬뜩한 장면이 그려진 경우가 많은데, 상징을 몰랐을 때는 ‘왜 저런 끔찍한 장면을 그렸을까?’ 하고 의아했지만 성인들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제는 더 이상 잘린 가슴이나 쟁반 위에 뽑힌 두 눈을 들고 있는 모습의 주인공들을 보면서 갸우뚱거리지 말자.


시실리 세 번째 이야기는 작품 속에서만 보아 왔던 성인들을 시실리 현지에서 그들의 자취를 찾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카타니아의 동정녀 아가사 (Agatha of Sicily:231~251)


 

'아가사의 순교',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 1520, 피렌체 피티 궁


시실리에는 유럽 최대의 활화산으로 그리스 신화 속의 대장장이 헤파이토스의 대장간이 있다고 전해지는 에트나 화산이 있다. 에트나 근처에는 화산 폭발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아온 도시 카타니아가 있는데 동정녀 아가사는 바로 이 카타니아 출신의 성녀다.


서기 3세기 로마 지배하에 있던 카타니아 귀족 가문의 아름다운 처녀 아가사는 로마 총독의 구혼을 받으나 기독교에 대한 굳은 신앙심으로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동정녀로서의 삶을 살고자 했다.

그녀의 신념을 꺾기 위해 로마 총독은 갖은 회유와 협박을 했지만 그녀의 굳건한 믿음을 꺾지 못했다. 결국 그녀에게 갖은 고문을 행하게 되고 그녀의 가슴을 잘라내라는 모진 형벌을 내렸다.


그런 연유로 동정녀 아가사는 잘린 가슴을 쟁반에 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유럽 최대의 활화산  에트나

이런 가혹한 형벌에도 요지부동이었던 그녀는 결국 화형에 처한다는 선고를 받지만 그녀의 화형식은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카타니아 뒤에 우뚝 솟아 아직도 화산재를 내뿜고 있는 에트나 화산을 보면 우연일 것 같은 이런 자연현상 조차도 당에는 매우 큰 공포로 다가왔을 것 같다.


'성녀 아가사',1516, 조반니 카리아니,스코틀랜드 뮤지엄(상), '성녀 아가사를 치유하는 베드로와 천사',1614, 조반니 란프란코, 파르마 갤러리(하)


그녀가 투옥되어 있는 동안 베드로와 천사가 함께 나타나 그녀의 상처를 보살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 가운데 감옥에서 20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루치아, 아그네스, 세실리아 (https://brunch.co.kr/@cielbleu/41 참조)와 함께 기독교의 네 동정녀 순교자 중 한 사람이다.


카타니아의 두오모(상단 중앙이 아가사의 동상이다)
'아가사 축제'를 알리는 광고(옆 건물의 'A'는 '아가사'를 뜻한다)

카타니아에서는 아가사의 축일인 2월 5일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2월 1일부터 5일까지 그녀를 기리는 축제를 여는데 이 축제는 이탈리아에서 행해지는 종교 축제 중 가장 성대한 축제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시실리에는 아가사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전통 디저트가 있다. 여성의 가슴 모양으로 만들어진 카사텔(Cassatelle)인데 모르고 먹는다면 모를까 이야기를 알고 나면 선뜻 먹기가 좀 그렇다. 맛은 이야기와는 달리 엄청 달다.


그녀는 유방암 환우들의 수호성인이자 에트나 화산의 수호성인 이기도 하다.


축제기간의 아가사 모형과 카사텔 디저트


시라쿠사의 동정녀 루치아

(Saint Lucia of Syracusa:283-304)


'루치아 성녀의 매장',1608, 카라바조, 시라쿠사 산타 루치아 알라 바디아 성당


시실리에 그리스 인들이 최초로 세웠다는 도시 시라쿠사. 로마 시대 철학자 키케로는 시라쿠사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 도시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시라쿠사는 시실리를 대표하는 동정녀 루치아의 고향이다. 교인이 아닌 이들에게는 어쩌면 카라바조(Caravaggio)의 그림으로 먼저 알려진 성인 일 수도 있겠다.


시라쿠사 두오모

그녀는 시라쿠사의 부유한 로마인 집안의 딸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단 둘이 남게 되었다고 한다. 집안을 지켜줄 남자가 없자 어머니는 서둘러 그녀를 기독교인이 아닌 집안의 아들과 약혼을 시킨다. 그러나 신앙심 깊은 루치아는 이미 동정 서원(평생 혼인하지 않고 하느님을 모시고 삶)을 한 상태라 어머니께는 차마 말을 못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 소유의 값진 물건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아가사의 무덤에서 기도하는 루치아 모녀', 1410, 타코벨 델 피오레 , 페르모 시립 박물관


그러던 중 어머니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마에 시달리자 루치아는 실낱같은 희망의 소문을 듣게 된다.

50여 년 전 순교한 카타니아의 성녀 아가사 무덤에 기도하면 병이 났는다는 소문이었다. 카타니아의 아가사 무덤을 찾아가 기도하자 어머니의 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 후로 어머니도 그녀의 신앙심을 믿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루치아와 약혼한 로마 청년은 그녀가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계속 나누어 주자 루치아의 재산에 욕심이 난 그는 총독에게 일러 그녀를 곤경에 빠트리면 그녀가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을 멈추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루치아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총독은 그녀를 매음굴에 넣기도 하고(천사들이 그녀를 보호했다고 한다), 짐승에 묶는 형벌(그녀의 몸이 너무 무거워져 짐승이 그녀를 끌어낼 수 없었다고 한다)을 내리기도 하였으나 매번 기적 같은 일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화형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장작에 불이 붙질 않아 결국 화형도 못 시키게 되자 단도로 목을 찌르고 눈을 뺐다는 섬뜩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른 전설은 그녀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약혼자가 그녀의 눈이 아름답다고 하자 그녀는 자신을 놓아달라고 스스로 눈을 빼어 약혼자에게 주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두 가지 설이 모두 참혹하다.

