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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Apr 15. 2019

10. 아름다운 그림, 슬픈 이야기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어느 시대든 그 시대를 풍미하는 사랑이야기가 있다.

이야기의 결말이 비극적일수록 이야기를 전해 듣는 이들의 가슴에는 더욱 큰 여운으로 남겨지곤 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하면 문학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서양 회화의 단골 커플은 따로 있는 듯하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가 그들이다. '누구지?'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루브르의 인기 작품 중 하나인 다비드의 대작 '나폴레옹의 대관식' (실제로 루브르에서 2번째로 큰 작품이다. 그러면 제일 큰 작품은?:https://brunch.co.kr/@cielbleu/19 참조)이 전시된 방에 같이 걸려 있는 아리 쉐퍼(Ary Scheffer)의 작품이 있다. 바로 이 그림이다.


'연옥의 프란체스카와 파올로',1854, 아리 쉐퍼, 루브르


그림 오른쪽에 빨간 옷을 입은 이는  단테다. 그 옆은 로마의 시성으로 불리는 베르길리우스(Virgilius)다.

쉐퍼가 그린 이 장면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의 한 장면이다. 욕정을 참지 못한 이들의 영혼이 끝없는 회오리바람 속에서 형벌을 받고 있는 곳으로 밝은 조명 아래 강조되어 있는 나신의 남녀가 바로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다. 단테의 신곡 이후로 이 커플의 이야기는 회화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인기 있는 주제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내쇼날 갤러리(Scottish National Gallery)에는 윌리엄 다이스(William Dyce)가 그린 똑같은 제목의 그림이 있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1837, 윌리엄 다이스,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


같은 주인공을 다룬 작품이나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하나는 지옥에서 영겁의 세월을 떠도는 벌을 받고 있는 영혼의 모습으로, 다른 작품에서는 아름다운 별 밤 아래서 사랑을 나누는 다정한 연인의 모습으로 그려졌으니 말이다. 우선 그들이 누구이며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가를 알아야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미 짐작한 분들도 있겠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13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다.

라벤나(Ravenna)와 리미니(Rimini)에 살던 두 남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다.

프란체스카는 라벤나 영주의 딸이고 파올로는 리미니 영주의 셋째 아들이었다. 두 집안은 원래 앙숙이었는데 전쟁을 피하고 집안의 장래를 위해 정략결혼을 하기로 했다.

프란체스카는 리미니 집안의 맏아들과 혼인하기로 하였는데 실은 맏아들은 다리를 저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다. 신부가 거절할 것이 걱정된 신랑 집에서 절름발이 형 대신 잘 생긴 셋째 아들을 보냈던 것이다. 셋째 파올로에게 한눈에 반한 프란체스카는 첫날밤을 지냈는데 다음 날 보니 신랑은 파올로가 아닌 맏아들이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형의 아내가 된 프란체스카는 전쟁으로 자주 집을 비우는 남편 대신 시동생과 사랑을 나누게 되었고 그 사실을 눈치챈 남편이 그들의 밀회 현장을 덮쳐 둘을 살해했다는 이야기다.


윌리엄 다이스의 그림도 처음 보았을 때는 분위기 좋은 별밤 아래 사랑을 나누는 연인의 그림으로 보여 아름답구나 하고 느낄지 모르나 그림 왼편에 살짝 그려진 손을 보면 이들에게 곧 닥칠 커다란 불행이 슬며시 담을 넘고 있는 것 같이 보여 순간 섬뜩하게 느껴진다. 원래 다이스의 그림에는 분노에 찬 남편이 왼쪽에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림 원본이 훼손되어 훼손된 부분을 잘라내다 보니 지금의 모습으로 남았다고.

그런데 손가락만 남은 지금의 모습이 오히려 더 오싹함을 주는 것 같다. 뭔가 무시무시한 것이 다가오는 느낌, 그러나 정체가 확실히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무섭지 않던가?


그런가 하면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대가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도 이 사건의 현장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 1819, 앵그르,앙제(Angers),Musee des Beaux-Arts   


어떤 이들은 앵그르 그림  파올로의 무릎 꿇은 자세가 중세 귀부인들에게 사랑을 맹세하던 기사들의 모습과 닮았다 하여 이 그림이 '투르바두르'(Troubadour:https://brunch.co.kr/@cielbleu/75 참조)적인 표현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앵그르와 다이스의 그림은 파올로의 적극적인 공세에 다소곳한 모습으로 싫지 않은 사랑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프란체스카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아리 쉐퍼 그림 속의 프란체스카는 파올로보다도 더 능동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이다.

이 작품들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것을 감안한다면 쉐퍼의 그림은 상당히 시대를 앞서가고 있는 듯하다. 쉐퍼는 쇼팡의 연인이자 남장 여류 시인으로 유명했던 조르쥬 상드(George Sand:https://brunch.co.kr/@cielbleu/82 참조)의 절친이기도 한데 그녀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 잠시 생각해 본다. 작품 속에 프란체스카가 펼치고 있는 책은 원탁의 기사 랜슬롯과 왕비 쥬느비에브의 사랑이야기 책이라고 한다.


이 주제를 쉐퍼와 같은 관점에서 다룬 대가가 한 명 더 있다. 바로 로댕(Auguste Rodin)이다. 로댕 박물관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키스(Le Baiser)'가 바로 그 작품이다.

'키스',1882, 로댕, 파리 로댕 박물관

로댕의 '키스'는 원제가 '프란체스카'로 바로 이 연인을 모델로 한 것이다. 그는 그의 역작 '지옥의 문(The Gates of Hell)'을 만들면서 이 모습의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를 부조로 만들었으나 지옥에 표현되어 있는 다른 부조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후에 띠어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지옥의 문'에는 다른 모습의 '프란체스카와 파올로'가 문의 오른쪽 하단에 새겨져 있다.

'지옥의 문'에 남은 두 연인

그런데 '키스' 작품을 자세히 보면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하다. 그것을 보고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하는 연인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닿았다.

예술 작품 해석을 보다 보면 어떤 경우에는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더구나 해석을 한 사람이  분야의 전문가일 경우에는 내 의견과 많이 다르더라도 그런 건가 보다 하고 따라가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예술 작품을 보고 감상하는 것은 오롯이 보는 이의 몫이 아닐까?

이제 이 연인들에 얽힌 이야기까지 알았으니 미술관에서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이름이 보이면 그림이 갑자기 친근(?)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생각보다 자주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만나게 되어 반가울 수도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면서 숨어 있는 슬픈 사랑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면 이런 게 바로 미술관 관람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로댕 박물관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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