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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Feb 15. 2018

*1-1. 아서왕 전설의 주인공들

빵퐁(Paimpont)

빵퐁(Paimpont)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는 유명한 영국의 전설 같은 이야기다. 아서왕을 보필하는 마법사 멀린(Merlin)과 아서왕에게 신검 엑스칼리버(Excalibur)를 준 호수의 요정 비비안(Vivien)은 아서왕 이야기의 중요한 등장인물들이다.  그런데 이 두 주인공이 프랑스에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찌해서 영국 전설의 주인공들이 프랑스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살았던 것일까?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자취를 찾아간 곳은 프랑스 북서쪽 땅 끝 브르타뉴(Bretagne) 지방의 작은 마을 '빵퐁'이다.

프랑스 식 얇은 팬 케이크인 크레프(Crepe)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브르타뉴는 로마시대부터 '리틀 브리튼(Little Britain)'으로 불리며 켈트족들이 모여 살았던 지역이다. 

켈트족(Celtic)은 지금의 프랑스를 비롯 독일 등 유럽 전역에 퍼져 있던 부족인데 현재는 프랑스의 브르타뉴와 스페인 북서부의 갈리시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지역에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켈트족들은 날개 달린 투구를 쓰고 다녔으며 남자도 머리를 땋았다고 한다. 유럽에서 최초로 바지를 입은 민족이고 로마가 와인을 먹기 시작할 때 그들은 이미 맥주를 만들어 먹었을 정도로 상당히 지혜로운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만화 ‘아스테릭스(Asterix)’의 주인공들이 바로 켈트족들이다. 

조상이 같은 켈트족인 영국과 브르타뉴가 영국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서왕과 멀린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은 우연이 아닌 셈이다.

전설이나 신화는 이래서 재미있다. 

만화 '아스테릭스'


브르타뉴 여행은 켈트족의 역사나 문화를 모르고는 별 의미 없는 여행이 되기 쉽다. 특별한 경치나 유적지를 보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전설이 만들어진 현장을 본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 여행이었다. 

'브르타뉴'하면 몽생미셸(Mont-Saint-Michel)과 해적의 도시로 잘 알려진 생 말로(St. Malo)가 우리 에게는 더 익숙한 도시들이지만 이곳엔 마법사 멀린과 그를 사랑한 호수의 요정 비비안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흥미로운 마을 '빵퐁'이 있다. 

둘의 전설이 전해지는 이곳에는 곳곳에 그들의 자취가 남아 있었다.

'멀린의 땅'이라 쓰인 빵퐁 마을 입구의 간판

마법사 멀린의 마을 빵퐁

 

파리에서 차로 5시간 정도 걸리는 빵퐁. 

유명 관광지 몽생미셸에서는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곳이니 아서왕 이야기를 좋아하고 전설이나 신화에 흥미가 있는 여행자라면 그냥 지나가기가 어려운 곳이다. 

아서왕 전설 속에 등장하는 마법사 멀린의 무덤이 있다 하여 찾아간 이곳에서 나는 뜻하지 않은 시간 여행을 하게 되었다.


아서왕(King Arthur)은 켈트족인 영국의 전설 속에 나오는 인물로 5-6세기경의 인물로 추정된다. 캔터베리 대성당에 있는 바위에 박힌 성검 칼리번(Caliburn)을 단숨에 뽑아 켈트족의 왕이 된 전설 속의 인물이다. 아서왕의 출생지로 알려진 곳은 영국 남서부 지역에 있는 콘월(Cornwall)의 틴타젤(Tintagel)성이고 그가 묻힌 곳은 써머셋(Somerset)에 있는 글래스톤베리 수도원(Glastonbury Abbey)이다.

이곳에서 바로 바다 건너의 땅이 프랑스의 브르타뉴다. 


