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el Bleu Feb 16. 2019

3. 시실리에는 마피아보다 이것!

<첫 번째 이야기: 황금 모자이크>


이탈리아 반도 끝. 장화의 앞쪽에 위치한 섬 시실리.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최초로 이 섬을 차지한 이래 로마제국의 지배를 거쳐 반달족과 비잔틴 제국, 이어 무슬림 제국, 바이킹, 노르만 제국을 거쳐 스페인과 부르봉 왕가의 지배하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중해 최대의 섬(이웃에 있는 사르데냐 섬과는 간발의 차이다)이다.

이 덕(?)에 지금은 그 어디서도 보기 힘든 다양한 문화유산을 보유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지중해 패권을 가지려면 시실리를 차지해야 하는 지리적 요건으로 당대를 호령하던 나라들의 다양한 문화들이 세워졌다가 사라진 그 자리엔 지금은 보석 같은 문화유산들이 남아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곳곳에 널려 있는 그리스 신전들과 수많은 기독교 유산, 비잔틴 문화의 흔적들은 보는 이들에게 순간순간 이 곳이 시실리라는 것을 잊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우리에게는 영화 '대부'의 배경으로 잘 알려져 있는 시실리는 제주도 13배에 달하는 상당히 큰 섬이다. 영화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였을까? 우리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이들이 시실리 하면 마피아를 먼저 떠 올리는 바람에 정작 시실리 본토에서는 '시실리에는 마피아가 없다.(No Mafia in Sicily)'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마피아 퇴치 운동 사인

'이야기 따라가는 퍼즐 여행'의 3번째 이야기는 시실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문화유산 가운데 '황금 모자이크'에서 시작한다.



현존하는 비잔틴 시대 최고의 모자이크 하면 6세기에 만들어진 이탈리아 북부의 라벤나(Ravenna)를 제일 먼저 떠 올린다.  비잔틴 시대의 많은 모자이크들이 성상파괴 운동(Iconoclasm)으로 훼손되었으나 라벤나의 모자이크가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으로 절묘하게 라벤나의 통치권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스탄불 소피아 성당의 훼손된 모자이크

라벤나는 서로마 제국의 수도였으나 476년 서로마가 멸망하자 이후 동고트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가 540년 비잔틴 제국이 다시 이 도시를 탈환하게 된다. 이 시기에 세워진 비탈레 성당(Basilica San Vitale:527-547년)은 아름다운 모자이크 벽화로 장식되었다. 그 후 8-9세기 비잔틴제국에서 성상 파괴 운동이 일어났을 때 라벤나는 비잔틴 제국이 아닌 롬바르디아 왕국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수난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라벤나의 대표 모자이크 벽화, 황제 유스티아누스 1세(상)와 황후 테오도라의 벽화(하)




그런데 라벤나의 모자이크에 버금가는 모자이크를 품고 있는 곳이 바로 시실리다.

그것도 세 군데 씩이나 말이다. 

시실리에는 12세기 노르만 지배하에서 만들어진 3곳의 황금 모자이크가 남아 있다. 금으로 장식된 이 모자이크들은 화려함과 정교함, 웅장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는 듯하다.

체팔루 대성당(Cefalù Cathedral), 시실리 주도 팔레르모(Palermo)에 있는 노르만 왕궁(Norman Palace)의 팔레티나 예배당(Cappella Palatina), 그리고 몬레알레 대성당(Monreale Cathedral)의 모자이크가 바로 그들인데 만들어진 연대순으로 체팔루 대성당의 모자이크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체팔루 대성당


체팔루 대성당

체팔루는 시실리의 주도 팔레르모의 동쪽으로 차로 1시간 정도 달려 도착하는 작은 항구 마을이다. 마을 뒤편으론 절벽이 위치하고 있어 성당이 간직하고 있는 모자이크만큼(?)이나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마을과 바다 전망이 유명한 곳이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촬영지라고 광고를 하지만 체팔루에서는 영화 중 해변가에서의 야간 상영 장면만 촬영했을 뿐 주인공 토토와 알프레도가 살던 마을은 시실리 내륙에 위치한 팔라쪼 아드리아노(Palazzo Adriano)라는 마을에서 촬영된 것이다.

그러나 체팔루는 이런저런 이야기 보다도 마을 중앙에 자리한 대성당 안의 황금 모자이크를 주목해 봐야 하는 곳이다. 물론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 문화유산이다.

