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이 분포한 지역이 넓어 관람코스가 몇 가지로 나뉘어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지역의 신전군이라 표현하고 싶은 셀리눈테다.
기원전 5세기경 번창했으나 바로 바다 건너에 있는 카르타고의 침략도 많았던 곳이라 기원전 3세기경부터 버려진 도시였다고 한다. 우리의 고분군처럼 많은 신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러나 현재는 온전한 신전보다는 돌무덤들이 더 많다. 알려진 신전만 8개라 하고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뉘어 있어 한 곳을 관람 한 뒤에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성수기에는 관람용 미니 기차를 운영하고 있었다. 한 여름에는 이 넓은 지역을 걸어 다닌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듯하다.
미니열차 광고판
셀리눈테는 동서남북으로 구분하여 남쪽 바닷가에 아크로폴리스가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에 무려 5개의 신전이 있다. 동쪽에 3개의 신전이 있고 북쪽과 서쪽은 성소와 네크로폴리스가 있다.
유적지의 동쪽부터 보라고 매표소 직원이 안내한다.
입구를 통과하니 탁 트인 평지가 나타나고 저 멀리서 제일 먼저 우리를 맞아 준 것은 역시 헤라 신전이다. 수 천 년 전에 세워진 건물 이름으로 부르기엔 좀 어색하게 '템플 E'로 불리는 헤라 신전은 셀리눈테의 동쪽 지역에 있는 신전 중 가장 마지막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그래서 인가? 보존 상태는 제일 양호했다. 신전도 많고 누구를 모시는 신전인지 확실치 않다 보니 알파벳으로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입구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헤라 신전
여기서도 우리는 헤라를 독대한다.
지금 헤라는 잠시 출타 중인 듯하다. 고요한 수천 년 전 신전에는 적막감마저 든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조차 없었다면 시공간이 잠시 멎었다고 느낄 것 같았다.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도리아식의 헤라 신전. 그 옛날 이곳을 호시침침 노리던 카르타고의 침략으로부터 이 땅을 지켜달라는 기도를 얼마나 들었을까? 그러다 지친 신은 이 땅을 포기했는지도...
신전 앞바다 건너가 바로 카르타고 땅이었다.
헤라 신전 내부
그런데 헤라 신전을 관람하던 중 재미있는 장면 포착.
두 마리의 개가 여기가 자기 집인양 편안한 자세로 오후의 햇볕을 즐기는 모습이다. 시실리에는 어딜 가나 개가 참 많다. 시실리의 개들은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피하지 않고 따라다니기 일수다. 아마도 먹을 것을 기대하고 따라다니는 것 같은데 아무 반응을 하지 않으면 얼마큼 따라오다가 포기하고 자기 가던 길로 가버린다. 사람 사는 곳의 개는 그렇다 치더라도 신전에 저렇게 늘어져 있는 개는 뭔가 좀 다른 느낌을 준다. 검은 개와 흰 개가 사이좋게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검은 개는 제우스, 흰 개는 헤라 같다' 했더니 같이 온 일행이 너무 재밌다고 '좋아요!' 해준다. 뭐 다 보기 나름 아니겠는가?
유적지에서 만나는 돌무덤 사이에 뿌리를 내린 조그만 식물들을 보노라면 묘한 반가움과 그 생명력에 감탄하곤 한다. 이곳에서도 역시 그런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제우스와 헤라 견공들(좌), 수 천년전의 신전에 뿌리 내린 이름모를 식물
헤라 신전 주변으로는 세워져 있는 기둥들을 빼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돌무덤들이 널려 있다. 그러나 형체는 없어도 돌들의 크기를 보면 이곳에 세워져 있던 신전의 크기를 상상해 볼 수 있다. 헤라 신전 옆 '템플 G'로 불리는 신전은 지금은 돌무덤만 있지만 그리스 통치하에 세워진 신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이었다고 한다. 가로, 세로가 각각 113,54미터에 높이가 30미터였다는 표지판이 봐달라는 듯 서 있다. 돌무덤 가운데 홀로 외로이 서 있는 기둥은 19세기 초에 다시 조립하여 세운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인다. 제우스나 아폴로 신전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는데 나는 제우스에 한 표다. 헤라 신전 옆이고 크기도 가장 컸다고 하니 제우스 말고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해서다.
제우스 신전으로 추측되는 '템플G'의 돌무덤과 거대한 주춧돌들
'템플 G'에서 바라본 헤라 신전의 모습이 세월 무상의 흔적 같아 보이기도 하고 미처 꽃 피우지 못한 거대한 문화의 하소연을 하고 있는 거 같기도 하여 그 느낌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단어가 잘 떠오르질 않는다.
'템플 G'에서 바라본 헤라 신전의 모습
시야를 조금 돌리니 저 멀리 남쪽 아크로폴리스 지역에 보이는 신전이 자꾸 오라고 부르는 듯하다. 위치상으로는 헤라 신전보다 더 좋아 보이는 신전이다.
아폴로 신전이다. 셀리눈테에 있는 신전 중 기원전 550년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신전이다. 걸어갈 수도 있는 거리 같은데 매표소 직원이 차를 가지고 이동하는 게 좋을 거라고 알려 준다.
