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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 May 31. 2024

집에 불이 나면 누가 꺼야 하나요

존 롤스와 아마티아 센의 정의론  

불난 집과 물난리 난 집


집에 불이 났을 때 누가 불을 꺼야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끌 수 있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꺼야 한다고 할 것 같습니다. 소방관처럼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면 가장 좋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집에 있던 사람이 행동을 시작하고, 그리고 누구든 도와줄 수 있어야겠지요. 불 낸 사람이 누군지 시시비비를 가릴 시간이 없을 겁니다. 불길이 거세다면 도망쳐야겠고요. 


집이 아주 서서히 물에 잠기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을 퍼내든 이사를 가든, 조치를 취할 사람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마도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일 겁니다. 하지만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이 나보다 내 이웃에게 10배는 많고, 물이 천천히 차오르므로 대응할 시간이 있으며, 조치를 취하려면 (부엌을 고치든, 배를 만들든, 집을 높이든) 돈도 많이 들고 교육도 좀 받아야 한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당신은 이웃에게 가서 책임을 지라고 따질 수도 있겠지요. 같은 처지에 있는 이웃들을 모아서 항의를 할지도 모릅니다. 




공통이지만 차별화된 책임의 원칙(CBDR)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대입니다. 1992년에 UNFC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가 만들어지고, 누가 어떻게 불을 끌지에 대해서 논의했습니다. 그 결과 "공통이지만 차별화된 책임의 원칙 (CBDR, 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라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모든 국가가 기후 변화에 대처할 책임이 있지만 동일한 능력이나 역사적 책임을 공유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고 책임을 차등하자는 것이죠. 


역사적 배출량이라는 것은 산업화 이후에 배출한 온실가스의 총량을 말합니다. 지금은 중국이 미국보다 2배 정도 되는 양을 배출하고 있지만, 누적 총량을 보면 미국이 압도적입니다. CO2가 누적되어 온실효과를 일으킨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사적 배출량이 현재의 기후변화에 더 큰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반면 역사적 배출량에 덜 기여했던 개발도상국은 (억울하게도) 이제 기후 변화 영향을 정면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럼, 역사적으로 기후 변화에 더 많이 기여한 국가가 그 영향을 완화하는 데 더 큰 책임을 져야 할까요? 불을 낸 사람이 꺼야 할까요? 그렇게 맡겨두기에는 모두가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습니다. 사안의 심각성과 시급성을 생각할 때, 공통(Common)의 대응이 필요한 것이죠. 하지만 각자의 역량과 역사적 배출량이 다르므로, 선진국들은 차별화된(Differentiated) 의무를 가집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개발도상국을 재정적, 기술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죠. 이 선진국 그룹이 UNFCCC annex 1 국가입니다. 1994년에 합의되었다 보니, 우리나라도 중국도 인도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기후변화에 관한 한 개도국 지위를 가지고 있죠.  

(출처 : Analysis: Which countries are historically responsible for climate change? - Carbon Brief)




기후변화 대응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기후 행동의 형평성에 대한 철학적 기반은 '정의에 대한 질문'입니다. 


고대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적정 정의 (Corrective Justice)를 제시했습니다.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불공정한 상황이나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여 균형을 맞추는 것이 정의라고 했지요. 


현대에 와서 존 롤스는 정의는 공정함을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절차적 정의 (Procedural Justice)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과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누가 입장이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절차를 설계하면 가장 공정한 사회 계약을 형성할 수 있다고요. 롤스는 또한 공정한 분배를 위해서는 차등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보정하기 위해서 말이죠. 


아마티아 센 (Amartya Sen)은 분배적 정의와 관련하여 "역량 접근법(Capability Approach)"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자원의 분배보다 개인의 역량과 기능, 즉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과 될 수 있는 잠재력(기회)과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죠. '실질적 정의'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후변화 대응에서 정의란 위의 교정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역사적 배출량이 높은 국가에 대해서는 교정적 정의를 적용하여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하도록 했죠. 하지만 국가들은 비구속적(안 해도 그만인)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국제회의는 수도 없이 개최되었지만 (리우, 교토, 칸쿤, 파리...) 1990년 이후 배출량 증가속도는 오히려 상승했습니다. 


절차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UNFCCC라는 협의체를 만들어서 각국이 자신의 목소리를 있는 장도 만들었습니다. 2010년에 만들어진 GCF는 특히 개도국과 선진국이 반반씩 이사회에 참여함으로써 기존 다자개발은행들이 가진 불공평한 자금접근성을 개선하려고 했습니다 (다자개발은행도 은행이라, 돈 많이 낸 나라가 의사결정권을 가집니다. 대주주). 결국 절차적 정의가 현실적으로 배출량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Analysis: Which countries are historically responsible for climate change? - Carbon Brief)



실질적 기후정의 


기후변화 분야 평가를 하다 보면 '개도국이 기후금융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 개도국에 한 기후변화 사업이 효과가 없는 이유'로 '역량(capacity)'가 종종 제기됩니다. 


기후변화 분야 국가계획, 사업계획을 세우고, 사업을 실행하고, 조정할 역량이지요. 그 역량이 없는 경우도 많기는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선진국에서 요구하는 기준이 너무 복잡하고 제각각이라서, 개개인의 역량은 있지만 조직적 역량이 부족해서(단순히 정부 재정이 부족해 공무원 숫자가 부족하기도 합니다) 필요한 재정과 기술지원을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기후변화라는 안건이 가진 특성 (과거에 탄소를 배출하면서 불공평하게 이득을 얻었으면 책임을 져야지!)를 감안하면, 기후변화에서 정의는 보다 실질적인 접근법을 택하는 게 합당해 보입니다. 역량이 있니 없니를 따지기보다는 우선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하고, 사업을 하면서 역량을 기르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해야하지 않을까요?   


'역량'을 핑계로 미적거리기에는 기후변화라는 안건이 너무 급합니다.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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