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 세탁소
Leo Caluoli - 세탁소 주인.
돌아 가신지가 10년.
부모님이 미국에 와서 세탁소를 한다고 뉴져지에 작은 신문 광고로 알게 되었고 우리집이 미국에 뿌리를 내리게 도와준 고마운 분이다.
세탁소 구입 -
ESL 지나서 TOEFL 보고 미국와서 일년 하는일 없이 초초하게 뉴져지에서 대학 시작에 혼자서 버벅 거리는 동안 부모님은 비지니를 찾는 다고 한국 부동산과 뉴져지 Star-Ledger (The Star-Ledger | New Jersey Newspaper - nj.com) 신문에 "Business For Sale Listing" 보면서 전화를 걸며 한동안 정신 없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얼마 되지 않은 돈을 생활비로 쓰면서 지내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면서 시간이 지난다는 것은 지금 부모님 나이가 되고 보니 정신 오그라드는 일이다.
"세탁소"라는 것을 찾은 것도 아니고 단지 '아무런 비지니스'를 찾는다는 것이 었는데 다니기 시작한 한국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이나, 부동산 분들이 소개 시켜준 여러 가지 중에 단연 자주 있었던게 "세탁소" 인지라 세탁소를 보기 시작 하셨다.
그 와중에 신문에 엄지 손가락 만하게 나온 비지니스 리스트가 Leo Caluorli 라는 분에 '세탁소' 전화 번호였고 그래서 그분에 세탁소를 구입하게 되었다. 생전 처음으로 개인 비지니스를 구입하는, 그것도 미국 온지 얼마 안된 부모님이 찾아낸 동네 신문 광고.
그분 세탁소에 매상과 조건은 통화 한데로 정확 했고, 부모님은 다른 계획인 있는 것도 전혀 아니어서 Leo 가 하자는 절차로 인수하고 우리 가족 "세탁소"가 시작하게 되었다.
Leo는 Zug, Switzerland에서 2차대전 끝나고 십대때 Normandy, France에 계시다가
60년대 cherbourg, france 항에서 미국 뉴욕으로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와서 같은 Switzerland에서 오신 Margarette 을 만나 증권회사에서 회계일을 했다고 한다.
1968년. 돈 이 좀 모이고 자기 비지니스를 해야 겠다고 그당시 유행하던 "One Hour Cleaners"를 꾸미면 좋다는 말에, 맨하탄에서 차로 한시간 거리 한적한 뉴저지 중부 햄버거 가게 건물을 인수해서 "1Hour Professional Dry Cleaners" 세탁소를 오픈하고 신혼 부부가 중년이 되고 노년에 가게를 내 놓은 신 거다.
주말에 가게-
부모님이야 신경 쓰지 말고 기숙사에서 공부나 하고 있으라는데 처음해보는 세탁소 일을, 영어도 시원치 않은 두분 생각에 주말이면 친구들과 같이 있을 기회가 쭉 짜여 있는 주말에 같이 있고 싶고, 한편으로는 어떻게 좀 도와 드려야 된다는 생각을 동시에 가지고, 금요일 시험 끝나고 밤 늦게 까지 체력 되는 데로 친구 들과 지내고 나서 새벽에 세탁소 와서 바지를 담당으로 Press를 했었다.
공부나 하지 왜 왔냐고 올때 마다 화 내셨지만, 워낙 육체 노동으로 이루어 지는 '세탁소'라는 것과 그리고 바쁜 주말에는, 입구에서 "구태여 왜 가게는.." 말 뒤로 매주 토요일에는 정신 없이 돌아가는 가족 비지니스가 되었다.
무슨 일이든 반복 하면 느는 것이고 이 세탁소에서 좋은 "옷" 폼나게, 각지게 하는게 살짝 재미도 있고... 바지만 계속 데리다 보니 주말에 토요일에만 일부러 나에게 옷 부탁하는 손님도 생기기 시작했다.
