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나는 포르투갈에 있었다. 평소에도 여행을 좋아했지만 이번엔 스페인을 시작해 포르투갈, 프랑스 등을 30여 일 동안 여행하는 꽤 긴 일정이었다. 겨울 여행은 처음이었는데 다행히 춥지만 맑은 날씨가 이어져 가는 곳마다 감탄의 연발이었다. 하지만 긴 여행에서 내 눈에 가장 띄는 건 멋진 풍경도, 고풍스러운 건물도 아닌, 어딜 가나 커플들이었다.
서른 즈음에 만나 연애를 하다가 서른둘 즈음에는 결혼을 하고, 서른셋 즈음에는 아이를 낳아야지... 항상 계획을 먼저 세우는 게 마음 편한 나는 내 인생의 계획도 아주 오래전부터, 내 멋대로 그렇게 정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2014년 1월의 그때, 막 서른셋이 된 내게 그 계획 중 들어맞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혼자였고, 사람을 만나기는 더 어려워졌으며, 결혼은 요원해 보였다. 마음은 조급했지만, 그럴수록 시야는 좁아졌고, 누구를 ‘만나’ 더라도 ‘만나기’가 어려웠다.
유럽 거리의 어디에서나 반짝이던 그 커플들. 거리낌 없이 사랑을 표현하고, 아주 예쁜 그림처럼 한 데로 반짝이는 그들. 나도 그들처럼 반짝이고 싶었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호시우 역에서 신트라로 가는 열차를 탄 나는 평소처럼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을 나의 카카오스토리 계정에 남겼다.
2014. 1. 13.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라고. 했던가.
스페인 광장에도,
호시우 지하철 역. 어느 한 구석에서도.
사랑은 여지없이 반짝, 반짝거렸다.
나는 내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아직 결혼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반짝이는 내 인생의 지금에
사랑하고 있지 않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이.
너무나 무겁고 소중해서
사랑도 아껴, 아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아껴야 할 것은,
다만
소중하고 아름다운
지금 나의 반짝거리는
시간일 뿐이다.
여행은 즐거웠고, 생각은 많아졌지만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내 글 같은데, 나 같지 않은 이름으로 알 수 없는 카페에 글이 올라와 있다는 것이었다. 친구가 급하게 사진을 찍어 보내어 준 글을 보니 내가 쓴 글을 덕지덕지 오려 붙여 자기 말로 바꾸어 쓴 글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그래, 처음에는 기분이 묘했다. 기분이 나쁘기도 한데 이상하게 뿌듯하기도 했다. 훔쳐가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니 아주 조금은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억울하고 화가 났다. 내 계정은 누구나 들어와서 볼 수 있는 계정도 아니었고, 친구들이라 해봤자 처지 비슷한 친구들은 스무 명도 되지 않는데 그중 누구란 말인가. 이렇게 당당하게 오려서 다른 곳에 붙인 걸 보니 그동안 나도 모르게 더 훔쳐간 것도 있지 않겠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틀림없이 훔쳐간 다른 글들이 있을 것만 같았고, 더욱더 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 글은 금방 삭제되었지만, 억울하고 분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로는, 공개된 곳에 글을 올리기가 꺼려졌지만 나는 타고나기를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다시 틈틈이 내 생각들은 이야기가 되었고, 이야기들은 글로 남겨져 내 카카오스토리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나도 안다. 내 재주가 서너 명 둘러앉은 자리에서 신명 나게 할 수 있는 이야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언니는 공부를 좀 더 해서 등단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도 했지만 나는 안다. 나는 그저 글쓰기를 좋아할 뿐, 그 이상의 대단한 달란트는 내게 없다는 것을. 그렇게 도전하고, 도전하다 내 밑바닥과 맞닥뜨렸을 때 내가 느끼게 될 아무것도 없음에 대한 그 암담함이 더 무섭다.
그래서.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실컷 할 공간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냥 지칠 때까지 목청을 뽑을 만한 지하철 역 한 구석 자리를 찾기로 했다. 볼륨이 너무 크지 않게, 소음이 되지 않게, 마이크도 없이 그저 이렇게 작은 기타 하나 찰랑거리며 불러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