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커피 한잔 해야죠?

블루 보틀

by Ciel Bleu

점심을 마친 동료들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커피점으로 향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견이 갈린다.

시간도 세이브할 겸 비교적 한가한 커피점으로 가자는 의견과 한잔의 커피라도 브랜드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싸움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하던가.

건너편 커피점을 주장하던 이는 자리를 잡으며 막 앉으려던 일행을 굳이 건너편 다른 커피점으로 이동시킨다.


'여기 커피가 그렇게 맛있나?'

'그러니까 별다방이 점령하다 시피한 커피시장을 후발로 들어오지 않았겠어?'

'여기가 미쿡(?)에서도 그렇게 유명한 커피전문점이래.'

'근데 왜 이름이 하필 파란 병이야?'

'.....'

머쓱해진 목소리 큰 이는 서둘러 주문을 받기 시작하고 다른 이들은 각자 자신의 AI를 불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내 조용조용 이야기를 시작하는 나의 AI 같은 사람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다운로드 (1).png 블루 보틀 로고

'블루 보틀' 커피점의 로고는 심플하다.

문자 그대로 '파란 병'이다.

그런데 거기에 얽힌 이야기는 간단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17세기,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제국 사이에 벌어진 '비엔나 전투(Battle of Vienna:1683년)'로 거슬러 올라간다.


커피점 이름 이야기 하다 말고 웬 전쟁?

1683년 비엔나 전쟁, 작자 미상

비엔나 전투는 1683년 9월, 비엔나 시가 내려다 보이는 칼헨부르크(Kahlenberg) 언덕에서 2달간 이어진 전쟁이었는데 비엔나의 승리로 끝난 전투다.


유럽에는 30년, 100년 전쟁도 있는데 겨우 2달 전쟁이었어?


기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전투가 갖는 의미는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제국에게는 기독교 국가로의 영토 확장 야망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오스만 제국이 다 이긴 거나 다름없었던 전투를 비엔나의 승리로 끝나게 된 데는 비엔나를 지원하기 위해 출격한 폴란드의 '후사르(Hussars)'부대의 등장과 이슬람 지휘관이었던 '무스타파 파샤(Mustafa Paşa: 1634~ 1683년)'의 이해할 수 없는 지연 작전이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한다.

다운로드.jpeg '후사르의 공격',1810년, Aleksander Orlowski, 바르샤바 국립 미술관

당시 전쟁터에 나타났다 하면 적진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는 폴란드의 '후사르' 부대는 '코피아(Kopia)'라 불리는 길이 4.6m에 이르는 폴란드식 긴 창과 독수리 깃털 날개를 달고 전쟁터를 종회무진 하는 무적의 기병대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들을 '죽음의 천사'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거기다 아이러니하게 '후사르'가 도착하기 전 얼마든지 비엔나를 함락시킬 수 있었던 이슬람의 지휘관이 왜 비엔나 공격을 주저했을까 하는 의문에 역사 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저항하다 함락되는 도시는 사흘간 약탈이 허락되지만, 항복하면 적국의 모든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는 이슬람 법이 있다고 한다.


역사가들은 '무수타파 파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슬람 법에 의거하여 모든 재물을 자신이 차지하려고 했던 과욕이 부른 어이없는 패배였던 것으로 본다.

그는 어처구니없는 이 전쟁의 패배로 처형되었고.


커피점 이야기 하다 말고 좀 멀리 갔다 싶겠지만 비엔나 전쟁은 '블루 보틀'을 이야기하려면 꼭 알아야 할 사건이니 어쩔 수 없다.


다시 전쟁터로 돌아와서,


전쟁터에 '후사르' 부대가 등장한 것은 비엔나 측의 전령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폴란드에 도움을 청한 '예지 프란츠 콜쉬츠키(Jerzy Franciszek Kulczycki:1640~1694)'라는 인물의 활약 때문이다.

그는 이슬람 권에 살았던 폴란드인이었는데 현재도 비엔나를 구한 영웅으로 남아 있다.