뉴욕 Fashion show 무대 -
그 때 한참 유행하던 Calvin Klein 에 일하는 아저씨가 늘 왔었는데 꼭 나 한테만 옷을 맞겼었다. Leo 오랜 단골이자 친구 분이었는데 배 나온 중년이 날씬 한 정장 옷과 야시시한 여자 옷을 가지고 오는게 많은 상상을 하게 되어 웃겼지만 많은 tip을 매번 주고 가서 꼭 신경쓰면서 해 드렸다.
알고 보니 그 옷들이 Runaways show 할때 모델들 입히는 옷들이었고, 점점 양이 많아 지더니 어느 날은 혹시 맨하탄에 fashion show를 할때 와서 뒤에서 옷 데리고 옷 정리 일을 도와 줄수 있냐고 거금에 일당을 제시하여서 어차피 방학에 시험 끝난 한주를 도와 주게 되었다.
잡지책에만 보던 나와 비슷한 키에 모델들.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키 큰 미인들이었는데
몇일 일하다보니 나이도 어리고, 수업시간 말 않는 애들처럼 장난에, 더러는 지들끼리 생활하는 애들도 있고. 옷 press 하고 정리하는 나 와 받는 돈이 별반 차이 없어서 불쌍하다는 생각도 좀 들었다. 더러는 다 미국 애들도 아니었고 나와 마찬가지로 서투른 영어에, 저녁에 TOFEL 공부 한다는 애, 카페 일하러 간다는 애.. 비슷비슷했다.
하루는 끝나고는 아이스크림 먹으로 가자고 했는데, 잔뜩 밀린 숙제 제출이 월요일이서서 못 간다니 했더니 다음날에는 물어 보지 않았다.
왜 같이 가지 않았는데 아직도 후회가 됀다.
가게 손님 분은 오케스트라 지휘 하듯 정신 없는 모든 무대 나가는 모델 이름까지 외워서 부르면서 뚱뚱한 외모와 다르게 민첩함에 놀랬다.
끝나기 하루전에 다른 일이 있는데 일당을 더 많이 줄 수 있다고 했다. 프로그램 마지막 부분에 무대에 서 달라는 거였다. 키큰 Asian 남자 한명 필요 하니, 우루루 같이 나올때 맞는 정장 미리 입고 있다가 그냥 신호 줄때 같이 걸어 나오기만 한다는 것.
한참 유행하던 Calvin Klein.. DKNY 비싸서 t shirts 하나 있었는데, 준비 해 놓은 정장 옷이 어찌나 딱 맞는지. 밑에서 눈부신 조명에, 어제 까불거리던 미니스커트 입은 모델들 뒤 따라서 몇번 무대 걸음으로 큰 일당도 받았다.
마지막 날 고맙다는 인사하고 나가는데 Calvin Klein 정장 옷은 다시 벗어 놓고 가라고 했다. 당연히 갈아 입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전문가가 보기에도 잘 맞아 보여 그냥 걸어 나 갈줄 알았나보다.
Leo 알던 손님 덕분에 New York Fashion 무대에도 한 번 서보았다.
주말에 Leo 집 -
Leo는 자녀는 없어서 보통 내가 토요일 오후 부모님 가게 도와 드리고 Leo 집에서 잔듸 깍고, 가끔 집 수리 도와 주고, 차고 정리 해주고..겨울 에는 눈치워 주고 용돈을 받았다.
요즘 처럼 무더운 여름 잔디 깍고 나면
"Come inside! Close all windows!"
"Lass uns ein Bier trinken!( let's have a beer!) "
"Good german beer, not Budweiser and make sure close all the windows!"
하고 turntable에 몇가지 LP를 올려 놓고 틀어 주었다.
어렸을때 Leo 부모님과 듣던 노래들인데 동네 유태인분들 들으면 아주 싫어 할것 이라고 창문 다 닫고 에어컨 틀고 시원한 맥주와 함께 늘 흥겹게 들었다.
