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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Apr 24. 2019

11. 제우스! 그 변신의 끝은 어디?

<그림이 된 신화의 주인공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있는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오스트리아 합스부르그 왕가의 소장품을 보관하고 있는 이 박물관은 소장품의 면모를 보면 그야말로 입이 안 다물어진다. 소장품의 가치는 세계 1,2위를 달린다고 하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명작들의 보고다.

 

미술사 박물관의 화려한 입구

이 박물관은 1891년 프란츠 조셉 1세에 의해 개관되었는데 그는 유럽의 왕비 중 자칭 타칭 가장 아름다웠던 왕비로, 그러나 비극적 종말로 생을 마감한 왕비 씨씨(Sisi:Empress Elisabeth of Austria:1837-1898)의 남편이다.

30세의 씨씨

언니의 맞선 자리에 따라 나왔던 씨씨에게 조셉 1세가 첫눈에 반하게 되자 언니를 제치고 오스트리아 왕비가 되지만 시어머니와의 충돌로 그녀는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가 결국 무정부주의자(anarchist)의 칼에 찔려 사망하였으니 말이다. 그녀는 엄격한 몸매 관리로 허리 20인치를 평생 유지했다는 믿기 어려운(?) 뒷 이야기도 전해진다.

 

빈 미술사 박물관에는 피터 브루겔(Pieter Brueghel)의 '바벨탑'을 비롯 '겨울 사냥꾼'등 일일이 거론하기엔 여백이 모자랄 귀한 소장품들이 즐비하지만 오늘의 이야기는 그중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 코레지오(Antonio da Correggio:1489-1534)가 그린 '제우스와 이오'의 그림을 중심으로 변신의 귀재 제우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들로 시작한다.


제우스의 바람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수없이 많다.

제우스라는 그리스 신화 최고의 신이라는 주제도 그렇지만 상대를 유혹하기 위한 그의 다양한 변신술이 예술 작품의 주제로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것 같다.


황금비에서 구름, 독수리, 황소, 백조 등 각양각색으로 변신하여 목적을 이루는 그의 모습을 담은 작품 중 코레지오의 '제우스와 이오'작품은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주제 말고 표현 기법이 말이다.

코레지오는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로 특히 그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명암법으로 명암의 강렬한 대조를 사용하는 기법)'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기법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카라바죠, 그리고 후에 렘브란트에까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우스와 이오' 이 작품도 나신인 이오의 하얀 몸과 검은 구름의 제우스가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제우스와 이오', 1532,코레지오, 빈 미술사 박물관


구름에 나신으로 안겨 있는 묘한 분위기의 주인공들인 제우스와 이오에 얽힌 신화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님프 이오에게 반한 제우스는 부인 헤라의 의심을 피해 구름으로 변신하여 이오를 유혹하려 하지만 헤라에게 들키게 되자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켜 흑해를 건너 지금의 코카서스 지역으로 피신을 시킨다.

그러나 헤라가 누군가?

그녀의 끈질긴 추적으로 다시 이집트까지 도망 오게 된 이오는 이곳에서 비로소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제우스의 아이를 낳게 된다고 신화는 전한다. 그래서 이오를 이집트의 위대한 여신 이시스(Isis:https://brunch.co.kr/@cielbleu/94 참조)로 추정하기도 한다.

제우스가 변신시킨 암소가 수상했던 헤라는 눈이 100개 달린 거인 아르고스로 하여금 24시간 암소를 감시하도록 했다. 그리스 판 CCTV인 셈이다.

그러나 제우스는 또 누군가?

질세라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보내 아르고스를 잠재우게 하고 그 사이 이오를 탈출시킨다. 이때 암소 이오가 건너간 바다가 바로 이스탄불에 있는 오늘의 보스포러스 해협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보스포러스(Bosporus), 그 뜻도 '소가 지나간 길'이라니 이오가 다녀가긴 했나 보다.

보스포러스 해협

얼굴의 형태가 보일 듯 말 듯 구름으로 변신한 제우스가 부드럽게 이오를 끌어안고 있는 장면 묘사는 아무 설명이 필요치 않다. 암소라든가 눈이 백개 달린 거인이 그려진 그림들보다 모든 걸 배제하고 주인공에 집중한 코레지오의 그림은 신화 속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다 확실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 바로 옆에는 제우스가 미소년 가뉘메데스를 납치하는 코레지오의 다른 그림을 전시해 놓고 있어 보는 재미가 두 배가 된다.