유럽 대륙의 남쪽 이탈리아 반도의 끝자락까지 바이킹이 진출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놀라운데 거기다 바이킹 왕족인 노르만 왕족이 이렇듯 멋진 세계 유산까지 시실리에 남겼다는 것이 황금 모자이크를 찾아온 이유 중 하나일 듯싶다.

아랍(Moorish)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은 시실리의 첫 노르만 왕이었던 로지에 2세에 의해 1131년 공사를 시작하여 1240년 완공된 성당이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제단 위로 비잔틴 교회 장식의 특징인 'Christ Pantocrator(예수님을 우주의 통치자로 표현하는 비잔틴 전통 방식)'가 장식된 앱스(Apse:교회의 큰 반원형이나 다각형의 움푹 파인 곳)가 설치되어 있다. 이것은 로지에 왕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만든 것이라 한다.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웅장한 규모와 화려한 장식에 압도되는 분위기다. 우리를 굽어 보고 있는 예수님의 거대한 형상은 오른손으로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는 모습이고 왼손에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기록된 요한 복음서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내용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 , 8:12)이다. 그러나 설명을 듣고 그렇다 할 뿐이지 제단 밑에서 글귀는 잘 보이질 않는다.


세워진 연대가 가장 앞서기도 했지만 다른 두 곳의 모자이크를 보고 나면 이렇게 화려한 체팔루의 황금 모자이크도 그야말로 시작에 불과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체팔루 성당 내부와 '전능하신 예수님(Christ Pantocrator)'형상



팔레르모 노르만 왕궁의 팔라티나 예배당


노르만 왕궁의 팔라티나 예배당 입구

로지에 왕은 체팔루 성당의 모자이크를 보고 감탄한 나머지 그와 유사한 모자이크를 팔레르모에 있는 노르만 왕궁에 마련한 왕가의 예배당인 팔라티나 예배당(Cappella Palatina)에 다시 만들었다.

구조는 체팔루의 모자이크와 유사하지만 화려함과 정교함은 훨씬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체팔루 성당 공사가 시작된 다음 해에 짓기 시작한 예배당은 제단 위로 8명의 천사에 둘러싸인 '전능하신 예수님(Christ Pantocrator)' 형상이 있으며 예수님 아래에는 성모 마리아가 주요 인물로 그려져 있다. 모자이크와 제단 위의 코폴라는 1140년대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예배당 천장은 '무카르나스(Muqarnas)' 또는 '모카라베(Mocarabe)'라는 12세기에 유행한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마치 벌집 모양을 연결해 놓은 듯하다. 벌집 모양의 각 면마다 작은 그림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이집트 화가가 그린 것이라 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 등 구전해오는 이야기들이 그려져 있다고 하나 육안으로 확인은 어렵다.

그런데 이 천장의 모습이 많이 낯이 익다.

비슷한 시기, 12세기에 지어진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에서 보았던 바로 그 천장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단 느낌이다. 마치 레이스를 떠 놓은 것 같은 특이한 모습의 천장을 눈을 못 떼고 고개가 아파올 때까지 올려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바로 알람브라의 그 무카르나스 양식이 지금 내 눈 앞에, 시실리 이곳에도 멋들어지게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커다란 역사의 흐름 속의 한 편린이겠지만 이렇듯 숨어 있는 퍼즐이 맞춰졌을 때의 쾌감은 또다시 새로운 여행을 위하여 신발 끈을 고쳐 매게 하는 힘이 되곤 한다.


팔라티나 예배당의 무카르나스 천장 모습
알람브라 궁 아벤세라헤스 방(Sala de los Abencerrajes)의 무카르나스 천장

제단을 중심으로 양쪽 벽의 상부에는 구약의 이야기가 창세기에서 야곱의 생애에 이르기까지 모자이크 되어 있는데 이들은 로지에 2세의 후계자인 윌리엄 1세와 2세에 와서 완공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모자이크는 성당의 엡스나 돔(dome)에 주로 쓰였고 벽면에는 프레스코화를 그려 넣는 것이었으나 팔라티나 성당은 그 모든 것을 황금 모자이크로 치장을 해 놓은 것이다. 다른 성당들에 비해 크진 않지만 예배당 안을 온통 금박으로 치장한 그야말로 황금 모자이크의 절정을 보여주는 팔라티나 예배당이다.


팔라티나 예배당의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과 '전능하신 예수님(Christ Pantocrator)'형상



몬레알레 대성당

몬레알레 대성당 입구의 트리톤 분수


팔레르모에서 남서쪽으로 차로 30여분(팔레르모 시내에서 몬레알레 까지 시내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걸리는 팔레르모 근교의 산 정상에 건설된 대성당 안에도 또 하나의 황금 모자이크가 장식되어 있다.