아마도 오래전 독일군 노래들, 민요들...
https://youtu.be/xCqdaRC1SfE?si=I-khzCEGsjfbnDPf
(Alte Kameraden - Old Comrades, 오래된 동지들)
https://youtu.be/JW21xAYLy7I?si=MW312SN7MvUHOLnO
(es war ein edelweiss - 에델바이스)
대학에 계셨던 이모부님이 서재에 방문하면 젋은 시절 일본에서 듣던 학창 시절 노래라고 문을 꼭 닫고 일본 엔카와 일본 노래가 흘러 나오는 것 처럼 그런건 가 보다.
젋은 시절에 음에 감흥은 오래 간다.
Leo는 십대에는 Normandy에서 지냈었는데 독일말하면 안 좋게 봐서 French하는 Swiss에서 왔다고 하고 french 썼다고 했다. 이탈리안 같은 Caluoli 성은 오래전 이태리에서 스위스로 넘어와 zug가 자기네 종씨들 있는 마을이 되었다고.
그러면서 2차 대전이 끝난지 10년이 안된때여서 먹을 것도 풍족하지 않고 자기와 비슷한 젊은 사람들이 많이 팔 다리도 없고, 일할 곳도 없는데 전쟁에 승리라는 것에 대해 늘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었다고 말해 주었다. 미국으로 어학 연수를 20대 되자 마자 오게 된 이유였고.
https://www.amazon.com/Alans-War-Memories-G-I-Alan/dp/1596430966
- 은퇴 여행
검소한 Leo 부부는 여행을 자주 갔다. 가게를 팔고 작은 건물 landlord 였지만 소형 미제차와 2 bedroom 작은 집을 깨끗하게 두 노부부가 소유하고 있었고 여행때는 내가 태워다 주었다. 택시시는공항 대기실 안 까지 같이 짐 들어 주지 않지만 나는 Leo차로 가서 공항 안 까지 무거운 짐들어 주고, 같이 기다려 주고, 기다리면서 나누는 방문 도시에 대화는 언제든지 재미있었다.
기다릴때는 늘 집에서 삶아온 계란하고 감자, 간단한 샌드위치로 점심을 대신 했는데 내 것 까지 준비 해 와서 일년에 몇번씩 가도 한번도 공항에서 뭐 사먹어 본 적이 없었다.
두분이 젊을 때 부터 평생 꿈은 Cherbourg, France 항구에서 Cruise 타고 대서양, 그리고 태평양을 지나 일본 그리고 홍콩을 가는 것이 었다고 이제야 하게 되었다고 나에게 인터넷으로 좋은 여행 package를 찾아 달라고 해서 애들 처럼 들떠 있는 Leo부부들 도와 줬었다. Travel 잡지도 보고 여행사에 들려 책자들도 잔뜩 가져다 주고.
체류 시간도, 돈도 신경쓰지 말고 찾아 보라고 해서
찾은 것 뉴욕에서 마이애미, 하와이, 도쿄, 오사카, 그리고 홍콩으로 3달 바다가 보이고 발코니가 있는 VIP package.
가격도 상당했지만 두분다 다시 연애 하는 나이로 돌아 간듯이나 각 도시에 내릴때 마다 해 야 할 것 찾는게 일년 내내 일과가 되었다.
뉴욕 항에 내려 드렸다. 비싼 티켓 값처럼 VIP 대우로.
(뉴욕항은 정확히 얘기하면 뉴욕 건너편 New Jersey Bayonne에 위치한 2004년에 대형 크루즈 전용 - Cape Liberty Cruise Port https://en.wikipedia.org/wiki/Cape_Liberty_Cruise_Port 이다)
삼개월 후 보기로 하고. post card 보내 준다고. Leo 시절에는 그렇게 Post Card 보냈었다. 하기는 우리 아버지도 70-80년대 외국 출장에 보내준 그 post card는 학교에 가지고 가서 자랑하기 충분한 거리였다.