 

그러나 그녀의 시신을 묻기 위해 그녀의 시신을 다시 보았을 때는 두 눈은 기적적으로 복원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바로 이 장면을 카르바조가 그려낸 것이다.

카르바조의 그림은 두오모가 있는 미네르바 광장의 성녀 루치아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미네르바 광장의 루치아 성당(가로등 뒤 건물이다)

그래서 루치아는 회화 속에 두 눈을 쟁반에 들고 있는 모습으로 주로 그려지나 가끔은 눈을 담은 쟁반과 함께 단도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도 그려진다.

사후에도 그녀는 편히 잠들지 못하고 아랍의 침략 시에는 콘스탄티노플로, 4차 십자군 때에는 베니스로 이장되는 험난한 여정을 거쳤다.

현재 시라쿠사에는 그녀의 시신 중 왼팔이 두오모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그녀의 축일은 12월 13일이다.

 

두오모 성당의 루치아 예배당(맨 아래 보관함 속에 그녀의 왼팔 뼈가 보관되어 있다)
 '루치아 성녀',1521, 도메니코 베카후미,시에나 국립미술관






흑사병의 수호 성녀(eris in peste patrona) 로잘리아

(Santa Rosalia:1130-1166)


'로잘리아 성녀', 피에트로 노벨리


시실리의 주도인 팔레르모에는 이 도시의 수호 성녀이자 중세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의 수호 성녀 로잘리아가 있다.

그녀는 샤를마뉴 대제의 후손이 되는 노르만 귀족 가문의 딸이었다고 한다. 로잘리아는 어느 날 성령의 부름으로 두 천사의 인도를 받아 팔레르모 근처에 있는(차로 30여분 걸리는 거리) 몬테 펠레그리노(Monte Pellegrino) 산의 동굴에서 기거하며 신앙생활을 하다 홀로 숨을 거둔 성녀다.

펠레그리노 산(괴테는 펠레그리노 산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곶(cape)이라고 했다)
펠레그리노 산 정상의 로잘리아 동상

그녀의 생애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많지 않으나 그녀가 사후에 보인 기적으로 많은 시실리 인들의 추앙을 받는 성녀다.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흑사병이 시실리에도 창궐하던 1624년, 성녀 로잘리아는 처음으로 흑사병에 걸린 여인 앞에 나타났다고 한다. 이어 사냥꾼 앞에도 나타난 로잘리아는 자신의 유골이 펠레그리노 산의 동굴에 있음을 알려주고 그로 하여금 자신의 유골을 찾도록 인도하였다.

로잘리아 성녀가 말한 대로 사냥꾼이 그녀의 유골을 들고 팔레르모 시내를 3바퀴 돌고 나니 거짓말처럼 흑사병이 멎었다는 것이다.

이 기적으로 로잘리아는 팔레르모의 수호 성녀이자 흑사병의 수호 성녀가 되었다고.

 

파리의 수호 성녀 쥬느비에브(https://brunch.co.kr/@cielbleu/56 참조)의 기적 일화와 매우 흡사하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이와 비슷한 기적 이야기가 많은 것을 보면 그만큼 당시 흑사병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로잘리아 특별전 포스터

그녀의 축일은 9월 4일로 팔레르모에서는 그녀의 축일을 기리는 화려한 행진과 행사로 들썩인다고 한다.


노르만 왕궁의 팔라티나 예배당(https://brunch.co.kr/@cielbleu/130 참조)을 가는 날 마침 로잘리아 성녀의 특별전이 노르만 왕궁에서 열리고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만난 로잘리아 성녀의 모습은 다른 성인들의 모습처럼 끔찍하게 고통받는 모습 대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보는 마음이 좋았다.

이탈리아 화가 피에트로 노벨리(Pietro Novelli)의 그림 속에 로잘리아는 검은 옷을 입은 흑사병의 수호 성녀로 묘사되어 있었다.



 '흑사병의 수호 성녀 로잘리아', 피에트로 노벨리(왼쪽 파란 옷의 천사가 들고 있는 'Eris in peste Patrona'가 "흑사병의 수호성인'이란 뜻이다.)

팔레르모의 시립 미술관에는 작자 미상의 '죽음의 승리'라는 대형 프레스코화가 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죽음 앞에 힘 없이 무너지는 이런 류의 그림을 서양 회화에서 어렵지 않게 보게 되는데 이 역시 중세 유럽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흑사병에 대한 공포감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무시무시한 흑사병이 중국에서 온 무역선을 타고 쥐에서 퍼진 것이라고 하니 잠시 생각이 복잡해진다.


인간에게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었다면 종교가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라고는 하지만  섬 하나에서 성녀가 3명이나 나온 것도 그들이 겪어온 파란만장한 역사의 결과가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본다.


'죽음의 승리',1450, 작자 미상, 팔레르모 시립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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