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단 여자 파라오
이집트 여행 간다고 기대 만발인 친구에게 책 한 권을 선물했다.
19세기 이집트를 방문한 스코틀랜드 화가 데이비드 로버츠(David Roberts:1796-1864)의 그림책이다.
이런 그림들이다.
풍경화 같기도 하고 스케치 같기도 한 그림은 마치 무슨 고서에서 튀어나온듯한 독특한 분위기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19세기 당시 이집트의 신전들이 놓여 있던 믿기 어려운 상황들을 옅 볼 수 있어 흥미 있는 그림들이다.
그는 1838년부터 2년여 동안 이집트를 비롯 중동지역을 여행하며 그곳의 실상을 그림에 담았는데
'19세기 최고의 여행기(travelogue)'란 찬사를 받은 화가의 최대 걸작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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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 속 신전들처럼 모래 속에 파묻혀 있다 발굴된 신전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중 가장 특이한 건축물로 평가받는 신전이 있다.
이 신전을 남긴 이는 수염을 달았던 여자 파라오로도 유명하다.
수천 년 전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뉴욕 메트 뮤지엄의 이집트 관.
맨 끝방인 115호실에는 파라오의 상징인 '네메스(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착용한 줄무늬 머리 천 )'를 쓰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여인상이 있다.
여자 파라오 핫셉수트(Hatshepsut:기원전 1507 ~기원전 1458)다.
재위 시기가 기원전 1500년 경이니 무려 3500여 년 전 파라오다.
1000년, 2000년도 아닌 3500년 전이라니 당시 무슨 일이 있었으며 현재와는 시대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었을지 정확히 알 수도, 말하기도 어렵다.
더욱이 후대 파라오들이 여자 파라오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정책(Damnatio Memoriae)'을 써서 그녀는 잊혀진 여자 파라오였다가 19세기 초에 와서 상형문자가 해독되면서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된 파라오다.
그래서 그녀에 관한 출토품들은 온전한 것이 거의 없으며 발굴 수량도 많지 않다.
실제로 전시실을 둘러보면 거의가 깨지고, 이어 붙여진 상태다.
가끔 뮤지엄에서 그녀에 관한 전시품을 보면 반가운 이유다.
그런데 이집트 파라오는 남자 아닌가?
맞다.
역사 자료를 보면 당시에도 왕위는 장남에게 계승되는 '장자 우선 상속제'였을 것이라 한다.
그런 상황이라 남장을 한 여자 파라오가 있었나 싶었는데
그러나 실상은 남자 파라오들도 가짜 수염을 달았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는 제모가 유행이었는데 파라오들은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수염을 달았던 것이라고.
그녀가 턱에 수염을 단 모습은 단순히 남장을 하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선대왕의 정실 자식임에도 남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관습 때문에 이복동생의 왕비가 된다.
그런데 이복동생이 건강이 좋지 않아 일찍 세상을 뜨자 의붓아들에게로 왕위가 가지만 그 아들은 너무 어려 섭정을 하게 되고 후에 20여 년 동안 공동 파라오로 통치하였다.
이렇듯 역사는 늘 비슷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다음 대에 와서 여성의 권력이 너무 세지는 것을 우려한 파라오들이 그녀의 기록 말살 정책을 써서 남은 것이 별로 없다고 하니 그 뜻은 그녀가 능력 있는 파라오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녀는 성공적인 무역(일명 푼트(Punt) 원정대)으로 이집트에 막대한 부를 가져왔으며 '장제전(장례 신전:Mortuary temple)' 같은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는 건축물들을 완성하여 이집트의 예술성을 최고조에 달하게 한 성공한 파라오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녀는 세계 최대 신전인 카르나크(Karnak)에 30m에 이르는 최고 높이의 오벨리스크를 세워 놓아 자신의 업적을 확고히 해 놓았다는 설명이다.(카르나크에 부서져 누워있는 오벨리스크도 그녀의 작품이다.)
룩소르의 모래 바람 속에 수염 단 여자 파라오가 남긴 거대한 신전이 더욱 궁금해진다.
'장제전'은 '장례를 지내기 위한 공간'을 뜻한다.
핫셉수트 자신과 아버지 투트모세 1세의 부활을 기원하며 지은 신전이다.
이 신전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룩소르 신전'이나 세계 최대 신전 '카르나크 신전'과는 나일강을 사이에 두고 죽은 자들의 땅으로 여겨졌던 서쪽 지역의 '왕의 계곡'과 '여왕의 계곡'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데이르 알 바하리(Deir el-Bahari)'라는 석회암 절벽 밑이다.
19세기 중반 처음 발굴 당시 '장제전'의 모습은 모래 바다에 거대한 돌무더기 현장이었다고 한다.
수천 년 동안 뒤편의 거대한 절벽에서 떨어진 바위와 모래가 사원을 덮고 있어 전체 윤곽을 알아볼 수 조차 없었다.
일부 탐험가들은 '장제전'이 뒤의 절벽을 깎아내고 만든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거기다 후대 파라오들의 기록 말살 정책으로 신전의 석상들은 부서지고 파괴되었고 벽화는 깎여나가 흔적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지금의 모습이 대략 드러난 건 19세기말(1890년대)에 와서야 가능했다고.