3 주 정도 지났을까? 크루즈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두분이 몸이 안 좋아서 비행기 편으로 뉴저지로 돌아 가게 되었다고.
두분이 태평양 건너 일본 쯤 갔었을때는 긴 여정에 피곤, 몸살에, 배 안에서 다리도 삐끗 하시고, 감기에... 공항에서 픽업 갔었다.
항해 도중 하자하여 비행기 편으로 돌아와서 돈 줄테니 지금 멀리 가고 싶은데로 가라고. 나중에 갚을 수 있으면 갚고 일단은 가고 싶은데는 지금 가라고. 농담이려니 했는데 정말로 loan 을 해 주겠다고 가고 싶은데 꼭 스케줄 하라고 했다.
George Washinton Bridge, NY/NJ - Othmar Ammann -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넘어 가는, 한때 세계에서 제일 긴 현수교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 4,760 feet (1,450 m) long), 1931년에 완공된 George Washington Bridge 가 있다.
Leo는 지나 갈때 마다 저 다리를 설계한 engineer는 스위스에서 온 Othmar Ammann 이라고 설명을 해주셨다. 그래서인지 나도 civil engineer 하고 architecture course 을 택해 보고 나중에 이런거로 전공해도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수년 동안 꼭 지날때 마다 "우리 스위스에서 온 Othmar Ammann이~ .."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하셔서, 나중에는 아예 내가 먼저 "이 멋진 bridge를 설계한 분이 미국 사람이 아니고 스위스에서 오신 othmar Ammann이고요.." 하면
"Oh...Son of a gun... How do you know that!!!" 하고는 바로 이어서 스위스 알프스에 긴 터널과 철도와 스위스가 얼마나 세계에서 제일 앞선 건축 기술과 건설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를 반복해서 해주었다.
그 늘 모른척 하고 "오... 너 어떻게 알아~?..에 자국 고향에 흐뭇함은 요즘 세계적인 현대 자동차와 삼성 반도체 늘 이야기로 꽃피는 미국에 사는 우리 모습 같기도 하다
https://en.m.wikipedia.org/wiki/George_Washington_Bridge
부부싸움 -
Leo 부부는 한번도 싸운 적이 없다. 적어도 내가 본 시간들 중에는. 이 파란눈에 노부부는 손을 꼭 잡고 다녔고, 가끔 의견 차이로 핀잔 주는 정도이지 언성을 높이거나 소위 내가 아는 "부부싸움"이라는 것이 본 적이 없어 늘 희안하다고 생각했다.
'부부싸움'모습, 한국 드라마, 학국에 기억에도 있었고. 그리고 우리 부모님 역시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많이 부부싸움에 시간을 할애 하셨다. 오래전 중고등 학교때도 부모님이 가끔은 "부부 싸움"에 소리를 듣지 못하는 날들이 몇일 이어지만, 혹시나 무슨 일이 있나 싶었다. 원래 모든 결혼 한 사람들은 그런 것인가 하고, 신경 별로 안쓰고 십대를 보냈는데 지금 생각해도 두분다 존경 받는 위치에, 공부도 많이 하시고, 강남에 좋은 곳 아파트에서, 프로 수준에 수영 테니스 등산으로 다져진 체력으로 피곤 하지도 않게 치열하게 의견 차이 대화에 시간을 할애 하셨었다.
여든 나이에 부모님은 코비드 동안에 건강도, 청력도 안 좋아 지셔서 사라진 부부 싸움. 근래에 근처로 모시고, 다행히 건강도 좋아 지시고. 하지만 얼마전 두분 보청기를 해 드리고 나서 청력 회복후 다시 등장한 잔잔한, 사소한 두분 '부부 싸움'이 시작 되었다. 아직도 건강한 모습을 보는 것 이려니 한다.
- 모형 기차 (Lionel Model Train)
집 리빙룸에 모형 기차 레일과 기차를 조립하시기 시작 했다.
