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연애 세포가 아직 살아있다.

by 하니작가

자고 일어나니 벌써 다 왔다. 목도리를 두른 후 가방을 챙긴다. 자고 일어나니 개운하다. 배가 고파 샌드위치를 테이크 아웃한다. 집에 도착해서 핸드폰을 보니 꺼져있다. 충전할 동안 가방을 정리한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노팅힐'을 본다. 이 영화는 몇 번을 봐도 재밌다. 런던 비행 가서 영화 속의 서점을 찾아 간 적 있다. 갑자기 런던 가서 매번 먹는 생크림 듬뿍 올라간 스콘이 먹고 싶다. 난 왜 모든 걸 먹는 걸로 연결할까. 외투를 입고 나갈 준비를 한다.


'아 맞다. 핸드폰을 챙겨야지. ' 날이 춥다. 그나마 빵집이 바로 집 앞이라 다행이다. 스콘만 사러 왔지만 이미 트레이엔 크루아상부터 에그타르트까지 담겨있다. 쌀쌀하니 따뜻한 아메리카노도 함께한다.
'아. 맞다! 내가 승객한테 이메일 보냈지...'
가끔은 비행성 치매가 고마울 때가 있다. 다 기억하고 있으면 머리가 복잡해서 살 수 없을 거 같다. 이메일은 스팸메일이 많아서 알림 설정을 꺼놨다. 먼저 생크림을 듬뿍 묻혀 스콘을 먹고 당 충전을 한 후 이메일을 본다. 메일이 4통이 와있다. 첫 메일은 스팸인데... 바로 아래 메일에 '안녕하세요 '가 보인다.

" 연락 주셔서 감사해요. 제주도 비행은 잘 다녀오셨나요? 저는 여기에서 학회가 있어서 아직 제주도예요. 날이 많이 추우니 감기 조심해요. "
이메일을 확인하고 이번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바로 답장을 보낸다.
" 저는 제주도에 며칠 더 머물고 싶었어요. 동문시장 가면 맛있는 것도 많으니 꼭 방문해 보세요. 체류시간이 짧아서 바다도 못 보고 와서 아쉽네요. 제주 많이 즐기고 오세요!"

카톡이 아니라 이메일로 이렇게 주고받는 것도 새롭다. 카톡으로 연락을 하게 되면 프로필 사진이나 배경을 자꾸 보게 된다. 그래서 난 이메일로 아무런 편견 없이 그를 알아가고 싶다. 오랜만에 남자와 주고받은 이메일이다.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약간의 설렘과 떨림... 그냥 기분 좋은 상태... 괜히 미소 지어지고 자꾸 거울을 보게 된다. 환한 내 모습을 보니 더 크게 웃고 싶어 진다. 다행히도 아직 연애 세포가 살아있나 보다.

그와 난 여전히 이메일로 대화한다. 3개월 정도 된 거 같다. 그는 이제 내 비행 스케줄을 알고 나 또한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안다. 이렇게 우린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천천히 서로에게 스며든다. 하지만 그 누구도 먼저 만나자고 하거나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는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



은영이는 내가 이렇게 남자를 만나는 게 못마땅한 눈치다.
" 언제까지 이메일로만 얘길 할 건데?? 보고 싶거나 목소리 듣고 싶거나 그런 마음 없어? 없으면 그 사람 희망 고문하지 말고 그만두세요! 너무 이기적이잖아. 네가 이렇게 연락을 한다는 건 관심 있는 거잖아, 그치? 세 달 했으면 충분해. 이제 좀 만나라고 제발!"

은영이랑 통화를 하면 매번 한 소리 듣는다. 난 지금 이런 관계가 좋지만 은영이 말대로 내가 이기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조만간 만나서 얘기할 날이 자연스럽게 찾아올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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