몬레알레(Monreale)는 '왕들의 산'이란 뜻으로 원래는 그리스 신전이 세워져 있었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팔레르모 시내와 지중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 예부터 전망 좋은 높은 곳에는 신전이나 성당이 자리를 잡곤 했던 것처럼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몬레알레 대성당에서 내려다본 전망

이 성당은 1189년 로지에 왕이 죽을 때 완공되었다고 하니 세 개의 모자이크 중에는 가장 마지막 작품이 되는 셈이다.

제단의 모습은 앞의 두 곳과 거의 유사하나 양쪽 벽면을 온통 장식하고 있는 모자이크는 보는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정교하고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이곳의 모자이크가 이탈리아에서 가장 방대한 모자이크라는 설명이 이해가 간다.

양쪽 벽은 창세기부터 구약과 신약의 42개의 장면들과 그리스도가 행한 기적들의 이야기들로 빽빽이 그리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천장은 역시 이슬람의 전형적인 대칭 기법으로 멋지게 장식되어 있다. 보는 내내 뒷목을 잡고 올려다볼 수밖에 없으며 오페라글라스가 있다면 세세한 관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성당 내부의 모습과 아름다운 천장 장식
몬레알레 성당의 '전능하신 예수님(Christ Pantocrator)'형상

몬레알레 성당에는 또 하나 이번 여행의 서프라이즈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파리의 센 강에는 두 개의 유명한 섬이 있다.  왜 갑자기 이야기가 파리로 가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몬레알레에서 보게 된 이것이 이들 섬과 관련이 있어서다.

파리의 두 섬은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시테(Cite) 섬과 바로 옆의 생 루이 섬이다. 바로 이 섬의 이름의 주인공 생 루이 왕의 흔적이 이곳에 남아 있었다.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바로 이런 예상치 않았던 퍼즐이 맞춰질 때 여행을 하는 재미는 진가를 발휘한다.

이 성당에는 프랑스 왕으로서 유일하게 성인의 대열에 오른 생 루이 9세의 심장이 안치되어 있었다. 그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다가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숨을 거두는데 그의 용맹함을 높이사 그의 시체는 삶아져(?) 곳곳에 나누어졌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그중 심장이 바로 시실리의 몬레알레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을 줄이야. 듣기에 섬뜩한 이야기지만 이들은 심장을 따로 보관하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닌 듯하다. 파리의 '페르 라쉐즈 묘지(Père Lachaise Cemetery)'에 가면 쇼팡의 묘가 있지만 그의 심장은 고향인 폴란드의 바르샤바(Warsaw) 성당에 묻혀 있으니 말이다.

프랑스 생 루이 9세의 묘지

앙리 4세(https://brunch.co.kr/@cielbleu/9 참조)와 더불어 프랑스인들의 존경을 받는 루이 9세는 시테 섬에 파리의 명물인 생 샤펠(Sainte Chapelle)을 지은 인물이며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이 소장하고 있는 예수님의 면류관(https://brunch.co.kr/@cielbleu/26 참조)을 콘스탄티노플 왕에게서 빚 대신 프랑스로 가져온 왕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파리를 방문하면 꼭 들러야 하는 곳으로 되어 있는 몽마르트르의 샤크레쾨르 성당(https://brunch.co.kr/@cielbleu/28 참조) 입구에 서 있는 두 동상 중 왼편 동상의 주인공이다. 이런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로 생 루이가 프랑스 인들에게 어떤 왕인지 잘 알 수 있다. 성당 오른편 동상은 잔다르크다.


샤크레쾨르 성당의 면류관을 들고 있는 생 루이 왕(좌)과 잔다르크의 동상(우)

세 성당을 다 보고 나면 비슷한 양식에 어디가 어딘지 헷갈린다. 그래서 '전능하신 예수님(Christ Pantocrator)'의 형상만 비교해 보았다. 예수님의 모습 옆에 새겨진' IC XC'는 그리스어로 'Jesus Christ'를 의미한다. 혹자는 예수님의 머리 색과 턱수염의 색이 다른 것이 이상하다는 의견을 내는 이들도 있다는데 어떻게 생각할지는 각자의 몫이 아닐까 싶다.

왼편부터 체팔루 성당, 팔라티나 예배당, 몬레알레 성당의 'Christ Pantocrator'




매거진의 이전글 2.5촌 언니 엘리자베스 1세에게 참수당한 비운의 여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