멀린은 12세기 영국의 수도승이자 연대기 작가인 제프리(Geoffrey of Monmouth:1100-1155)가 쓴 영국 연대기(Historia Regum Britanniae)라는 책에 처음으로 등장한 가상의 인물이라고 한다.  이 책은 고대 영국 영어로 전해오던 영국 왕들의 역사를 라틴어로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 언급된 후 멀린은 대중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게 되고 후에 마법사의 이미지가 보태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마법사 멀린으로 재 탄생된 것이라 한다. 아서왕의 전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지만 후에 자신이 총애하던 제자 겸 애인인 비비안 요정에게 자신의 마법의 비밀을 전수해 준 것이 화근이 되어 오히려 비비안에 의해 보이지 않는 탑에 영원히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비비안은 호수의 요정(Lady of the Lake)으로 원탁의 기사 중 한 사람인 랜슬롯(Lancelot)을 훌륭한 기사로 키워낸  요정이다. 비비안은 랜슬롯의 아버지의 성이 공격을 당하자 갓 태어난 랜슬롯을 납치하여 호수 속 그녀의 궁전에서 키웠으며 아서왕의 칼로 유명한 신검 엑스칼리버의 원래 주인이기도 하다. 


 포레 드 브로실리앙드(Foret de Broceliande)

 

직역하자면 ‘다른 세계에 있는 땅의 숲(the land of the other world)’이라는 뜻이라니 숲이 품고 있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 숲은 브르타뉴에서 가장 넓은 숲이다. 이곳에는 멀린의 무덤, 젊어지는 샘물, 돌아오지 않는 계곡 등 전설에 나오는 장소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어 마치 마법의 숲에 들어온 거 같은 묘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캐내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나는 지금 5 세기 경 아서 왕이 활약하던 시대로 시간 여행을 온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정말 신나는 장소가 아닌가?     

                      

숲 속의 방향 표지판

숲 안에는 동(copper)으로 만들어진 참나무 잎 모양의 방향 표지판이 있는데 이것들을 따라 가면 어렵지 않게 각각의 장소들을 찾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멀린의 무덤은 커다란 돌멩이 몇 개와 잡초 같은 풀들이 마구 자라나 있는 너무도 자연적인 모습이었다. 허기야 멀린 자체가 전설 속 인물인데 그럴싸한 무덤을 기대한 것이 과한 생각이었나 보다. 숲을 지배하던 마법사 멀린에게는 그 어떤 형태의 무덤도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멀린의 무덤


어떤 이들은 이곳이 멀린의 무덤이 아니라 호수의 요정 비비안이 멀린을 잡아 가둔 곳이라고도 한다. 마법사조차 여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세계에서도 팜므파탈의 힘은 대단한 듯싶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들은 멀린은 죽지 않고 아직 살아서 이 숲을 배회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마법의 숲에서는 어떤 상상이던 가능할 테니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그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이곳에는 원래 12미터에 달하는 신석기시대 고인돌 군락이 있었으나 19세기 금을 찾아다니던 도굴꾼들에 의해 훼손되고 현재의 모습만이 남은 것이라 한다.


젊음의 샘물(Fontaine de Jouvence)

        
 너무도 소박한 멀린의 무덤 가까이에는 역시 마법사가 살던 숲이라 그런지 이름도 흥미로운  ‘젊음의 샘물’이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이름에 걸맞지 않게 바닥의 물이 거의 말라 있어서 이곳을 왜 ‘젊음의 샘물’이라 부르는 건지 궁금했다. 원래 옛 전설에 나오는 이런 샘물들은  먹거나 씻으면 늙은이가 젊음을 되찾는 등 영험한 효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지 않던가? 샘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내가 너무 앞서 간 모양이다. 나는 잠시 ‘영원히 늙지 않는 샘물’과 혼돈하고 있었다.

                                    

젊음의 샘물

이 샘물의 전설은 이랬다. 그 옛날 이 지역의 켈트족들은 새로 태어난 아기들을 이곳에서 침례를 하면서 수를 세었다고 한다. 켈트식 인구 조사 방식이었던 셈이다. 만일 그때 참석 못하여 다음 해에 침례를 받는 아이들은 이미 한 살을 먹었음에도 다시 새로 태어난 것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어려지는 ‘젊음의 샘물’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나는 마시거나 바르면 젊어지는 그런 샘물을 은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상 그렇다 해도 바닥이 다 드러난 샘물엔 마실 물도 없고  그저 ‘전설이 그랬다’라는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계곡(Val sans Retour)


마릴린 먼로가 여주인공으로 나왔던 옛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을 연상시키는 장소다. 이름하여 프랑스 판 ‘돌아오지 않는 계곡(발 쌍 헤투르)’이다. 이곳의 전설은 아서 왕의 이복 자매인 모르간 요정(Fairy Morgan)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자 이 계곡에 무서운 저주를 했다는 데서 시작한다. 저주의 내용은 ‘신성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영원히 이 계곡에 갇히게 될 것이다.’였다고. 문득 들으면 저주의 내용하고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란 생각이 들 수도 있으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부적절한 사랑을 나누었으면 그런 저주를 했을까 싶기도 하다. 돌아오지 못하고 갇힌 사람들이 많다는 걸 보면 말이다.

