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제 시간 안에 유치원에 들여보내는 것은 한 달에 겨우 두어 번 성공할까 하는 일이다. 체험 학습이라도 있어 반드시 시간을 맞춰야 하는 날에는 손을 잡고 뛰고, 업고 뛰고, 땀범벅이 되어 유치원에 당도한다. 겨우 그렇게 둘째를 들여보내놓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늘 지나치던 건널목에서 포스터 한 장을 보게 되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육아이야기라니! 옆에서 누가 톡,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나에게 어디 자리 펴 줄 테니 마음껏 울어보라는 허락 같았다. 게다가 다시 시작한 마지막 육아 휴직 4개월째, 뭔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다면 투자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서 예전에 썼던 글들을 뒤적거렸다. 다듬고, 고쳐 떨리는 마음으로 웹하드에 업로드했다. 발표가 언제쯤 난다는 이야기도 없어서 막연히 기다리기만 한 달 여. 소식이 없는 걸 보니 떨어졌나 보다, 싶어 의기 소침하던 때 드디어 결과를 확인해 보라는 문자를 받게 된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검색해 보니, 수상자 명단이 떴다. 최우수였다.
최우수라니! 글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최우수라니! 약간의 상금도 있었지만 돈보다, 그저 너무 기뻤다. 처음으로 해본 응모 치고는 너무나 감사한 결과였다.
그런데, 대상이 아닌 내 글은 어디에도 실리지 않았다. '모든 작품은 경남일보에 귀속된다'는 한 마디로 내 글은 깜깜한 상자 속에 다시 갇혀버린 것이다. 아니, 기껏 하고 싶어 한 이야기인데 들어주지도 않고 파묻어 버리다니...
상자 속에 파묻힌 글을 소중하게 꺼내어 왔다. 아이를 키우며 하고 싶었던, 나의 이야기이다. 나의 첫 번째, 이야기이다.
달의 얼굴
예감이 좋지 않았다. 콧물이 좀 나다 말겠거니, 했는데 급기야 작은 아이가 밤새도록 자면서 기침을 해대더니 목이 쉬었다. 큰아이가 여덟 살, 작은 아이도 여섯 살이 되니 이제 열나는 일도 줄어 다 컸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렇게 기침이 시작되면 나는 가슴부터 두근두근한다.
그믐달이 뜨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싶을 때는 그 기억에 왼손을 겹쳐보라. 아마 당신이 기억하는 것은 초승달일 것이다.
그믐달은,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조용히 길을 나선다. 아니, 밤이라기보다는 이른 새벽이 맞겠다. 열이 올라 잠들지 못하는 돌 된 첫째를 둥기둥기 안고, 해열제 덕에 조금 식어진 볼에 뺨을 대고, 베란다를 서성이며 먼 산을 보고 있을 때 우연히 달머리가 보였다. 머리가 보이다가 금세 쑤욱, 달은 침착하면서도 빠르게 올라왔다.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였다. 처음 보는 그믐달의 달돋이였다.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그 후로도 자주 달돋이를 보았다. 작은 아이가 잠을 깨 울고, 첫째 아이도 깨어 안아달라고 울고 불고 하는 힘든 밤에는 앞에 작은 아이를 안고, 뒤에 큰 아이를 업고서 거실 창문으로 한참 동안 달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날은 둥그스름하게 훤한 모습이 둥실둥실 안은 내 아이 얼굴 같아 예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손을 대기도 차가울 것 같은 푸르스름한 달의 얼굴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자라면서 끓여봐야 라면이고, 간이 짜다, 맵다 엄마에게 투정해 본 일이나 있었지 요리를 해본 일도 없는 나에게 ‘엄마’가 된다는 건 실로 다양한 일에서 매일 난감함을 경험해야 하는 일이었다. 냄비를 태워먹고, 그릇을 깨는 것은 다반사요 아이를 안고, 달래고, 눈을 맞추면서도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늘 불안하고 걱정이었다. 달님은, 늘상 그렇게 동동거리는 불쌍한 내 얼굴 같기도 했다.
두 아이가 조금씩 크면서부터는 나름대로의 잣대가 생겨 어느 정도 ‘엄마 됨’에 익숙해져 갔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익숙해지면서 잘하게 된 것들도 하나둘씩 생겨났다. 나는 예전보다 간을 잘 맞추게 되었고, 동화책을 더 실감 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수없이 넘어지는 걸음마를 지켜본 덕에 예전보다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잘하게 된 것이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엄마’가 된다는 것은 어렵다. 한동안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쉽게 잠들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눈 심리 치료사는 나에게 내 속의 작은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라고 말했다. 내 아이를 안 듯, 내 속의 나도 그렇게 안아주라고 했다. 일 마치고 늦게 퇴근하는 엄마를 창문에 기대어 오래도록 기다리던 외로웠던 작은 나를, 학교 운동회 날 교실 한 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김밥 한 줄을 먹던 내 작은 어깨를 살며시 안아 본다.
친정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자식을 넷이나 키우면서 안 힘들었어? 친정엄마가 웃으며 대답했다. 힘들었지! 죽도록 힘들었지. 근데 나도 내가 우찌 했는지 몰라!
엄마가 된다는 것은, 기억력이 좀 나빠지는 것. 그믐달의 달돋이를 보던 밤의 안쓰러움 대신 통통한 보름달 같은 내 아이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 내 속의 작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비로소 내 아이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아직도 엄마가 되어가는 중인 나는, 요즘도 가끔 달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달님, 힘들게 지새우던 밤이 많았는데, 늘 함께여서 고마웠어요. 헬쓱한 달님을 보며 안쓰럽던 밤도, 통통한 달님을 보며 둥실둥실한 아이들 볼을 쓰다듬던 밤도, 하나같이 고마운 내 시간이에요. 오늘도.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