이번에 제우스의 변신은 독수리다. 독수리가 그의 상징이기는 하나 눈독을 들인 대상이 어린 미소년이라니 그림을 보는데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신화나 고대 그리스 인들의 자취를 쫓다 보면 미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그들의 미의 기준이 그랬던 것이다.

빈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코레지오의 작품들


처녀, 유부녀를 가리지 않고 유혹을 하던 제우스는 트로이 왕의 아들이었던 미소년 가뉘메데스(Ganymedes)까지 넘 보았던 것인데 도대체 제우스의 바람의 끝은 어딘가?


코레지오는 '이오 그림'과 함께 제우스 신화에 관한 그림을 3편 더 그렸다고 한다.

빈 미술사 박물관의 이오와 가뉘메데스를 주제로 한 그림과  더불어 제우스가 황금비로 변신하여 유혹한 다나에, 그렇다 그 유명한 다나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한 명의 여인 레다의 그림이다. 레다의 그림에서 제우스의 변신은 백조다. 

코레지오의 '다나에' 그림은 이오 그림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현재는 로마의 보석 같은 미술관 '보르게제(Galleria Borghese)'가 소장하고 있다.

'레다' 그림은 베를린의 게멜데 갤러리(Gemäldegalerie)에 소장되어 있다.

'다나에',1531,코레지오,보르게제,로마
'레다',1532,코레지오,게멜데갤러리,베를린



다나에와 레다의 신화 이야기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 들이다. 그들의 사랑(?)으로 태어난 이들이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제우스와 다나에는 페르세우스라는 영웅을 낳게 되는데 그는 메두사의 머리를 자르고(https://brunch.co.kr/@cielbleu/138 참조) 바다 괴물의 제물로 받쳐진 안드로메다를 구한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다.

주로 작품 속에는 메두사의 머리를 자랑스럽게 들고 있는 장수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루브르에는 제우스와 다나에의 이야기를 담은 기원전 5세기경에 만들어진 그리스 시대 토기가 전시되어 있는데 무려 2,500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클림트의 특별한 터치로 그려진 다나에를 비교 감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피렌체 로지아 데이 란치(Loggia dei Lanzi)에 전시된 페르세우스 동상
루브르에 전시되어 있는 기원전 5세기에 그려진 다나에(좌) ,'다나에',1907,클림트,레오폴드 뮤지엄, 빈

그런가 하면 백조로 변신하여 유혹한 레다는 알(?) 두 개를 나았다고 전해진다. 스파르타 왕비였던 레다는 같은 날 밤에 제우스와 그리고 남편과도 동침을 했기 때문이라고.

그중 알 하나에서는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되었던 최고의 미인 헬레네와 여자아이(이 아이는 후에 트로이 전쟁영웅 아가멤논의 아내가 된다)가, 다른 알에서는 아버지가 다른(?) 쌍둥이 남자아이 카스토르와 폴룩수가 태어났다. 그들은 제우스의 아들들이라는 뜻의 디오스쿠로이(Dioskouroi)라고 불리기도 했다.

물론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지만 신화가 현실적일 수도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 들어 두자.


로마 캄피돌리오 광장 입구의 디오스쿠로이 동상

제우스와 레다를 그린 작품 중 개인적으로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기억에 남는다. 비록 그의 원작을 모방한 복사본(원작은 소실되었다고 한다.)이긴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작품임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 답게 그는 레다를 근육질의 여인의 몸으로 표현했다. 미켈란젤로의 그림 속의 백조는 특이한(?) 취향을 갖은 백조인 셈이다. 코레지오 그림 속의 여인 레다와는 매우 다른 분위기의 여인의 모습. 뭐든 특별해야 오래 기억되는 법이다.


'백조와 레다',1520, 미켈란젤로, 내쇼날 갤러리, 런던(복사본)


미술관에 가면  만나게 되는 신화  주인공들.

알고 보면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지루 틈이 없다. 그림 속의 조그만 사물들 마저 그저 그려진 것이 아니라 의도한 바가 있으며, 같은 주제를 다양한 예술가들이 자기만의 방법으로 표현한 것을 손가락 모양 하나까지 신경 써서 보아준다면 미술관은 더 이상 조용한 장소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림들이 서로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찬 미술관은 상상만 해도 흥미진진하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쩌면 그리스 최고의 신 제우스와 몇 마디 대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런 신나는 상상은 순전히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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