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은영이에게 고민을 털어놓다

by 하니작가

김포공항 도착 후 공항버스를 탄다. 비행을 할 때는 바빠서 생각이 안 나다가 시간이 생기니 초콜릿 생각이 자꾸 난다. 혼자 고민하니 결론이 안 난다. 은영이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내 얘기를 들은 은영이의 반응이 어느 정도 예상된다. 2년 동안 남자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내가 뜬금없이 승객 얘기를 하면 당연히 많이 놀랄 거 같다. 오늘 은영이가 비행이 없기를 바라며 전화를 한다. 다행히 바로 전화를 받는다.


" 오늘 비행 없구나. 뭐 하고 있었어? 난 지금 제주비행 끝나고 집에 가는 중인데... 은영아, 나 고민 생겼어. 하루 종일 생각했는데 잘 모르겠어. 네가 듣고 많이 놀랄 거 같은데 너밖에 날 도와줄 사람이 없네."


" 너 목소리가 나름 심각한데! 무슨 일이야? 너 컴플레인받은 거야? 아님 사무장한테 깨졌어? 뭔데? 궁금하게 하지 말고 말을 하세요!"


" 나 승객에게 쪽지를 받았는데... 이런 일이 전에도 있었지만 고민한 적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엔 느낌이 좀 달라. 내가 이분을 프랑크 푸르트 비행에서 만났나 봐. 근데 난 기억이 전혀 안 나. 먼저 알고 인사를 하더라고. 그리고 내리기 전에 나한테 초콜릿을 줬어. 이메일로 연락하고 지내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


"진짜? 대박... 아니.. 난 네가 남자 얘기를 한 게 얼마 만인 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괜찮은 분이길래 이렇게 고민을 하는 거야? 너 이상형 만난 거야?? 어색하다. 진짜. 네가 이런 걸 나한테 얘기하다니 오래 살고 볼일이네!"


"그치.. 나도 어색해.. 너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 자체가.. 나도 헛웃음이 나와요! 조금 마음이 흔들리나 봐"


" 그럼 이미 답 나온 거 아냐? 네가 그 승객을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는 건 흔들려도 아주 많이 흔들린 거지! 요것이 다시 비행한 지 얼마 됐다고 벌써 이러는 거야! 그런데 난 네가 이런 고민을 한다는 거 자체가 너무 좋다. 이제야 너 같아. 너 전 남친이랑 헤어지고 나서 한 번도 남자 얘기한 적 없거든. 이제 연애할 때 됐어. 2년이 넘었어요!"


" 나 연락해도 될까? 그래도 승객이라 고민이 되네. 그분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데."


"여보세요! 울 동기 승객이랑 결혼해서 잘 살고 있잖아! 뭔 고민을 이렇게 오래 하는 거야? 원래 남녀관계는 만나면서 알아가는 거야! 만나기 전에 어떻게 알아? 너 연락 안 하면 후회할 거 같으니 연락해봐! 나도 진짜 궁금하다. 어떤 사람이길래 그대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 놨을까? 비행에서 두 번이나 만나는 거 대단한 인연이야! 난 여태껏 한 번도 없어요! "


"그치. 나도 많이 놀랐으니까. 근데 막상 이메일 보냈는데 답이 없으면 어떡하지?"


"요것 봐라. 벌써 답장을 걱정하는 거야? 우와, 새로운 모습이네. 진짜!! 이런 건 만나서 얘기해야 하는데 아쉽다. 나 오늘 저녁에 비행 갔다가 이틀 후에 오니까 그때 보자. 지금 버스 안에서 이메일 보내봐. 그분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냥 버스에서 딴생각하지 말고 피곤할 텐데 자요. 내가 한국에 돌아올 땐 이메일 주고받은 거 다 얘기해 주라. 근데 왜 내가 설레는 거지? "


" 뭐야, 너 벌써 소설 쓰는 거야? 근데 나 왜 이렇게 소심해졌지? 음... 알았어. 전화 끊고 간단하게 이메일 보내볼게. 근데 뭐라고 보내지?' 초콜릿 잘 먹었다고 보내면 되겠지? 막상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어."


" 그냥 그렇게만 쓰면 될 거 같은데. 괜히 머리 아프게 고민하지 말고 괜히 말 길게 하지 말고 간단하게 써.

지금 바로 보내! 바로 연락 올 걸!"


"어. 알았어. 즐비 안비하고 (즐거운 비행 안전한 비행)! 바로 보고 할게!"



은영이랑 얘기를 하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하다. 더 고민할 필요도 없다. 감사 표현을 담아 간단하게 보낸다. 아주 큰 과제를 끝낸 느낌이다. 이렇게 속 시원한데 진작 보낼 걸 그랬다. 핸드폰을 무음으로 하고 이제야 잠을 청한다. 잠을 자지 않고는 이 시간을 견디기가 힘들 거 같다. 그나마 자야 시간이 빨리 가니까. 집에 도착하려면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사무장: 객실을 총괄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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