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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Mar 13. 2024

63. '여성의 날'이면 생각나는 이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오늘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방송국 앵커의 멘트를 들으면 늘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여성의 날'이면 생각 나는 여류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1593-1652).


이름이 조금 어렵다.

그녀의 이름은 익숙지 않아도 이 그림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을 것이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Judith Beheading Holofernes)', 1614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우피치, 피렌체


이 그림을 그린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16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여류 화가다.


두 여인에게 공격받고 있는 안쓰러운 상황의 남자는 앗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다.


건장한 장군이 어쩌다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참수되기 직전의 끔찍한 상황으로 그려져 있는지 사연이 궁금하다.


그림의 주제는 구약 외경 유딧서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다.


앗시리아의 장군인 홀로페르네스는 유대인 도시 베튤리아(Bethulia)를 포위하고 그들의 항복을 기다리고 있던 중 베튤리아의 유대인 과부 유디트의 유혹에 빠져 이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드라마틱한 주제 때문에 많은 화가들이 화폭에 이 처참한 광경을 다양한 모습으로 담아냈다.


그림의 뒷 이야기는 참수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유디트와 그녀의 하녀는 주머니에 담아 베튤리아로 유유히 돌아갔고 전쟁의 결과는 장군의 죽음으로 오합지졸이 된 앗시리아 군에 유대인들이 승리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림 속 유디트는 살인에 대한 죄책감 같은 감정은 일도 보이지 않고 기필코 목을 베겠다는 굳은 의지만이 그녀의 표정과 칼을 움켜쥔 자세에서 역력히 보이고 있다.


건장한 남자의 목을 치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여인을 그린 화가가 왜 '세계 여성의 날'이면 떠오르는 인물이냐고 고개가 갸우뚱 할 수도 있다.


이 그림의 강건한 체격의 여인은 아르테미시아 자신을 그리고 있고 장군의 목을 힘 있게 치고 있는 장면은 작가 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한 응징의 심정을 온전히 녹여낸 그림이란 평가다.


이쯤 되면 대충 감이 올 것이다. 당신의 촉은 빗나가지 않았다.


맞다. 


이 그림의 작가 아르테미시아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동료에게 성폭행당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 왕실의 궁정화가로도 활동했던 아버지를 닮아 아르테미시아도 일찌감치 화가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았는데 그만 아버지의 동료에게 미술 지도를 부탁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녀의 성폭행 사건은 7개월 여의 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피의자에게는 로마에서의 추방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형이 내려졌을 뿐 오히려 피해자인 그녀가 재판 과정 겪은 고초가 더 컸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는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이 사건으로 본의 아니게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그녀는 재판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사랑도 없는 결혼을 하게 되고 지울 수 없는 상처의 아픔은 오롯이 자신의 몫으로 남았다.


그러나 다행히 그녀의 탁월한 능력은 세간의 부정적인 관심을 뛰어넘어서 당시 여성 화가에게는 열악한 환경이었음에도 메디치 가의 후원을 받는 등 성공 가도를 걷게 된다. 

가슴 아픈 사건의 결말 치고는 그나마 아르테미시아의 인생사가 고무적이다. 


그러나 그녀가 꿋꿋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마음속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갔을 쉽지 않은 과정이 그녀의 작품 안에 표현되어 있어 이점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수산나와 두 장로', 1610,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Schloss Weibenstein

이 그림은 아르테미시아가 1610년 그린 '수산나와 두 장로'라는 그림으로 성추행을 하려는 두 남자를 피하는 여인의 모습(출처:구약 다니엘서)을 그리고 있다. 

화가 자신이 같은 경험을 했을 때 즈음 작품이다.


'수산나와 두 노인',1652,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개인소장


그런데 그로부터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1652년 그녀는 같은 주제를 이렇게 그려냈다. 자신을 추행하려는 이들을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모습으로 말이다.


16세기, 아직 여성에게는 많은 제약이 걸려 있던 시대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간 그녀의 인생사를 생각하며 작품을 보면 두 배, 세 배 동감하는 마음으로 작품에 감정이입이 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여성의 날이면 늘 거론되는 단골 인물이다.

그녀는 여류화가를 넘어 여성주의(feminism) 화가로 까지 불린다.


아르테미시아의 작품과 늘 비교되는 작품이 있다.

바로 그녀에게 영향을 끼친 대 화가 카라바조의 작품이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자. 

같은 주제, 그러나 사뭇 다른 분위기의 그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로마의 바르베리니 궁(Palazzo Barberini)이 소장하고 있는 같은 제목의 카라바조(Caravaggio:1571-1610)의 1598년 작품이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듯싶다.


카라바조는 유디트 보다는 장군 홀로페르네스에 집중한 듯 보인다. 

적장의 목을 베겠다는 끔찍한 일을 계획한 여인의 모습치고는 어딘가 어색하다. 

계획 이행의 굳은 의지도 그다지 전달 안된다. 

오히려 베어진 목을 담을 주머니를 들고 서 있는 나이 든 하녀의 모습에서 계획을 실현에 옮기고자 하는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


미켈란젤로, 1509, 시스틴 채플, 바티칸

바티칸 시스틴 성당 천장화에도 유디트의 모습이 남아 있다.

대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긴박성보다는 사건을 서술하듯이 그려낸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직접 겪은 고통이 녹아 나면 감정 표현이 이렇게 극명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인 아르테미시아의 표현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가슴 한편이 짠하다.




20세기 초 서유럽의 몇몇 나라에서 시작하여 1975년에 UN에서 공식적으로 선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여성의 날'.


매년 여성의 날은 찾아올 테고 아르테미시아를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 빨리 와야 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롤 모델(?)이 등장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직은  미래가 불투명한 듯하다.

2024년 '여성의 날'에 다시 떠올려본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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