고향 생각. 누구나 그 고향이라는게 나이가 들며 더 진해 지나 보다.
스위스에서 타던 기차. 산을 오르던 작은 전기 기차라고 자세한 설명과 조심스레 박스를 열며 보곤 했다. 문제는 부인 Margarette 몰래 사 놓으신 거였다. 작은 모델들이 가격이 꽤 하였고 그렇게 track 부피와 면적이 큰 것일 줄 모르신 거다.
그리고 작은 베터리에 전기 supply circuit이 간단하지는 않았다. Manual 공부하면서 부인 나갔다고 하면 전화가 와서 부인 집에 안 계실때 들려서 조금씩 circuit과 tracking 을 조립하는 동안 어릴때 살던 고향 Zug, Lurcene, Interlaken..스위스 alps 산을 돌아 다니던 노선과 기차 종류들을 지도위에서 설명 해 주었다.
나도 나중에 애 한테 뭐 보여 주면서 설명 해 줄것이 있나 생각해 보았다.
중고차 타고 일 다니던 New Jersey Turnpike? 아무리 생각해도 뉴져지는 볼게 없다.
Interlaken 근처에서 한시간 가령 올라가는 Schynige Platte 갔을때 탄 기차는 그때 만들어 본 모델 train이어서 다들 산 경치 보는데 기차 driver 한테 부탁해서 안을 아주 자세히 보았다. 1914년에 디자인한 작고 탄탄한 "Matten" 모델. 오래전에는 낙농업 제품 나르려고 설치 하였다가 1960년대 부터는 관광객용. 220kw, 1500 voltage supply로 된 3phase 전기모터로 아주 튼튼하고 너무 간단히 디자인된 전기 기차였다. body frame은 이미 100년 넘었지만 전기 모터는 잘 디자인 되어 있어 스케줄에 맞춰 overhaul 한다고 했다. 뭐 든지 간단히, 튼튼히 하기는 system을 충분히 알고 나서 많은 고민 후에 가능하다.
-차 - Dodge Shadow
Dodge Shadow라는 작은 소형차를 타고 다녔는데 늘 빠르게 운전했다. 길 건너는 유모차에 젋은 엄마들에도 빨리 건너라고 손짖하면서 빵빵 거리고 honk도 하고 했었는데, 젊은 사람은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다니고, 자기는 앞으로 시간이 별로 없으니 빨리 다녀야 한다고.
가게 파킹장 돌아 들어 오는 소리만으로도 Leo 인줄 알았다. 털털 거리는 엔진에 그리고 바로 앞에서 급정거 하는 소리.
차는 작은 미제 소형 Dodge Shadow였는데, Toyota Corrolla 보다 성능도 형편 없고, 가격도 더 쌌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저런 품질과 성능으로 감히 판매되었는지 희안 할 정도인데 아마도 최저가 가격이 이유였나 한다.
대학 졸업 쯤에 Loe가 축하로 타고 다니던 Dodge Shadow를 주었다. 특별한 Racing red color option이어서 학교에서 인기 좋을 거라고 차 키를 주셨다.
팔고 용돈이나 쓸 생각에 광고도 내 보았지만 아무 가격에도 산다는 연락이 안 와서 할 수 없이 한동안 타고 다녔는데 학교에 아는 여자애들이 볼까봐 일부러 멀리 구석에 파킹 해 놓고, 버스 타고 온 것 처럼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 걸어 가서 수업에 들어 가곤 했었다.
- 건물
부모님은 50대 인생 후반전 전혀 모르는 세탁소를 운영하시고 Leo 그렇게 우리 landlord가 되어
토요일에 Leo 집 잔듸 깍기, 여행 가는 길 모셔드리기 독일 군가와 맥주, 겨울에 눈 치우기, 이쁘게 완성된 트레인 모델이 리빙룸에 매미 소리처럼 잘 돌면서 여러 여름들이 지났다.