혹 비엔나를 여행하면서 그를 이미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비엔나 시내 파보리텐슈트라세(Favoritenstraße 64)와 콜쉬츠키가세(Kolschitzkygasse)가 만나는 코너 건물 외벽에 그의 동상이 있다.


비엔나 시내에 이슬람 복장을 한 동상을 보며 뭔지 몰라도 사연이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고 동료 중 한 이가 오래전 자신의 여행담을 이야기한다.

관광 명소인 '벨베데레 궁전(Schloss Belvedere)'에서도 멀지 않으니 가는 길에 꼭 찾아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붙인다.

다운로드 (2).jpeg 비엔나 시내에 있는 콜쉬츠키의 동상(1885)

그는 전쟁 영웅 일뿐만 아니라 비엔나에 커피를 최초로 소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아! 이제 커피 이야기로 가는 거예요?'


전쟁 영웅에게 왕은 전리품 중 원하는 것은 뭐든 가져도 좋다고 했더니 이상한 콩알이 들어 있는 자루를 가졌단다.


커피다.

당시 페르시아나 터키 등에는 이미 커피가 널리 퍼져 있었지만 아직 유럽에는 커피가 소개되지 않았는데 이스탄불에 살았던 적이 있는 콜쉬츠키는 그것이 커피임을 금세 알아차렸고 이것을 기반으로 최초의 비엔나커피하우스를 오픈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말이다.

이 카페의 이름에 '블루 보틀(Blue Bottle)'이 있다.

정식 명칭은 'Hof zur Blauen Flasche'.

직역하면 '푸른 병의 집'이다.

최초의 비엔나 커피하우스다.

그는 이슬람 복장을 하고 커피를 서빙했던 것으로 알려져 그의 동상은 이슬람 복장을 한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Hof zur Blauen Flasche' 내부(벽에 달린 간판과 뒷벽에 블루 보틀이 그려져 있다)

이 커피 하우스는 비엔나의 명소 '성 슈테판 대성당(St. Stephen's Cathedral )' 근처에 오픈했었다는데 아쉽게도 1694년 그가 세상을 뜨고 곧 문을 닫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그가 커피 역사에 남긴 업적(?)은 커피 하우스 오픈(비엔나 최초 커피 하우스는 다른 곳이란 주장도 있다)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오늘의 비엔나 커피의 원조가 되는 새로운 스타일의 커피를 만들어낸 능력 있는 17세기 바리스타였다는 것이다.


이슬람 식의 커피는 너무 진하고 쓰다는 것을 간파한 그는 커피에 꿀을 넣어 본다던가, 우유와 설탕을 적절히 혼합한 커피를 선 보이는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다양한 커피를 시도 한 점이 높이 평가 된다.


2002년 창업한 '블루 보틀'의 창업자도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콜쉬츠키의 개척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블루 보틀'에는 비엔나 커피가 없다.

콜쉬츠키가 개발했던 비엔나 커피와 가장 유사한 커피는 아메리카노 위에 휘핑크림을 듬뿍 얹은 '아인슈페너(Einspänner)'라고 한다.


커피 메뉴에 '콜쉬츠키 식 비엔나 커피'가 있다면 마셔보고 싶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스토리가 있는 멋진 커피일 거 라면서.


보너스로,

세계 최초의 커피 하우스는 15세기 이스탄불에 문을 열었다.

'Kiva Han'.

'Kiva'는 커피, 'Han'은 하우스라니 참 정직한 상호다.


왜 하필 커피 전문점의 이름이 '블루 보틀'일까?.

볼 때마다 생각했었는데 궁금증이 확 풀렸다.

이런 이야기가 뒤에 있는 것을 알고 나면 무엇이든 의미 없이 만들어지는 것은 없지 싶다.


'그렇다면 스타벅스 로고에는 왜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siren)이 그려져 있는 거예요?'

동료들이 묻자 친구는 '자~그건 이제 각자 AI에게 물어보세요.' 하면서 이야기를 정리한다.


많은 이들이 당연시 마시는 커피 한잔.

그러나, 커피 한 잔과 그에 곁들여지는 귀가 쫑긋 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이들에게는 최고의 커피 한 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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