그러나 당시 발굴현장은 수 천 개의 파괴된 석상들이 바다를 이루고 있어 복원 작업을 위해선 거의 불가능 일거 같은 조각 짜 맞추기를 할 수밖에 없었단다.
초기 발굴자들은 당시의 '핫셉수트 장제전'을 '절벽 아래 버려진 거대한 석조 쓰레기장'이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 우리가 보는 완벽한 대칭 구조와 기둥들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폴란드와 이집트 고고학 팀의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통해서 이뤄진 것이라 한다.
그녀의 실제 무덤은 '장제전' 뒤편 '왕들의 계곡' 깊숙이 'KV20'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여자이지만 파라오였기에 '왕의 계곡'에서 무덤이 발견되었으며 다른 무덤들과는 달리 아주 특이한 구조로 만들어졌다는 것 외에는 대중에게 알려진 것이 없다.
3개의 거대한 테라스가 '데이르 엘 바하리'의 석회암 절벽을 배경으로 램프로 연결되어 있는데 당시 이집트의 다른 건축물들과 달리 상당히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 아주 독특한 유적으로 뽑힌다.
고대 이집트에서 오시리스(Osiris)는 부활과 재생의 신이며 파라오는 오시리스의 화신이라 믿는다.
다시 세상 빛을 본 '장제전'에 세워진 그녀의 동상은 그녀의 부활을 의미하듯 아마 천에 싸여 있는 미이라 같은 모습의 오시리스의 모습인데 군데군데 채색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아테프 관은 왕권의 신성함을 뜻하고 앙크는 영원과 신성한 생명을 뜻하는 고대 이집트 유적의 대표 상징들이다.
다신교였던 고대 이집트의 장제전인 만큼 숫양으로 표현되는 주신 '아문-라(Amun-Ra)'를 비롯 '아문-라'의 딸 '하토르' 여신, 죽은 자의 신 '아누비스' 신과 여왕 자신을 위한 성소들이 마련되어 있다.
중간 테라스에 핫셉수트의 신성한 탄생 설화와 경제적 업적인 '푼트(Punt:현재 동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북부의 에리트레아(Eritrea)로 추정) 원정' 장면이 정교한 부조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볼만하다고 하는데 많이 훼손되어 있어 제대로 보기가 힘들다.
동방박사가 예수께 바친 세 가지 예물(황금, 유황, 몰약)중 하나인 '몰약(Myrrh)'을 푼트 지역에서 가져온 것이 높이 평가되는데 '몰약'은 몰약나무의 수액이 굳어진 것으로 쓴맛과 독특한 향을 지닌 귀한 향료 및 약재로서 미이라의 방부 처리나 화장품(향수) 원료로 귀하게 쓰였다고 한다.
핫셉수트는 파라오를 표현하는 전통에 따라 근육질 몸매와 수염을 가진 남성으로 묘사되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여성임을 나타내는 문구를 이곳저곳에 남겼다고 한다.
역사가 들은 기원전 1458년 그녀가 사망한 후, 이집트는 클레오파트라가 즉위할 때까지 1400년 동안 그녀만큼 강력한 여성 통치자를 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 혈통(알렉산더 대왕이 기원전 332년 이집트를 정복한 뒤 세운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후손)이라 순수 이집트 혈통은 아니다.
그런데 루브르에서 흥미로운 조각상을 본 적이 있다.
핫셉수트와 '장제전'을 지은 장본인으로 알려진 건축가 세넨무트(Senenmut)가 같이 조각된 조그만 조각상이었다.
여기선 핫셉수트보다 세넨무트가 더 관심의 대상이다.
그는 핫셉수트의 연인으로 알려졌던 인물로 그의 묘가 '장제전' 안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예사롭지 않다.
(장제전 건축 당시 인부들의 숙소로 사용된 토굴에서 19금 벽화가 발견되었는데 그림 속 여자가 파라오의 상징인 네메스를 쓰고 있었다고 하니..)
조각상의 설명서에는 만든 이도, 년대도 없이 핫셉수트와 세넨무트라는 설명 만이 간략하게 쓰여 있었다.
조각상에서 그는 여자 파라오에 안겨 측량용 로프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많은 말을 전하는 듯한데 무엇일까 하는 마음에 유심히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한창 여행 준비 하던 친구가 느닷없이 '근데 거기 가도 돼?'하고 묻는다.
'장제전'에서 벌어졌던 충격적인 사건 이야기다.
1997년 11월,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가 '장제전'을 관람하던 관광객 60여 명을 처참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이렇게 어렵게 발굴한 거대한 세계 유산에서 무고한 관광객이 희생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사건의 흔적은 지워졌지만 '장제전'의 주인 핫셉수트는 이런 일을 저지른 후손들을 어떻게 보았을지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예쁜 파라오를 보면서 '이런 파라오도 있었네' 하던 그녀가 '나 이런 파라오였다' 하고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거대한 '장제전'이 아닐까 싶다.
사후 수 천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모래 바람 속에서도 굳건하게 모습을 찾은 여자 파라오의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