내가 결혼 할 때 쯤 여름에 다름 없이 이젠 이른 후반에 Leo 와 Margarette 태워다 주고
무거운 grocery 장 보는 거 해 주고, 잔듸 깍고, 다름 없이 창문 올리고 좋아 하는 노래 틀고 맥주 가져다 주는데 할이야기 있다고 Turntable 을 꺼달라고 했다.
"너도 이젠 결혼도 했는데 결혼 한 사람에게 잔디 깍는 일 시키면 미안 하다" 고 웃으면서
"혹시 너희 가족이 자기 건물 인수할 생각 있는지" 부모 하고 상의 해 보라고 했다.
부모님이 건물을 팔라고 요구하고 있던것은 아니었지만 렌트 내고 있으니 장래에 건물 같은거 있었으면 했었고, 그 동안 렌트는 하루도 결렬 없이 또박또박 지켜와서 세입자로, 건물주로 서로 지킬 것을 한번도 거른 일은 없었다.
그렇게 나온 얘기를 부모님께 전해 드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Leo 집에서 다 같이 앉아서
커피와 고향에서 늘 먹었다는 달달한 black forest cake를 옆에 두고 notpad 위에 몇가지 조건과 인수 가격을 적었고, 그리고 서류로 만들어 사인을 했하고 악수를 했다.
그렇게 Leo 부부 미국 인생 발판이 된 세탁소 그리고 건물은 우리 가족에 소유가 되었다.
( 물론 Leo 가 좋은 조건에 직접 돈도 빌려 주고 (owner financing) 했지만 매달 8년 기간을 되갑느라 rent 내고 있던거 보다 훨씬 많은 매달에 pay를 위해 부모님은 또 다른 힘겨운 여정으로 들어 섰다. 나 역시 회사라는 새로운 사회 길에 들어 가끔 인사차 들리는 정도였다.)
인수 인계가 끝나고 Leo는 우리 식구를 Italian restaurant에서 Ossobuco ( 소뼈로 만드는 Slow food 에 대명사 - 조리에 너무 오래 걸려 하는 곳이 거의 없어져서 - 나도 그때 먹어 보고 다시 기회는 없었다) 초대해서 좋은 와인과 폼나게 저녁을 했다. 스위스에서 얼릴 적 부터 먹던 Ossobuco dish를 잘 하는 집이 있다고. 어릴적 음식은 그렇게 평생 가고 좋은 자리에서 늘 생각이 나나 보다. 나에 떡복기 일까? 강남 고속 터미날 앞 포장 마차?
우리 가족이름으로 LLC 은행 구좌도 만들고 한달쯤 되어 다른 tenent들에게 매달 rent도 받게 되고 .여름도 지나고 가을이 오는데 어느날 커다란 아스팔트 설치 하는 중장비들과 전기 트럭이 아침부터 파킹장을 들어 찼다. 새로 아스팔트 까는 공사 한다고 차를 치워 달라고 했다. 전기 트럭은 변압기에서 나오는 main line 고압선 교체하고 건물 breaker 새로 설치 하고.
전혀 그런 공사 신청이나 한것이 없어 잘 못된 주소로 온것이라고 했지만 이미 오더와 공사 대금이 다 끝난 상태라고 타운에서 받은 허가와 permit 그리고 결제된 영수증까지 보여 주었다.
잠시 후에 Leo가 어느 아침이나 마찬 가지로 커피 사들고 털털 거리는 레이싱 레드 색에 Dodge Shadow 빠르게 운전하고 급히 세우고 나타났다.
오래된 아스팔트 바닥과 전기 전선이므로 자기도 Margarrette과 미국에서 발판을 여기서 만들어 살았으니 너희 가족도 새로 설치 해 줄테니 앞으로 오래 잘 쓰라고 사온 커피를 건네 주었다.
Leo는 스위스 중반에 Lucerne에서 30분 떨어진 인구 30,000명 정도 Zug 라는 작은 예쁜 동네에서 자랐다.
