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월
토종 한국인인 나는 국제기구에 들어와서 영어로 일을 하는 게 좀 숨이 가빴다. 항상 오르막을 오르는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졌다. 농담을 이해 못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머릿속에서 영어로 전환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1년쯤 지나고 나서야 머릿속의 한국어-영어 변환 과정이 생략되었다. 별다른 생각을 할 필요 없이 바로 영어로 말이 나오게 되었다. 일단 입을 떼고, 어떻게든 말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의 20% 정도가 줄어들었다.
9월에는 국제학술회의(같은 것)에서 발표도 하고, 회서에서도 몇 번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나중에 모니터링해보니 특정한 단어의 발음이 불명확하고, 억양에도 한국인 티가 팍팍 나서 부끄러웠다. 국제기구에는 다양한 억양의 영어가 있기에(인도식, 독일식, 프랑스식…) 한국식 영어가 그리 특별할 것도 없지만, 아직도 내 발표를 모니터링하려면 뱃속에서 용기를 끌어올려야 한다.
되돌아보면 지방의 대학 어학당에서 토익 책을 달달 외우고, 취업하고 첫 출장에서 새벽부터 스피치를 연습하며 보낸 세월이 20년이다. 그 시간들을 투자하고도 아직도 영어가 어려운 게 속상하기도 하지만, 네이티브가 아닌 English speaker 대부분이 이런 푸념을 하는 것을 들으면 위안이 된다.
영어, 언제면 편해질까, 그리고 언제면 자신만만해질까? 갈길이 멀다 싶으면서도, 어느 순간 그 지점에 도달해 있겠지, 싶다. 인생의 대부분의 일들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