바다를 배경으로 멋진(?) 자태를 보이는 아폴로 신전
그의 조언대로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재미있는 부조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혀를 내민 코믹한 느낌의 고르곤 상이다. 부조의 장면은 목이 잘리는 급박한 상황이라 전혀 코믹한 상황이 아닌데 왜 이런 친숙한 느낌을 받는 걸까?
셀리눈테의 페가수스를 품고 있는 고르곤 부조(좌)/'메두사의 머리',1617,루벤스,Kunsthistorisches Museum,비엔나(우)
고르곤은 우리에겐 메두사로 알려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다. 머리카락이 모두 독사인 메두사는 보는 이들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무서운 괴물로 알려져 있다. 많은 화가들이 이런 모습의 메두사를 보기에도 처참할 정도로 흉측하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메두사는 원래는 머릿결이 유난히 아름다운 처녀였다고 한다. 설에 의하면 자신의 머릿결을 자랑하다가 아테나 여신의 저주를 샀다는 설도 있고(그런데 여신이 그것도 아테나가 그런 정도로 질투를 할까 싶은 사견이지만 그런데 신화 속의 신들은 가끔 그런다) 다른 설은 포세이돈이 메두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테나 여신의 신전에서 사랑을 나누었는데 포세이돈에 관심이 있던 아테나 여신이 이에 격분하여 그녀에게 저주를 하여 머리카락이 독사로 변하고 흉측한 괴물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는 설이다(이건 좀 설득력이 있다).
인생은 아이러니라고 하필 제우스와 다나에의 아들인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처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자 메두사를 싫어했던 아테나 여신은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처치할 수 있도록 무엇이든 비추는 자신의 청동 방패 아이기스(aegis)와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의 쓰면 안 보이는 투명 투구 퀴네에(Kynee), 헤라 여신의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주머니 키비시스(Kibisis), 그리고 헤르메스의 하늘을 나는 샌들 탈라리아(talaria)를 모두 구해준다. 꼭 목을 베어 오라고.
'다나에',1553, Titian,에르미타쥬 박물관(좌), '메두사의 목을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1801,안토니오 카노바,바티칸 박물관
아테나의 방패의 메두사(좌)/시실리 문장 트리나크리아의 메두사(우)
결국 페르세우스는 청동 방패로 메두사를 비추고(메두사를 직접 보면 돌이 되니까) 투명 투구로 자신을 감춘 채로 메두사의 목을 벤다. 그때 메두사의 피에서 나온 것이 하늘을 나는 명마 페가수스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아테나의 방패에 달아 무적의 방패로 만들어 버린다. 그림을 보다 보면 명장들의 방패에 메두사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르곤의 빨갛게 내민 혀는 죽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기원전 4세기경의 고르곤 상과 우리의 도깨비문양 기와
후에는 오히려 메두사의 이런 점을 액운을 막는 일종의 부적처럼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흉측한 모습은 사라지고 조금은 인간과 친숙한 모습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시실리를 대표하는 문장에도 발이 세 개 달린 메두사(트리나크리아:Trinakria)가 그려져 있다. 시실리에서는 주로 아폴로 신전의 지붕 밑 프리즈(Frieze)의 메토프(metope)에서 고르곤 상을 볼 수 있다. 그림 속에서 너무나 흉한 모습만 보다가 도깨비스러우면서도 혐오스럽지 않은 모습을 보니 우리네 민속화 속에 남아 있는 무섭지 않은 도깨비가 떠오른다. 시실리의 그리스 유적지에서 우리의 도깨비를 떠 올리다니 여행이 주는 재미가 이런 게 아닐까?
'템플 C'로 불리는 아폴로 신전
해를 등지고 있는 아폴로 신전
아폴로 신전의 상상도(좌)와 상상도의 'B' 메토프에 조각된 고르곤 부조(우)
아폴로 신전에서 바라본 헤라 신전과 기둥만 보이는 제우스 신전
셀리눈테 앞바다는 그야말로 지중해의 진수를 보여주는 멋진 바다였다.
눈으로도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물 색갈이 바다의 깊이를 가늠하게 한다. 2000여 년 전에는 무장한 카르타고 인들이 저 바다를 요란하게 건너왔을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실리 사람들의 마음에는 멋진 바다 풍광은 넣어둘 여유가 없지 않았을까. 오히려 바다 색갈이 알려주는 바다의 깊이를 가늠하는 마음이 앞섰을 수도. 그 누군가에게는 생과 사를 가르는 간절한 기도가 올려지던 곳이었을 이 자리에서 평온한 바다와 아름다운 풍광, 그리고 수천 년 그들의 자취를 음미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텅 빈 신전 터에서 지금 눈앞에 펼쳐진 바다의 모습은 격랑의 시대는 모른다는 듯 평온하기만 하다.
그림 같은 셀리눈테 앞바다
신전을 둘러보며 잠시 신화의 이야기를 되짚어 보다 보니 내가 있는 곳이 이탈리아의 시실리라는 것을 잠시 잊게 된다. 그리스의 델포이쯤에서 신전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실리 최고의 그리스 유적지 아그리젠토로 향한다. 그곳에선 또 어떤 모습의 신전을 보게 될는지 벌써 마음이 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