몇해후에 빨리 운전 하시듯, 빨리 하늘 나라로 가셧다.
출장 중이어서 돌아 와서 나중에 알았다.
Leo 장례식에 와서짐 정리한 여동생 분과 조카에게 연락하여 Zug 동네도 가보았었다.
알고 지낸 매년 같이 한번 자기네 고향 같이 가자고 했는데. 요즘엔 누가 어디 같이 가자고 하면 무리해서 라도 시간 맞춘다.
몇해 전에 Lucerne 가는 길에 들려 본 Zug는
Leo 처럼 조용하니, 자기 할일 또박 하는 깨끗한, 착한 도시였다.
여느 여름에 Leo 집에서 처럼
"Es war ein Edelweiß" 틀어 놓고 시원한 Good German 맥주를 마셨었다.
토요일 아침 -
- 토요일 11시에는 Leo 가 들고 온 커피를 가지고 break time 을 가졌다.
Casio Cash Register - 미국 딸라 벌기 그리고 모으기.
사진 앞에 보이는 Casio Cash Register.
Leo는 구식 regiser로 손으로 쓰고, 세금 따로 계산해서 써 주는 돈만 철컥 열리는 tray달린 register로 운영을 했었다. 한동안 부모님도 그 register로 Leo가 가르쳐준 데로 사용 했었고.
한번은 주말에 program형으로 버튼 하나로 tax 계산과 영주증 나누어 찍히기, Pricing 변동, 가게 이름 영수증에 프린트 프린트 되는, 그 때는 최신형으로 Casio에서 나온 Cash Reisger를 사서 설치 했다.
그리고 가게 웹사이트 까지 밤에 몇일 해서 만들어 놓았는데, Leo가 수십년 쓰던 영수증도 마술 처럼 더 이상 안 써도 된다고 근처 가게 주인들에게 자랑에, 더구나 전세계가 자기의 건물, 가게 사진 들을 볼 수 있는 웹사이트라는게 생겼으니...
스위스에 친척들에게 전화해서 가게를 인수한 코리안 주인 "smart한 아들"이 해 놓았는데 Google 이라고 type하지 말고 대신 가게 웹사이트 주소 넣으면 된다고 google 웹사이트 만든것 처럼 자랑하는 통에 한동안 괜히 우쭐 해 진 적이 있다.
세탁소에서 악착 같이 일하신 돈은 저 register 안으로 많은 시간동안 들어 갔고, 자식들을 위해 나갔다. 그렇게 돈을 품어준 사진에 Casio Cash Register는 아직도 내 방에 가지고 있다.
(Bratt Pitt과 Lewis Hamilton 얼굴도 보이는 2025 년 "F1" 영화 마지막 장면
거친 Baja 1000 race 참가를 위해 California 밑에 Baja 바닷가 앞에 털털 거리는 밴에서 내리면서 F1에서 성공한 Brad Pitt 이런 대사로 영화가 끝난다. - https://youtu.be/S8Htjpseh2s?si=d2evaZBBjkE_K1m8 )
"We can't pay you much."
"It's not about money."
"so, what is about?"
Leo한테 한번 물어 볼 것을 그랬다.
Puma t-shirt
그때 한참 유행하던 Puma t-shirt. 나름 제일 멋 부린게 유행하는 brand 로고 찍힌 t-shirt였다. 한국에서 유행해서 고등학교 때 부모님 졸라서 사온 저 Puma t-shirt인데 미국에 오고 나니 길거리에다들 입고 다녀서 별로 가치가 없나 보다 하면서도 "그래도 푸마..지" 하면서 입고 다녔다.
금요일이면 숙제 +시험 끝내고 알차게 또 친구들과 저녁 늦게 까지 보내고 새벽에 나왔었다. 방학때 마다 한국에도 가고, 뉴욕시에 좋은 곳도 자주 가고, 좋은 차도 있고, 주말에 계속 학교 있었던 유학생 친구들이 늘 부러웠던 때였다.
