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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Apr 28. 2024

66. 요즘은 이런 모습으로

뒷모습이 대세(Rückenfigur).

봄꽃들의 향연이 눈부신 요즘,

많은 이들이 꽃들의 향연 앞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사진 찍는 모습이 흥미롭다.


카메라 앞에서 손가락 'V'를  만들어 이런저런 방향으로 포즈를 취하던 모습에서 요즘은 아예 카메라를 등지고 선다.

꽃을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을 찍는 것이다.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다 떠오른 그림.

제목도 근사한 '바다 안개 위의 방랑자'다.

19세기 독일 화가 카스파르 데이비드 프리드릭(Caspar David Friedrich:1774-1840)의 그림이다.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 Hamburger Kunsthalle

꽃을 보고 서 있는 낭만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듯 한 뒷모습이다.

주인공 앞에 펼쳐진 풍광도 녹녹지 않은 모습이다.

울퉁불퉁 솟아 있는 바위와 저 멀리 까지 펼쳐진 산들의 모습에 이들의 본모습을 감추기라도 하듯 엷게 깔린 운무들.

그림 속 주인공은 머리 모양이나 빨간 머리색 등으로 미루어 화가 자신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험난해 보이는 풍광을 화가 자신의 굴곡 많은 인생사에 비유하곤 한다.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형제들도 병으로 또는 사고로 잃어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화가다.

그러나 주인공의 뒷모습에서 여기서 주저앉으려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

오히려 그가 이런 역경들을 내려다보며 앞으로 나아갈 것을 결심하는듯한 굳은 의지 가 느껴진다.

작품이 완성된 시기 또한 결혼 등 화가 자신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였으니 가능성 있는 추측이다.

그러나 이 황금기도 잠시, 그의 인기는 쇄락하여 병마에 시달리고 말년은 무척 외로웠던 화가다.

굳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놓인 녹녹지 않은 풍광은 그에게 곁을 허락하지 않은 셈이다.


상대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의 뒷모습에선 그를 보는 각자의 시선으로 다양한 해석을 나을 수 있다.

이런 점이 뒷모습이 가져오는 장점이기도 하고 함정이기도 하다.


뒷모습을 그리는 이런 기법을 '뤼켄피규어(Rückenfigur)'라 한다.

글자 그대로 '뒷모습'이다.

회화뿐만 아니라 사진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기법이라고 하니 요즘 이런 식으로 사진 찍는 이들의 센스는 탁월하다 하겠다.

이 방법은 그림 속 주인공의 시선으로 앞에 전개되는 풍경을 볼 수도 있지만 거기에 관람자 개개인의 뷰까지 더해지면 더 다양하게 그림이 해석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뒷모습은 정면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그건 주인공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주인공을 바라보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다양한 이야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카스파르는 19세기 독일의 초기 낭만주의 풍경화가다.

그는 같은 시기 영국의 유명한 풍경화가였던 윌리엄 터너(1775-1851)나 존 컨스터블(1776-1837)과 비교되곤 한다.

터너는 자연의 빛에 역점을 둔 풍경화를, 컨스터블은 세세한 자연 묘사로 풍경화를 그려낸 것으로 유명한데 카스파르는 자연의 풍광에 자신의 감정을 실어 작품을 완성했다는 평을 받는 화가다.


Woman at a Window, 1822, Alte Nationalgalerie, Berlin

카스파르의 또 하나의 유명한 뤼켄피규어 작품이 있다.

그보다 19살이나 어렸던 신부가 그의 화실에서 창문을 내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앞모습을 그렸다면 '화가의 아내구나.' 하는 카테고리에 제한되었을 그림이다.

그녀가 보고 있는 창 밖의 모습은 글자 그대로 풍경일 수도 있지만 시야를 막고 있는 쭉쭉 솟은 나무들은 그녀의 미래일 수도 있다.

해석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을 패러디한 유명 화가의 작품이 있다.

Young Woman at a Window,1925, Salvador Dali,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ía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1925년 작이다.

주인공은 달리의 여동생 안나 마리아(Ana Maria:1908-1989).

배경은 달리가 말년을 주로 보낸 스페인의 카다케스(Cadaqués)다.

창 밖의 밝고 청명한 풍광은 달리가 동생 안나에게서 느끼는 감정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안나 마리아는 달리가 그의 평생 반려자 갈라를 만나기 전까지 달리가 가장 의지했던 여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특히 안나의 남은 여생은 1929년 갈라의 등장과 스페인 내전등으로 그림 속의 모습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카스파르의 뤼켄피규어의 영향을 받았음을 의심할 여지없는 작품이다.



그런데 말이다.

몇 년 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렸던 '초현실주의 거장들:달리에서 마그리트 까지'에 전시되었던 마그리트의 작품이 있다.

'금지된 재현(Not to be produced)'이라는 제목의 작품.

한가람 미술관에 전시된 '금지된 재현' 작품

그냥 뒷모습으로만 보면 곤란하다.

뒷모습이라고 다 같은 뒷모습이 아니다.

작가가 마그리트 아닌가?

거울 속 비친 주인공의 모습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거울에 마땅히 보여야 할 주인공의 얼굴이 없다.

그런데 옆에 놓인 책의 거울에 비친 모습은 정상이다.

제목의 뜻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그 순간 '역시 마그리트구나.' 하는 생각에 반갑기도 하고 머리가 좀 복잡해지기도 한다.

감상의 해석은 각자의 몫으로 하자.



카스파르 작품처럼 심오한 의미보다는 뒷모습이 멋진 작품으로 기억되는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1848년-1894년)의 작품도 있다.

그는 가난한 인상파 화가들의 든든한 후원자로 기억되는 멋진 화가다.


작품 속 주인공은 지금으로 치면 수트발이 괜찮은 신사의 뒷모습이다.

창 밖의 풍경은 이번엔 도시다.

부유한 집안의 화가였던 카유보트의 파리 8구에 있는 집에서 도심 큰길(Boulevard Malesherbes)을 내다보는 화가의 동생 르네( René Caillebotte:1851-1876)의 뒷모습이다.

르네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카유보트의 동생이다.

도심의 큰길이라고는 하나 앞으로 쭉 뻗은 길이 아니라 주인공의 시야 각도는 꽉 막혀 있다.

동생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에밀 졸라는 이 그림을 작가의 탤런트가 보이지 않는 카피 같은 그림이라고 혹평을 하기도 했지만 그의 또 다른 동생 마르시알 카유보트(Martial Caillebotte:1853-1910)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두 형제는 평생을 돈독한 관계로 지낸 것을 보면 그들 사이의 영향력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형제의 작품은 파리의 유명 미술관 자크마 앙드레(Jacquemart-André Museum)에서 특별전을 열었을 정도다.

Young Man at His Window, 1876, Gustave Caillebotte, J.Paul Getty Museum, LA

말도 많고 해석도 각양각색인 뒷모습 작품들.

자신을 직접 내 보이고 싶지 않은 심리적 방어막인지 아니면 신비주의를 가장한 관심 집중의 방편인지 정확한 해석은 쉽지 않다.

그러나 관람자 입장에선 각자의 스토리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다양성을 주는 작품들임은 확실하다.

작품 감상의 몫은 오롯이 내 것이니 말이다.


'뤼켄피규어'.

세상을 그려내는 또 하나의 멋진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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