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금요일에
파리 출장을 다녀온 친구가 파리의 유명 파티스리 '안젤리나(Angelina)'에서 가져온 초콜릿을 건네며 파리 출장 소감을 전한다.
'뛸르히 가든(Jardin des Tuileries)' 근처 '히볼리가(Rue de Rivoli)'에 있는 유명 파티스리다.
많은 이들이 이곳의 핫초코와 몽블랑 케이크를 추천하지만 친구는 진열장에 진열된 먹기에 너무 아까운 예쁜 디저트들이 더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친구가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며
'자기 말대로 '퐁 뇌프' 여기 석양 보러 갔었는데....'.
하필 그날 비가 오더란다.
파리에서 석양이 가장 예쁘다는 곳.
'시테(Cite)' 섬의 맨 끝자락 '베르 갈랑 공원(Square du Vert-Galant)'이다.
'퐁 뇌프'는 영화의 배경으로도 많이 나와 가기 전 '퐁 뇌프의 연인들(Les Amants du Pont-Neuf)' 영화까지 찾아보고 간 여행에 진심인 친구다.
센 강에는 모두 34개의 다리가 있는데 그중 가장 먼저, 그러니까 가장 오래된 다리가 '퐁 뇌프'다.
역대 왕들 중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앙리 4세'가 1607년에 완공한 다리다.
'뇌프'는 불어로 '새로운'이란 뜻인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
불어과 전공인 동료의 날카로운 지적이다.
'뇌프'가 9란 뜻도 있으니 센 강에 9번째로 만들어진 다리라는 거 아닌가?
'아니다.'
'퐁 뇌프'는 이전의 다리들과는 달리 새로운 스타일로 지은 최초의 다리라는 뜻이다.
그전 까지는 다리 위에 집을 얹는 식으로 지었단다.
'다리 위에 집을?'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처럼.
많이들 무심코 보았을 거다.
고로 기존 스타일에서 벗어나 이런 형태의 다리로는 '퐁 뇌프'가 처음이란 깊은(?) 뜻이 있는 거다.
우리 친구 공부 많이 했다.
이 다리의 중간 지점에는 '앙리 4세'의 기마상이 있고 그 아래에 '베르 갈랑' 공원이 있다.
'베르 갈랑'이란 이름도 '앙리 4세'의 애칭에서 가져온 것인데 직역하자면 '싱싱한 바람둥이(?)'란다.
그는 역대 왕중 최다 정부(그 수가 무려 50여 명으로 이는 역대 왕들의 정부의 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고 한다)를 두었지만 반면 국민들을 무척 아끼고 보살핀 점이 높이 평가 되어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왕으로 뽑히는 왕이다.
'베르 갈랑'공원으로 가려면 '앙리 4세' 기마 동상 뒤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가면 공원 입구가 나온다.
그런데 공원에 들어서기 직전 돌담 벽에 붙어 있는 현판.
'템플 기사단(Knights Templar)의 수장 '자크 드 몰레(Jacques de Molay, 1244~1314)가 화형을 당한 곳'이라는 내용이다.
꼼꼼한 이 친구 그걸 놓칠 리 없다.
비도 오는데 아름다운 공원에 들어서려다 잠시 섬뜩했다고.
파리의 심장, 시테 섬에 템플 기사단 수장의 화형이라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기사단이라면 십자군 전쟁 때 활약한 그 기사단?
그래서 친구가 찾아낸 이야기.
영화 <다빈치 코드 >나 <인디아나 존스>에는 성배를 지키는 템플 기사단이 등장한다.
템플 기사단은 원래 프랑스의 기사 '위그 드 파양(Hugues de Payens)'이 성지 순례자들을 이슬람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자 1118년에 결성한 종교 기사단이다.
이후 십자군의 주력 부대로 활약했지만, 1314년 '베르 갈랑' 공원에서 수장이 화형을 당하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은 기사단이다.
당시 템플 기사단은 십자군 전쟁으로 엄청난 부와 군사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교황 클레멘스 5세(Clemens Ⅴ, 1264~1314, ‘아비뇽 유수’의 주인공)는 기사단의 막강한 힘을 경계했고, 프랑스 왕 필리프 4세(Philippe Ⅳ, 1268~1314)는 기사단에 큰 빚을 지고 있었다고.
기사단이 눈엣가시였던 교황과 왕은 이들을 없애기로 하고 기사단을 붙잡아 누명을 씌웠다.
당시 친지의 장례식 참석차 파리를 방문한 드몰레와 60명의 기사단이 이 음모에 걸려들었는데, 기사단을 체포한 날이 바로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이었다.
수많은 영화와 소설 등에 언급되면서 전 세계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13일의 금요일’.
그 저주의 역사가 파리 한복판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템플 기사단의 수뇌부는 결국 1314년 3월, 베르 갈랑 공원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자크 드 몰레'는 죽어가면서 기사단을 죽음으로 내몬 세력들을 저주했는데.
“교황 클레멘스와 필리프 4세, 그 자손들까지 우리와 똑같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라고.
그의 저주가 효력을 발휘한 것일까?
이후 1년이 채 못 되어 교황은 병으로, 필리프 4세는 사냥터에서 사고로 죽었단다.
그리고 '자크 드 몰레'가 처형당한 지 14년 만에 300년 전통을 이어 오던 프랑스 '카페 왕조(House of Capet)'는 대가 끊겼고.
그저 우연이라 하기에는 그의 저주가 심상치 않다.
비록 비는 왔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역사를 품고 있는 '베르 갈랑' 현장엘 다녀온 거라고, 그것도 13일 금요일이었다고, 친구는 약간은 흥분된 어조로 말을 맺는다.
이런 역사를 안고 '베르 갈랑'은 센 강의 지는 석양을 감상하러 오는 이들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히 떠 있더라면서...
파리 최고의 석양을 보고 온 사람보다 더 멋진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