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花果
꽃이 없는 존재라 하였다. 만개(滿開)할 운명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으니, 이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소멸을 기다려야 했을까. 화려한 폭발의 찰나는 건너뛴 채, 기나긴 침묵 속으로 숨어버렸던. 세상이 그저 껍질만을 보고 무심히 지나쳐가도록.
꽃은 안으로, 더 안으로 향하여 붉고 뜨거운 밀실을 짓는다. 고독하게 농익어가는 침묵의 무게는 마치 누구에게도 닿을 수 없는 비명의 기록과 같다.
싸늘한 가을의 냉기 속에서야 비로소 무르익는 진실. 금세 무너지고 썩어 흙으로 돌아갈 것을 알기에, 한순간에 모든 힘을 다해 터져 나오는 달콤한 종말.
끔찍한 비일상의 소음 속에서, 찬란했던 시절은 어쩌면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격렬하게 익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느리지만, 그 누구도 감지하지 못할 나만의 빛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