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관에서 특이한 모습의 예수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예수님을 이렇게 그릴 수도 있구나 놀랍기도 하고 그림이 주는 인상이 너무 강렬했던지 아직도 나의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그림.
바로 브라만테의 '기둥에 묶인 예수님'이다.
기둥에 묶인 예수님, Donato Bramante, 1480, Brera
같은 주제로 그려진 예수님의 모습은 대부분 갖은 고문으로 처참하게 상처 입은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었는데 이렇게 근육질의 예수님 그림을 접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뉴욕 메트(Met) 뮤지엄에는 아래 그림과 같은 모습의 예수님도 있다.
브라만테의 그림과는 완전 다른 분위기의 예수님을 그렸으니 같은 주제를 놓고도 예술가의 표현법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하겠다.
안토넬로, 면류관을 쓴 예수님, 메트, 뉴욕
브라만테의 작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예수님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기에 각인이 되었다면 두 번째 작품은 그림 속 예수님의 절절함이 그대로 전달되어 가슴에 남은 그림이다. 같은 주제 그러나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다 보니 작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그림들이었다.
이렇게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예술가들의 천재적 능력이라면 그들의 재능을 감상하고 감탄하는 것은 우리 일반 관람자들의 몫이라 생각하니 재능이 없더라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시실리에 간다면 꼭 보고 싶었던 작품이 있었다.
같은 주제지만 전혀 다른 내용으로 그려진 독특한 그림을 보았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를 직접 작품을 보고 판단해 보고 싶어 마음속에 담아 놓았던 작품이다. 어찌 보면 시실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유적지들과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만큼이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그림일지도 모른다.
그 작품은 바로 시실리 출신의 작가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1430-1479)의 '수태고지'다.
'수태고지', 1476, 안토넬로, 팔레르모 미술관
안토넬로는 앞에서 보았던 뉴욕 메트의 절절한 예수님의 얼굴을 그려낸 바로 그 화가다. 시실리의 메시나 출신으로 유화 기법과 플랑드르 화풍의 섬세한 기법을 베네치아 파에 전수한 화가로 인정받고 있는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다.
그의 '수태고지'는 팔레르모의 미술관(Galleria Regionale Della Sicilia)에 소장되어 있는데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마침 안토넬로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 그의 다른 명작들까지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수태고지'를 대표작으로 만든 미술관의 포스터
미술관 내 안토넬로 특별 전시장 입구
일반적으로 '수태고지(Annunciation)'하면 어떤 그림이 떠오르는가?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임신할 것이란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바로 이런 형태의 그림들이 생각날 것이다.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프라 안젤리코도 모두 그렇게 그렸다.
'Annunciation', 1473, Fra Angelico, San Marco수도원, 피렌체
"Annuncition',1472, Leonardo da Vinci, 우피치, 피렌체
그런데 안토넬로가 다빈치나 프라 안젤리코와 비슷한 시기(1476년)에 그린 '수태고지'에는 가브리엘 천사도, 성령을 나타내는 비둘기도, 성모를 나타내는 흰 백합도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다.
오로지 엄청난 메시지를 전달받은 한 여인의 모습만이 그려져 있으니 기존의 '수태고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그림이다.지금까지 이런 '수태고지'는 없었다.
르네상스가 인간 중심의 정신을 찾고자 하는 큰 흐름이라 한다 해도 성령을 전하는 장면인 '수태고지'에 천사도, 성령도 더 이상 주인공으로 자리하지 못하고 오직 성령을 받아들이는 인간에게만 모든 초점을 맞추었으니 얼마나 특별한 '수태고지'인가.
이 그림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수태고지' 그 이상의 인간 중심의 너무도 인간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굉장한 작품이란 느낌에 처음 그의 작품을 사진으로 보았을 때 빨리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찬찬히 그림을 감상하면서 책장을 넘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다시 되돌아 넘겨 보기도 힘들었던 작품이다. 그만큼 큰 임팩트를 준 작품이었다. 그래서 꼭 한 번은 실제로 그림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특별전시장의 '수태고지'
먼 길을 달려온 나와 마주한 작품 속의 마돈나는 생각보다는 그다지 크지 않은 액자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 바로 앞에서 마주한 마돈나는 처음 사진으로 보았을 때 느꼈던 생소하고 심쿵했던 느낌보다는 친근함을 넘어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고 반겨주는 듯 한 느낌마저 든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아 왔던 것처럼.
개인차가 있으니 이 그림을 보고 수태고지임을 알아차리는 이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이들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제목을 보기 전에는 다른 건 몰라도 수태고지는 내 머릿속에 전혀 없었다. 가브리엘 천사도 없고 오로지 한 여인만이 그려진 작품이라 중세 시실리 여인의 초상화가 아닐까 했다.
'마돈나'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파란 겉 옷에 빨간 옷. 성모 마리아를 나타내는 고유한 의복 색상이니까 말이다.
그림 앞에 서긴 했지만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볼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 여인의 묘한 표정은 종잡을 수가 없다.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성령으로 임신할 것이라는 말을 들은 처녀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천사의 메시지를 받아들였을까? 생각을 해보면 이 작품 속의 여인은 엄청난 메시지를 전달받고 표정 하나로 그 순간 교차하는 많은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외모부터 우리가 기존에 보아오던 성모 마리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스치는 것 같기도 하고 눈가는 깊은 상념에 잠겼는지 아니면 아무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인지 현실 너머의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다.
옷깃을 여미면서 내민 오른손은 긍정의 뜻인지 부정의 뜻인지 이 또한 보는 이의 몫이다.(일반적으로 오른쪽은 긍정, 왼쪽은 부정의 뜻으로 해석한다.)
역시 안토넬로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르네상스 화가이며 세세한 감정 표현의 대가란 그에 대한 평가에 나도 한 표를 던진다.
그의 독특한 '수태고지'는 최근의 작품이라면 모를까 500여 년 전의 작품이라 보기에는 매우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란 생각이다.
일본 관광객들이 단체로 몰려와 앞을 가로막아 설 때까지 물끄러미 작품을 응시하며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지금 마주 하고 있는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것은 오로지 보는 이의 몫이려니 하면서 나름대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원 없이 그녀를 보고 또 보다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브라만테의 작품이 독특한 예수님의 모습으로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안토넬로의 수태고지 역시 특별한 마돈나로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A4 용지보다 조금 큰, 그다지 크지도 않은 이 작품은 이렇게 보는 이들의 가슴을 심쿵하게 하면서 팔레르모 미술관을, 시실리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안토넬로 특별전 포스터가 걸린 미술관 입구
안토넬로 특별전에서 만난 그의 걸작들
'어느 남자의 초상',1470년, Museo Mandralisca, Cefalu
‘Polittico di San Gregorio’ ,1472-1473, 우피치(2030년까지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