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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 May 05. 2024

숲 속에 사는 원주민의 땅문서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


숲 속에 사는 원주민의 땅문서


중남미 평가의 일환으로, 에콰도르 원주민 중 하나인 슈아르 부족 마을에 찾아갔습니다. 비포장 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다 보니 문득 나타난 단층짜리 초등학교, 뒤로는 집들이 몇 채 보입니다. 오후가 되니 안데스 산맥은 어김없이 비를 뿌릴 준비를 합니다. 5-6명의 마을 대표들이 악수와 볼키스로 우리를 맞아줍니다. 빈 교실에 들어가 의자를 동그랗게 놓고 앉았어요. 자세히 보니 마을 대표들은 셔츠에 청바지를 갖춰 입었지만 많이 낡았습니다.



마을 대표들은 길고 감정이 격양된 연설을 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살고 있는 땅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슈아르 족이 사는 2만 헥타르 정도 되는 이 땅은 자연보호구역이자 국유지입니다.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어도 그냥 그들은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산림을 보호하는 대가로 지원을 해주는 사업들이 활성화되면서 땅문서가 필요해졌습니다. 10여 년 전에 어떤 시민단체가 찾아와 이 과정을 도와준다고 했다가 성과 없이 떠나버렸습니다. 다른 국제기구가 와서 다시 토지 소유권 문제를 정리하자고 하자 처음에 주민들은 불신했습니다. 그래도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땅 문제가 정리되어야만 다른 지원사업들이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마을 대표들의 연설에는, 슈아르족의 공동토지소유권을 인정받기 위한 지난한 노력과 울분이 녹아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UNDP 직원의 이름이 여러 번 거론됩니다. 정부와 주민들 사이에서 참을성 있게 중재 역할을 해준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토지경계에 대한 부족민들 간 해묵은 감정이 얽혀 논의가 진행이 안 될 때도 현장 직원이 중재합니다. 얼음에 물을 뿌리고 따뜻한 바람을 녹이듯 촉매 역할을 해주는 그들에게 저도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한편으로는,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예전부터 살아온 땅에서 살아갈 자격과 자리(space)를 왜 또다시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사례: 수백 년에 걸친 자리다툼


어쩌면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살아갈 공간적 - 자리와 자신으로서 존재할 자격을 필요로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그 자격과 자리가 저절로 주어지지 않고,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음으로써 주어집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네 삶은 어린 시절 유치한 자리다툼의 연장선인지 모릅니다. 땅과 아파트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도 살아갈 자격과 자리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라틴 아메리카에 가면, 수백 년에 걸친 자리다툼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수백 년 전에 이주해 온 사람들이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원주민)을 밀어내고 이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획득했습니다.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은 문서로 된 계약서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았고, 땅도 사유지가 아닌 마을 공유지였습니다. 영문을 모른 채로 조상 대대로 살던 땅이 자연보호구역이 되고 국유지가 됩니다. 삐죽 튀어나온 못처럼, 이음새가 어긋난 헛간처럼, 원주민들은 시스템의 밖에서 불안정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원주민들도 시스템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그들의 시스템이 현대의 해결책보다 우수합니다. 예를 들어, 에콰도르 원주민 부족인 케추아 족은 ‘차크라’라는 전통적인 농법을 이용해서 숲을 지속가능하게 관리해 왔습니다. 공동토지를 지속가능하게 관리하는 규약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죠. 사실 이는 아주 흔한 방식입니다. 제주도의 해녀들도 제한된 자원을 지속가능하게 활용하기 위해 엄격한 규약을 만들었습니다. 현대의 계약방식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공유지의 비극문제를 공동체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사회계약론으로 보는 원주민 권리 문제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살아온 ‘사회계약’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슈아르족을 보며 느낍니다. 사회계약론은 주로 토머스 홉스, 존 로크, 장 자크 루소와 같은 철학자들에 의해 발전된 이론으로, 사람들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안정적이고 질서 있는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상호 합의에 따라 권리와 의무를 국가에 위임한다는 개념을 중심으로 합니다. 사회계약은 일반적으로 ‘계약’ 당사자들 간의 명시적 또는 암묵적 합의를 필요로 하지만, 원주민의 경우 공정한 합의나 동의가 없이 정복이 이루어졌으니까요.


사회계약론을 주장하는 학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토머스 홉스는 중앙집권적 권위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개인들은 무한한 투쟁에서 벗어나 안전을 위해 일부 자율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죠. 홉스의 관점에서 보자면 원주민들은 체념하고 현 체제를 따르며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게 낫겠지요.


존 로크는 재산권을 자연권으로 봅니다. 즉, 개인이 노동을 통해 자연자원을 가공함으로써 그 자원에 대한 권리를 획득합니다. 원주민들이 오랜 세월 동안 그 땅을 경작하고 관리했다면, 그들은 그 땅에 대한 자연적 권리를 갖습니다. 따라서 로크에 따르면 원주민의 땅 권리는 국가의 인정 없이도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부가 인정한 땅문서 없이는 경제적 활동에 큰 제약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을 하는 이유를 공동의 선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루소는 사회적 불평등의 근원을 사유 재산에서 찾았으며, 이는 원주민의 땅 문제에 특히 적용될 수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자신들의 전통적인 땅을 공유하고 관리하는 방식은 루소가 이상적으로 보았던 자연 상태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로크나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국가들이 원주민의 땅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법적, 윤리적 기반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원주민들이, 국가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여전히 복잡한 문제이겠지요. 원주민의 권리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들과의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할 것입니다. 원주민들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생각과 현대 국가 체제 간의 간극을 메우는 긴 과정도 포함해야 할 것이고요.


때로 사업평가에서 원주민의 땅 권리 문제가 사업의 걸림돌이나 장애요소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위와 같은 지난한 대화와 인식 변화과정이 사업을 지연시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이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형성하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고, 성공적으로 형성된 새로운 사회계약은 오히려 사업의 중요한 성과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새로운 사회계약은 현대사회가 답을 찾지 못하고 딜레마에 빠져 있는 기후변화나 발전의 방향에 대한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줄지도 모릅니다.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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