사실 열심히 가게 나와 바지를 데리고 있는 토요일 이지만 마음은 맨하탄에 나갈 있을 친구들에 있었고, 그냥 해야 된다니 Mechenjcal Engineering 전공은 이 영어 부터 시작해서, 따라가기 벅차서 딱히 적성에 맞는지 하는 의심에 , 그리고 다들 여자친구들 하고 맨하탄 좋은 곳도 가고 주말지내는데 ( 그때는 맨하탄에 우수한 미술/음악/ 디자인 학교에 유학온 여핵생들도 많았다.) 아무도 연락 안하는 여자 친구 하나 없고,,, 주중에는 숙제과 시험 도와 달라고 하다가, 자기들 끼리만 어울리는 친구들이 조금은 괘씸하게 생각 되는 가게에 주말들.
Judy - Cashier 아줌마
담배 피우느라고 늘 바빳던 Judy 아줌마, 그것 때문에 부모님 하고 늘 싸우고.
Joe - Presser 분
조금만 늦게 나오면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 보다 늦게 나오냐, korea에서는 그러냐"고 꾸짖었다. 부모님이 2차 대전후 이태리에서 이민와서 맨하탄에 손바닥만한 작은 옷수선가게 하신 것을 이어 받아 큰 옷 공장을 운영하시다가 아들에게 물려 주고 소일 거리로 주에 몇일 우리 가게 뒤에서 도사님에 수준으로 미싱을 돌려 옷수선과 press도 하셨다.
남자 자켓과 코트를 디자인 제작해서 뉴욕 고급 매장에 납품하는 비지니스를 크게 하셨는데 가끔 두꺼운 고급 wool 천을 Milan에 위치한 거래처 회사에서 샘플로 받았다고, 남은 큰 롤을 가게로 들고 와서, 만져 보라고 하시며 이 촉감과 색깔이 나오기 까지 자기 선조들에 미에 감각과 섬유 기술, 우수한 염색 기술...장황한 설명과 함께 건네 주시곤 했다.
어머니가 Joe 가지고 오는 천들이 너무 이쁘고 두툼하니 좋다고 "방석"을 여러게 정성스럽게 만드셔서 집에서 손님 접대용으로, 그리고 Leo 도 나누어 주고, 가게에서는 재봉틀 의자에서도 놓고 쓰셨다. (Leo 집에 나중에 가보니 받은 방석을 벽에 이쁘게 frame 해서 방에 걸어 놓았었다.)
JOE가 보고 기겁을 해서는 자기 고향 Florence 고급 신사들 만이 입을 수 있는 옷감인데... 우리에 선조에 모독이라고 웃으면서 더 많이 샘플을 골고루 가져다 주셨다. 그 은은한 색상에, 짙은 품위 있는 짙은 블루.. 두꺼우면서 가볍고, 부드러운 촉감에 - 아직도 집안에 몇개 남은 방석에 섬유 롤이 남아 있어 어머니와 웃으면서 가끔 얘기 한다.
어머니 - 첨 해 보는 일을 억척 스럽게 하셨다. Joe에게 미싱도 배우시고. 매상 올리는 일이라면 뭐든.
"좋은 사람 만나서 운이 좋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만나기 위해서 서로 다른 길에서 평생 자기에 자리에서 꽂꽂히, 흐트러 지지 않고, 힘든 나날들을, 또박 또박 쉬지 않고 걸었다.
가방하나 들고 배 타고 New York 항으로 도착한 Leo나, 좀 더 큰 이민 가방 들고 비행기 타고 JFK 공항으로 도착하신 부모님이나.
https://youtu.be/KQ0gFidlro8?si=-bF4w0j53VEhDAZM
(Minari -2020)
https://youtu.be/TwQls5CBgYI?si=mJxMpxvM3UordAIT
(Happy Cleaner - 2020)
https://youtu.be/KFroCRDXw5E?si=eB5Fzw5HS8ZuQy5k (Coming to America 1988)