요정의 거울

계곡의 입구에는 ‘요정의 거울(Miroir aux Fees)’이라 불리는 거울 같이 잔잔한 호수가 있다. 이곳은 계곡에 사는 요정들이 밤이 되면 서로 나와서 자신들의 미모를 호수에 비춰 본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우리도 경치 좋은 곳에 가면  비슷한 선녀 이야기가 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비슷한가 보다.

호수 옆에는 금으로 변한 나무가 서 있는데 ‘역시 마법의 숲이라 금 나무가  다 있구나!’ 하고 반신반의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진짜 금이 아니고 ‘프랑스와 대벙(Francois Davin)’이라는 작가의 작품으로 그을린 밤나무를 금종이로 둘러싼 것이란 설명과 함께. 

1990년 이 숲에는 대형 화재가 났었는데 화재를 진압한 소방수들의 노고를 길이기 위한 작품으로  자연의 고귀함과 새로 태어남 등을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금 나무 옆에는 다섯 그루의 그을린 나무가 금 나무를 호위하듯 서 있는데 이것은 용감하게 화재 진압을 했던 소방수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정말 금으로 변한 나무인가?'라고 잠시나마 생각한 내 생각이 너무 짧았나 보다. 

게다가 옆에 사람이 하는 말에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저게 진짜 금이면 저렇게 온전하게 서 있겠나?”


금나무 조형물, 프랑스와 대벙 작품


이 ‘금 나무’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150미터 정도 가파른 산(?) 위를 오르면 계곡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정상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곳엔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묘하게도 하트 모양으로 생긴 이 바위는 반이 갈라진 모습이다. 

이 바위의 전설은 배신당한 모르간 요정이 그녀를 배신한 남자가 다른 여인과 사랑을 나눌 때 잡아다 이 바위 속에 가둬 버렸다고 한다. 응징이 강한 요정이었구나 싶다. 


산 위에서 맞는 바람이 시원하다. 바위에 얽힌 전설도 후련하니 좋다. 이 계곡을 통과한 사람은 원탁의 기사 랜슬롯뿐이라는데 그도 아서왕의 왕비인 귀네비어와 적절치 않은 관계였는데 어찌 모르간 요정의 주문이 안 통했는지 모를 일이다. 

하기사 전설이라는 것들이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되지 않을 것들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으니 그렇다면 그런가 보다 하자.  


가운데가 갈라진 하트 모양의 바위

 숲을 나올 때 즈음 하루를 켈트족의 전설 속에서 지내다 보니 마치 거대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느낌이 든다. 역시 현실과 전설의 차이는 정신이 살짝 혼미 해 질 정도로 큰가 보다. 

여행하는 낙 중에 기념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지 않은가? 

빵퐁의 조그만 기념품 가게들은 마치 그곳이 마법사 멀린의 작업실이라도 되는 듯 약간은 묘한 분위기의 물건들을 진열해 놓고 있었는데 오래 있으면 나도 마술에 걸릴 거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가게를 나서며 허공에 손으로 원을 3번 그려 본다. 

마치 비비안이 아서 왕에게서 엑스칼리버를 돌려받았을 때처럼 말이다. 

언제나 전설이나 신화는 이렇게 다 큰 성인을 다시 상상의 나라로 인도할 만큼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 보이곤 한다. 

 


16세기 문화재 건물을 차지한 브르타뉴의 크레프 가게 

'Les Ateliers Gourmands'

빵퐁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아름다운 마을 쁠로에흐멜(Ploermel)에는 16세기에 지어진 문화재 건물'마르무제트'(Maison des Marmousets)에서 크레프 가게를 운영하는 집이 있다. 500년 된 집에서 본 고장 크레프를 맛보는 것은 먼 길을 찾아온 여행객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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